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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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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조선왕릉 동구릉 목릉 인목왕후 능침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인목왕후는 선조의 계비로 19살의 나이에 당시 51세이던 선조와 국혼을 올립니다. 지금 시대 같았으면 말도 안되는 상황이겠지만... 당대는 당대의 시선으로... 인목왕후는 영창대군의 생모로 당시 임진왜란 당시 많은 고생을 했던 세자 광해군과 대립을 하게됩니다. 하지만 영창대군이 너무 어렸기에 선조는 광해군이 왕위를 잇도록 유언을 남겼습니다. 이후 영창대군은 강화도에서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인목왕후는 경운궁 현재 덕수궁 석어당에 유폐가됩니다. 정명공주로 이연희가 연기했던 몇년전 사극 화정의 배경이기도합니다. 짧지않은 십여년의 생활 하지만 이후 극적인 반전으로 인조반정이 일어나며 광해군은 쫓겨나고 인조는 정통성을 가지기위해 반정직후에 이곳으로 달려가 인목대비의 인가를 받는 형식을 취합니다. 인목대비로선 ..
[연재]조선왕릉 동구릉 목릉 선조 - 지금도 비난을 많이 받고있는 임금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사극과 역사에 관심많은 분들이 암군으로 꼽는 조선시대 임금은 선조와 인조가 있습니다. 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고생도 많이 했지만 전체를 끌고가는 군주로서의 판단이나 태도가 백성들의 호응을 얻지못하고 상상할수 없는 온갖 고초를 더욱 증폭시켜 겪게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문정왕후에 휘둘리던 명종의 뒤를 이은 선조는 방계로서 원래는 왕위 계승과는 크게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성군시절 선조는 나름대로 명민함을 인정받아 후사가 없는 명종에 이어 중종의 손자가운데 선택되었고 서예도 능통해 지금도 많이 찾아볼수 있습니다. 사림의 당쟁이 심화되는 시기이기는 했지만 아마 임진왜란이 아니었다면 성군까지는 아니더라도 평범한(?) 왕생활을 이어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조의 어필 병풍 아래는 선조의 초상화..
[서평] 김정호의 동여도를 비교해 설명된 '천문과 지리 전략가 이순신' - 이봉수 시루 우리 역사에 위대한 인물들을 꼽자면 무수하겠지만 한두명으로 압축하자고 들면 제일많이 나올분은 이순신 장군을 들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때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지금쯤 이곳은 일본의 반도땅정도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순신에 철저하게 유린당한 일본 수군은 물론이고 보급선이 끊긴 왜군의 곤란함은 임진왜란의 전황 자체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한편에선 이순신의 커다란 영향력을 두려워한 가장 욕먹는 군주인 선조의 졸렬함이 부각되어 강력한 리더쉽과 준비태세 그리고 정신무장이 깊게 각인되었습니다. 십여년전 김명민이 주연으로 나온 사극 불멸의 이순신을 시청할때의 흥분이 아직까지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최근에 읽은 천문과 지리전략가 이순신은 임진왜란 당시 전투가 있던곳을 실제로 20여년간 답사하면서 조선시대 지..
[창덕궁] 후원관람 애련지 애련정 의두합 관람정 승재정 폄우사 존덕정 창덕궁 후원을 처음갔을때는 답사다니는 초기라 공부나 정보없이 그냥 직관적으로 보고왔기에 촬영을 놓친부분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초등학생 아이랑 같이 간다는 부분을 고려해서 처음 답사시에는 사전 정보 공부없이 다녀왔습니다. 괜히 정보에 짓눌리는 선입견과 다른 시각을 가질수 있는 부분을 원천차단하는것은 아닌가하고 염려했고 있는 그대로 날것으로 느껴본후 살을 붙여나가길 원했습니다. 아마도 답사를 많이 다니신 분들은 정확하게 인지하겠지만 유적이나 유물은 눈으로 한번 본것과 여러번 글로 접한것은 하늘과땅 차이가 날때가 대부분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말은 괜히 생긴게 아니었습니다. 물론 책으로만 접해 상상력에 의한 재미있는 이야기의 구조가 나올수는 있겠지만 직접 눈으로 각인된것은 그러지 아니한것과 나중에 서책으로 ..
