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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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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촌] 경복궁옆 통의동 창의궁 백송터 - 월성위궁 추사 김정희 집터 최근에 추사관련 글을 연달아 쓰고있습니다. 과천에 추사 박물관이 있지만 서울안에서도 만날수있는 추사 유적지는 경복궁옆 일명 서촌으로 불리는 동네에 김정희 집터가 있습니다. 추사는 아들이 없는 백부 김노영의 집에 대를잇기위해 양자로 들어가는데 추사의 집안은 증조부 김한신이 영조의 딸 화순옹주와 결혼하면서 월성위에 봉해졌습니다. 이주변은 영조가 연잉군시절에 살던곳으로 창의궁이있던 자리입니다. 이후에는 생모 숙빈최씨(사극 동이의 주인공)가 살고있었고 즉위한 뒤에도 가끔씩 들러 잠을자고 가기도 했다는데 화순옹주가 태어난 곳인 창의궁에 집을 하사 월성위궁이 있었습니다. 창의궁안은 사당등이 있었기에 이곳을 전부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김정희는 12세때 이곳에 들어와 관직생활을 하던 당시까지 이곳에 주로..
이천년전 수도 서울의 시발점 한성 백제의 위례성으로 추측되는 풍납토성 백제 초기의 수도였던 한성의 위례성은 하남에있는 이성산성이나 바로옆 몽촌토성으로 추측했습니다. 하지만 지하에 많이 묻혀있고 발굴은 매우 어려워진 풍납토성에서 간간히 나오는 유물들이 왕궁의 격식에 맞추어진것이라는 여러가지 물증들이 나오면서 위례성은 풍납토성이었을 것으로 의견이 많이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개발논리와 현재의 삶 그리고 역사적 유물이 지니는 영속적 가치를 고려한다면 장기적으로는 보전하는게 마땅하지만 초기에 대응이 적절하지 못해 현재는 매우 어렵게 이해들이 얽혀있는 부분입니다. 그래도 될수있으면 보전하는게 여러가지 면에서 좋은점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교육적인 가치는 물론이고 우리에게 많이 부족한 관광 인프라까지 고려한다면 천년넘은 시간의 역사적 유적이 가득한 서울은 새롭게 관광명소가 될수도 있는 ..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토기가 대량 출토된 서울 암사동 선사 유적지 한강은 역사적으로 우리민족에게는 많은 역사의 물결을 안겨준 곳입니다. 우리에게 한강의 역사는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암사동에 있는 한강의 유적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당시에 대량의 신석기 유물들이 발견되면서입니다. 시대가 일제시대 였기에 일본은 말로는 내선일체니 내세우긴했지만 오래된 역사유물이 새로나오는게 그리 탐탁치는 않을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현재로선 이유를 정확히 알수없지만 수많은 유물이 나왔지만 거기에서 그치고 그대로 넘어가게됩니다. 한강이 우리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역시 먹고살기 좋은 입지때문이라고 할수있습니다.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아간 커다란 이유라 볼수있습니다. 암사동 선사유적지의 중요성은 집단 거주의 흔적이 있기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곳곳에서 석기시대..
[창덕궁] 후원관람 연경당 - 효명세자의 개혁의지가 서려있는곳 창덕궁 후원에는 효명세자와 관련된 곳이 많지만 가장 대표적인것은 이곳 연경당이라 할 수 있습니다. 효명세자는 순조의 권력을 이어받을 세자로 실제로 임금으로 등극하지는 않았지만 실권자로서 짧고 굵게 대리청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효명세자는 요새말로하면 그야말로 엄친아라 할 수 있습니다. 수려한 외모와 고귀한 신분은 왕세자이고 어린나이였지만 학식을 겸비한데다 감수성이 뛰어나 문학에도 출중했으며 여기에 덧붙여 음악과 춤에 정통해 각종 궁중의례를 직접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것때문에 의외로 국악이나 궁중복식을 연구하는 분들에게 효명세자는 굉장히 유명하다고합니다. 이시절은 바로 조선 후기로 넘어서면서 안동김씨 세력의 입김이 매우 강해지고 세도정치라고 부를만큼 왕위에 군림하는것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역사에 관심있는 사..
