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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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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김정희 불이선란도 - 국립중앙박물관 기증 전시 추사의 그림중에 제일 걸작은 세한도와 불이선란도를 들수있습니다. 최근에 소장자인 손세기 손창근 컬렉션 기증으로 불이선란도를 포함 추사 작품과 용비어천가 정선의 북원수회도등 3백여점이 기증되었고 추사와 오원 장승업의 작품들이 현재 국립 중앙박물관 서화실에서 전시중입니다. 정선의 작품은 전시예정에 있습니다. 시간이 허락하면 직접 보고오는것을 추천... 함박눈이 오던날 방문한 국립중앙박물관 추사 김정희 - 불이선란도 난만 놓고 보면 익히 봐왔던 구도와 구성이 아님을 알수있습니다. 메마른 터치로 여기저기 꺽이고 시들시들한듯한 모습이지만 이에 아랑곳하지않고 피어난 난꽃 하나가 강하게 무언가 이야기하듯 있습니다.김정희의 세한도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조선 청나라 조선 일본을 돌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이력이 있습..
[도서평] 세한도 천년의믿음, 그림으로 태어나다 - 박철상 문학동네 세한도 관련해서 검색하다보면 이름은 모르더라도 추사를 연구하던 은행원 이야기를 종종 볼수있습니다. 저자인 박철상씨가 그분으로 어릴때부터 한학연구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고문헌에 관심이 많았다고합니다. 유홍준의 완당평전 초간본이 나왔을때 이백여개이상의 오류를 지적하던 강호의 숨은 고수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학예일치를 이야기할때 빠질수 없는 인물이 추사 김정희입니다. 추사의 대표작인 세한도는 그 정점에 있는 작품이라고 볼수있습니다. 문인화하면 소동파의 예찬이후 수묵화를 떠올리는데 정작 김정희는 문자향 서권기를 매우 중시했고 스승 옹방강과 같이 소동파를 열렬하게 흠모했지만 채색화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습니다. 그림에서 그사람의 공부와 독서의 깊이가 보인다면... 블로그 관련글2018/10/31 - [역사..
[서울 서촌] 경복궁옆 통의동 창의궁 백송터 - 월성위궁 추사 김정희 집터 최근에 추사관련 글을 연달아 쓰고있습니다. 과천에 추사 박물관이 있지만 서울안에서도 만날수있는 추사 유적지는 경복궁옆 일명 서촌으로 불리는 동네에 김정희 집터가 있습니다. 추사는 아들이 없는 백부 김노영의 집에 대를잇기위해 양자로 들어가는데 추사의 집안은 증조부 김한신이 영조의 딸 화순옹주와 결혼하면서 월성위에 봉해졌습니다. 이주변은 영조가 연잉군시절에 살던곳으로 창의궁이있던 자리입니다. 이후에는 생모 숙빈최씨(사극 동이의 주인공)가 살고있었고 즉위한 뒤에도 가끔씩 들러 잠을자고 가기도 했다는데 화순옹주가 태어난 곳인 창의궁에 집을 하사 월성위궁이 있었습니다. 창의궁안은 사당등이 있었기에 이곳을 전부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김정희는 12세때 이곳에 들어와 관직생활을 하던 당시까지 이곳에 주로..
과천 추사박물관과 김정희가 노년에 기거한 과지초당 앞서 이야기한 일본의 청조학 연구가 후지츠카 치카시는 추사를 청조학의 일인자로 인정하면서 많은 자료들을 모았습니다. 당시 일제강점기로 경성에 와있었기에 가능했던일로 이후 자료들을 일본으로 귀국하면서 가져갑니다. 당시는 태평양전쟁 막바지 시기로 대규모 공습이 있었는데 후지츠카가 있던 대동문화학원 자료들도 포화를 피하지 못하고 많이 사라지지만 다행히 추사관련 자료들은 자택에 보관했기에 보존이 되었습니다. 중간에 소전 전재형에게 의지에 감화되어 무상으로 세한도를 넘겨준적이 있습니다.후지츠카 치카시는 공자와 경학 연구가로 북경 유리창에서 우연히 박제가에대해 알게되었고 이후 경성으로 오게되면서 박제가의 스승 박지원과 제자인 김정희에대해 알게되었는데 단순히 청나라의 영향만을 받은게아니라 조선에서의 흐름과 청과의 깊..
쓸쓸하고 높은 정신세계를 펼쳐보인 추사 김정희 세한도 - 국보 180호 추사 김정희의 아주 유명한 그림인 세한도를 보면 의외로 어떻게 이런 그림이 국보씩이나? 하는 의문이 들수 있습니다. 세세히 뜯어보면 가운데 배치된 집은 엉성한건 둘째치고 원근법에도 어긋나는데 아무리 원근법이 서양화 기법이라해도 상식적인 실물 관찰만으로도 나올수 없는 형태입니다. 집안을 들여다볼 입구도 둥그렇고 방향도 원근법 무시된 집이 그려진 방향과 또한 반대입니다. 형태로보면 엉터리... 세한도 그림부분 매우 세심하고 까다로운 금강안을 가졌다는 김정희인데다 이미 청대에 서양화기법의 그림들이 중국에 존재했기에 당대에 청나라에서도 유명했던 김정희가 이런 형태의 회화들을 못보았을리 없습니다. 어릴때부터 천재소리 들었었고 중국에서도 비범함을 인정받은 젊은시절 청나라 최고의 컬렉터라 할수있는 옹방강의 보물창고인..
추사 김정희 문인이자 최고의 학자였던 예술가 - 생애 흔하게 추사체의 창시자로 생각하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일반적으로 깊이 알아보지 않았다면 추사 김정희는 한석봉처럼 글씨 잘쓰고 단원 김홍도처럼 그림 잘그리는 예술가로서 인지하는 경우가 꽤많지만 실제로 그는 금석학의 대가로서 지금기준으로 보면 (당시 성리학적 전통이 많이 사라진 상태의 청나라까지 이름이 알려졌는데 아직 성리학적 기운이 많이 남아있던 조선에서온 학인들의 식견을 알아보고 대우해주었고 역으로 당시 청나라의 높은 문명 수준을 답답했던 조선에 접목시키려던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등 실용적이고 개혁적 성향의 북학파 학자들을 볼수있습니다)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인문학자로 이야기할수 있습니다. 추사의 애제자 소치 허련이 그린 김정희 그림에 관해서 추사는 심의(心意)를 중시하는 문인화의 특징인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