이순신 장군 장계로 살펴보는 임진왜란 그날 - 삼가 적을 무찌른 일로 아뢰나이다 현충사에서 임진장초와 충민공계초 이충무공전서 장계를 모아서 전시합니다. 거의 왕릉급으로 조성된 현충사 그곳에 들러 이순신장군의 기상을 느끼고 오는것도 좋을듯.. 가을철에는 현충사 경내도 나들이 하기 좋은 장소입니다.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소장 원성규)는 제97회 전국체전이 아산시에서 개최되는 시점에 맞추어 체전 개막일인 7일부터 12월 11일까지 ‘삼가 적을 무찌른 일로 아뢰나이다–한눈에 보는 이순신 장군의 전투 보고서’ 특별 전시를 현충사 내 충무공 이순신기념관 제2 상설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을 치르면서 조정에 보고한 장계를 엮은 국보 제76호 ‘임진장초(壬辰狀草)’와 최근에 소재가 확인된 ‘충민공계초(장계별책)’, 1795년(정조 19) 간행된 활자인쇄본인 ‘이충무공..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에 대한 단상 - 임진왜란 1592 3편 전국시대를 제패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우리에게 메이지시대의 이토 히로부미와 더불어 제일 많이 알려진 정치인이자 원흉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일본의 전국시대를 제패한 것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주군인 오다노부나가입니다. 괴짜였던 오다노부나가는 자신의 부하인 아케치 미쓰히데의 손에 죽고 이를 수습하던 과정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실권자의 위치에 오르게됩니다. 일본 전국시대의 종지부를 찍어가던 오다노부나가 오다노부나가의 명을 받는척 가다 회군해 공격 오다노부나가는 결국 불을 지르고 자결하게 만든 아케치 미쓰히데.. 천황의 권위를 가져가려했다는 오다노부나가의 의중을 미리알고 쳤다는 설도 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천민 출신으로 최고권력에 대한 의지가 애초에는 없었고 오다노부나가의 충실한 부하로 남길 원했던 인물..
[이순신] 임진왜란 1592 방영 - 한중합작 팩션 드라마 방송일정 역사인물중에 양파껍질처럼 까내더라도 더욱 존경스러워지는 인물들이 종종 있습니다. 대표적인 분인 이순신장군입니다. 용맹 지략 희생 인품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까지 국난의 위기속에 최고의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는 모습입니다. 임진왜란을 조명한다면 꼭 우리만이 아니더라도 조선 명 왜모두에게 빼놓을수 없는 인물입니다.거북선을 비롯해 이순신의 해전이 어떻게 묘사되었을지 궁금합니다.임진왜란은 일본에서는 도자기 전쟁으로 부릅니다. 동아시아의 패권을 노리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돌출된 행동이 몰고온 전란은 우리에게 커다란 상처를 주었고 자세히 살펴보면 현재진행형으로 해석할수도 있습니다. 일본이 우경화가 심해졌고 심지어 전쟁 가능한 국가로 가기위해 헌법까지 개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이 강성해지면서 이전시대의 치욕을 씻기위..
덕수궁(경운궁) 야경과 석조전 미디어파사드 5월25일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과 홍유릉 답사를 마치고 저녁식사후에 다시 덕수궁으로 갔습니다. 들어가면서 중화전과 석어당 즉조당에 불을 밝혀두었는데 상당히 운치있습니다. 마지막주에는 덕수궁을 비롯해 경복궁에서도 미디어파사드를 하는데 이날 덕수궁 석조전에서 공연이 있었습니다. 궁궐에 미디어 파사드는 어떤 형태일까 궁금했었는데 생각했던것보다 화려하고 감성적인 공연이었습니다. 집에가자고 보채던 아들도 넋놓고 바라보더니 멋있다고 좋아하더군요. 다음에는 경복궁에서 할때 찾아가봐야겠습니다. 블로그의 관련글2016/05/27 - [역사유적 방문/고궁] - 덕수궁(경운궁) 석조전과 대한제국 역사관 1 - 2016년 5월2016/05/27 - [역사유적 방문/고궁] - 덕수궁(경운궁) 석조전과 대한제국 역사관 2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