거란의 침공을 막고 나라를 구한 귀주대첩의 강감찬과 유적지 낙성대 우리역사에 나라구한 영웅이 몇몇 있습니다. 대표적인분이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구한 이순신장군이고 조금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구려의 수나라의 침공에 살수대첩을 이끈 을지문덕과 안시성에서 당태종을 막은 양만춘, 여세를 몰아 당태종을 지금의 북경부근까지 추격해 혼쭐을 내던 연개소문 그리고 고려시대에는 거란이세운 요나라로 거란족 소손녕의 첫번째 침공에 뛰어난 외교술로 전쟁을 치르지않고 영토까지 얻은 서희와 요나라 성종의 명령으로 소배압의 세번째 침공을 막은 귀주대첩의 영웅 강감찬이 있습니다. 낙성대는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곳입니다. 낙성대란 이름의 유래는 중국사신들이 왔을때 별이 떨어진곳을 찾아갔더니 아이가 태어난곳이기에 붙여진 것입니다. 예전에 우스개소리로 서울대 떨어진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이라 하기도했는데 사실 ..
경희궁에 처음 가던날 - 2013년 8월 경희궁은 아직 복원이 될려면 먼곳입니다. 일제시대 공중분해되다시피했고 학교까지 들어섰던데다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이 중간에 들어서면서 현재로선 원형대로의 복구는 물건너간 상태.. 정문이 이토히로부미의 박문사 문으로 쓰이다가 다시 원래위치인 경희궁으로 흥화문이 되돌아왔지만 위치가 바뀌었고 아쉬운건 역시 금천교와 위치가 심하게 틀어진 상태.. 하지만 주변은 이미 빌딩과 사유지들이기에 되돌려지기는 어려워보이는데.. 하긴 부근의 서대문도 전차지나다니기 걸리적거린다고 오백년 넘은 서대문을 없앤 일제이고보면.. 경희궁은 광해군시절 지어지기시작했습니다. 서쪽에 있기에 서궐로 불렸고 동궐은 창덕궁을 말합니다. 세자시절 우연까지 겹쳐 꼬인 명나라로부터 인정받는것부터 시작해 아버지인 선조의 선위파동을 비롯해 마음고생 심했던 ..
[조선 왕릉 기행 태강릉 1]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의 태릉 태릉하면 떠오르는건 아마도 엘리트 체육의 산실인 태능선수촌이고 그외에 갈비정도이겠지만.... 여걸이랄수 있을정도로 권력을 휘두른 여인을 떠올리면 중국에 측천무후와 서태후가 떠오르고 고려시대에는 천추태후 그리고 조선에는 문정왕후를 떠올릴수 있습니다. 태릉은 문정왕후의 릉입니다. 중종의 두번째 계비인 문정왕후는 현재 사극 옥중화에 나오는 윤원형의 누이이고 그의 부인인 희대의 악녀로 묘사되는 정난정과 더불어 국정을 농단한 인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문정왕후의 불교에 대한 유화책과 서녀 출신인 정난정의 정경부인으로 올라선 상황은 조선의 지배계층이던 양반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들의 기득권과 관련된 서얼의 혼란상과도 무관하다 할수는 없겠습니다. 문정왕후가 무섭게 묘사되는건 중종시절 왕의 세번째 중전으로 등..
[조선 왕릉 기행 선정릉 3] 선정릉 답사 마무리 및 자료 조선시대 왕릉은 임금이 친히 제례를 드릴수있게 도성에서 백리안에 위치해야합니다. 거리의 기준은 하루만에 왕복할수 있는것을 기준으로 합니다. 예외적으로 수원화성의 융건릉 여주의 영릉과 영월의 단종 장릉이 있지만 융건릉은 원래 천도를 계획했던 곳이고 백리를 크게 비껴가지 않았으며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있는곳입니다. 원래의 목적을 생각해보면 나름대로 합당한 구석이 있습니다. 영월의 장릉은 당대에 세워진것이 아니라 후대에 복원된곳이기에 어쩔수없는 역사적인 그리고 태생적 한계를 안고있습니다. 가장 예외적인건 여주의 영릉인데 이장할 당시에 남한강 지류를 따라 뱃길로 접근하면 하루만에 왕복 가능성을 두고 만들어졌다고합니다. 선정릉은 서울 강남 한복판에 위치합니다. 지금이야 우리나라의 경제적인 중심지역으로 올라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