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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숭례문 화재를 떠올리며 들었던 생각

숭례문 화재 이틀후

당시에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던 소식이 2008년 숭례문 우리가 보통 남대문이라 부르는 곳에 화재가 발생해 2층은 거의 전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서울에 거주하던 때보다는 자주 가진 않았지만 대체로 카메라 구경하고 사러 가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2008년 방화로 지붕이 탄 숭례문 남대문
2008년 방화로 지붕이 탄 숭례문 남대문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문화재에 관심이 많이 있다거나 역사 답사를 다니던 시절은 아니었지만 국보 1호로 우리나라의 상징성을 가진 곳이었기에 매우 안타까웠던 뉴스였습니다.

전기로 인한 합선인줄 알았지만 조금 지나 밝혀진 건 놀랍게도 누군가 고의로 불을 지른 방화였다는 것인데 화재 발생하고 이틀후인 2월 13일에 숭례문 앞을 지나면서 참담한 마음을 가지고 사진으로 담아 놓은 것이 있습니다.

불을 지른 사람으로 밝혀진 채종기는 토지보상에 불만을 가지고 이런 식으로 표출했지만 우발적이기 보다는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한 정황이 있었습니다.

이전에 창경궁에도 방화를 시도하다 걸린 전적이 있었습니다. 징역 10년을 구형 받았고 이후에 문화재 보호에 대해 많은 자성과 보완책이 나왔습니다.

화재로 불탄 남대문 2008년
화재로 불탄 남대문 2008년

사극을 좋아하기에 자주 나오는 장소로 이성계가 한양으로 수도를 천도할때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건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정도전의 철학이 들어간 공간이기도 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가 숭례문을 통해 입성했기에 일제강점기때 교통에 방해된다는 이유 때문에 허물어진 서대문처럼 남대문도 없애려 하다 성벽만 제거한 채 남겨 놓았고 일제는 지난 과거의 이런 부분 때문에 남겨두고 국보 1호로 지정했다는 속설도 있습니다.

1호라는 상징성이 크게 다가오지만 실제로는 국보로 매겨진 순서일 뿐입니다.

이런 험난한 시대에도 살아남았던 숭례문이었기에 마음이 아픈 장면이었습니다.

2008년 화재로 불탄 숭례문 주변의 사람들
2008년 화재로 불탄 숭례문 주변의 사람들

숭례문은 이후 복원에 잡음도 있었지만 지금은 다시 제자리를 찾으며 굳건히 역사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오랜 역사의 흔적과 아우라를 간직한 문화재는 공동체의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한 문화적 상징이자 이를 다루는 방식은 그 시대의 자화상과 같은 모습이라고 보여집니다.

복원 이후인 2014년 한양도성 순성중에 들른 숭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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