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릉 태조 건원릉 능침
조선왕릉 태조 이성계 건원릉 능침의 무석인 옆모습..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건원릉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능이란 점에서 커다란 상징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조선왕릉의 표본이 되는건 노국공주의 이야기가 실린 고려의 공민왕릉 현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초기의 능은 아직 불교적인 성격을 지닌 것들이 있는데 뒤로 갈수록 불교적인 부분은 대부분 사라지게 됩니다.
건원릉 소개글

능침 앞에 있는 배위 건원릉은 창덕궁을 만든 박자청이 설계했는데 제례는 정자각에서 이뤄지기에 실제로 능침은 필수로 올라가야할 성격은 아니었기에 특이한 부분이라 볼수 있습니다.

건원릉 능침 전경 뒤에 소나무들이 도열해 있습니다. 도래솔이라 부릅니다.

능침 후면에서 바라본 모습 촬영하는 자리는 풍수적으로는 이곳의 기혈이 모여있는 곳이기도합니다.
건원릉의 봉분은 북방의 억새로 유명하지만 매해 한식때에 한번씩 예초하는 청완예초의를 거행합니다.
방문이 4월말이라 얼마되지 않아 다른 왕릉과 특별히 다른점을 볼수 없었습니다. 늦가을에 다시 한번 오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능침 후면의 능선 나무에 가렸지만 좌청룡 우백호가 확연하게 드러난 곳으로 풍수적으로는 대단한 명당이라고 합니다.
해설사님의 설명으로는 중국에서 온 풍수학자는 건원릉의 지형이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했다 합니다.

조선왕릉 건원릉의 석물 혼유석 고석 장명등 망주석 석양 석호
장명등

장명등을 통해 내려다본 정자각 조선왕릉 답사를 자주하는 인스타그램 친구들의 샷이라 흉내내봤습니다. 장명등에서 바라보면 정자각과 왕릉의 영역인 주산이 보입니다.

조선왕릉은 다른나라의 왕릉을 생각하면 규모면에서 작아보이지만 주변 자연환경까지도 왕릉의 권역으로 설정했기에 실제로는 더 넓게 사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혼유석과 고석으로 화면에 안잡혔지만 고석 한개는 많이 훼손되어 나무 받침대를 받쳐두었습니다. (글을 작성한 시점인 2019년 4월의 상황)
육백년을 지탱해온 고석으로 최근에 보수를 하고 새로운 고석으로 교체했습니다.
혼유석은 일반 묘지처럼 제사상이 차려지는 공간이 아니고 말 그대로 영혼이 노니는 돌입니다.

혼이 자신의 능의 위치를 찾는 망주석으로 초기에는 세호(호랑이)가 아닌 귀모양이 새겨져있습니다.

흡사 다람쥐처럼 생긴 세호는 세조 이후에 나타나는 양식입니다.

건원릉 병풍석과 난간석 병풍석 각면에는 십이지가 새겨져있습니다. 후대에는 문자로 대체하고 병풍석은 세조의 유언으로 사라졌다 성종 때 다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이후 여러가지 변천이 있기도 했습니다.


봉분을 수호하고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석호와 석양



건원릉의 석양과 석마는 다리 가운데가 비어있는 형상인데 보통 막혀진 형태로 만들어진 것들이 많습니다.
이유는 세월의 풍화를 이기기 위한 것이라는 설이 있는데 마지막에 세워진 홍유릉의 석물들은 조성 방식이 다르긴하지만 모두 뚫린 형태로 내구성이 조금 불안해 보이기도 합니다.
태조 이성계 건원릉의 무석인과 문석인 석마
건원릉의 무석인으로 원래 타고난 무인이었던 태조를 어딘가 닮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많이합니다. 그렇게 믿고싶은 마음인데 물론 근거는 없는 이야기입니다.


건원릉 문석인의 모습

건원릉 석마

조선왕릉의 상징과도 같은 억새와 어우러진 늦은 가을이 기다려지는 건원릉입니다. 다음에 방문기를 소개하겠습니다.
건원릉 소개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