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옹주묘를 찾아가다 만난 고양이
정정옹주묘를 찾아간 날은 2016년 5월
집에서 나선 산책길..
안산대학교 뒤에있는 성태산을 가로질러 수리산 수암봉까지 하루종일 걸리는 코스가있습니다.
높지는 않지만 지루한 능선을 여러차레 오르락내리락 하는 코스.. 점심 먹고 준비없이 나갔기에 중간을 가로질러 돌아오는 코스로 정하고 부곡동으로 출발..
가는 길에 보게된 정정옹주묘 표지판.. 말로만 들었고 실체를 확인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표지판을 따라갔더니 사방으로 철조망이 둘러진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옆으로난 길위로 올라갔더니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방문객도 적고 관리상의 문제로 닫아둔 듯했는데 바깥쪽에 적절한 안내가 없어 살짝 난감
2025년 최근에 방문했을 때는 정리가 많이 되어있어 표지판도 있고 탐방로도 정리된 모습이었습니다.
옆으로 돌아가는중에 만난 고양이는 사람 손길을 피하지 않기에 몇번 쓰담쓰담하다가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정정옹주묘 주변을 한바퀴 도는동안 계속 따라옴..
오르막길도 강아지처럼 쫓아오는 특이한 녀석

철조망 둘러진 담사이로 구경하며 사진을 잠깐 찍었는데 담장위에도 올라갔다 내려왔습니다. 고녀석 하다가 마지막 자물쇠로 잠긴 철문앞에서 헤어짐 흡사 이곳은 내 영역이라는듯 더이상 따라오지 않음.
촬영하던 담장으로 올라감

정정옹주묘에서 만난 고양이 입구부터 한바퀴 돌때까지 계속 따라옴… 동영상
정정옹주와 남편 진안위 유적의 일생
정정옹주는 선조와 정빈홍씨의 딸로 옹주는 후궁의 딸을 의미합니다.
정정옹주는 1595년 임진왜란당시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했고 어린시절 영특했다고 전해지는 가운데 시아버지 될사람과 선조의 죽음으로 늦춰진 결혼을 했으며 진안위 유적에게 시집을 갑니다.
부부는 아버지인 선조가 사패지로 하사한 경기도 안산에 터를 잡았습니다. 이후로 진주유씨가 정착한 부곡동은 안산 지역은 물론 근기남인의 근거지가 되었습니다.
정정옹주는 예전에 방영하던 사극 화정의 주인공인 정명공주와 영창대군의 배다른 누이로 오빠인 광해군시절 인목왕후 폐위때 반대의 입장을 취했으며 이로인해 조용히 칩거하다 유적은 사망…
인조반정이후 유적은 이때의 처신으로 통헌대부로 추존되며 예우를 받게됩니다.
후사가 없기에 문중의 유명전을 양자로 들였지만 과거급제후 2년만에 사망하고 이후 1666년 정정옹주도 사망하게되면서 이곳 안산 부곡동에 묻힘..
현재묘는 영상에서 나올 때처럼 전주이씨 문중에서 관리할 것으로 순간적으로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남편의 집안인 진주유씨 문중에서 관리…

정정옹주묘 설명
정정 옹주묘 선조 후궁 정빈 홍씨의 소생으로 선조 37년 정정옹주로 봉해지고 묘는 부곡동에 있다. 지정번호 : 안산시 향토유적 제14호 소재지 :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 산50-40 시대 : 조선조 현종7년(1666) 규모 : 봉분 – 200×540cm 선조의 후궁 정빈(貞嬪) 홍씨(洪氏)의 소생으로 선조의 아홉번째 딸이다. 선조 37년(1604) 정정 옹주로 봉해지고 광해군 2년 진안위(晋安尉) 유적에게 출가하였다. 광해군의 이복동생인 영창대 군(永昌大君)이 강화도에서 증살(蒸殺)되었고 이어 광해군이 선조의 계비(繼妃)인 인목대비 (仁穆大妃)를 폐모하려 하자 지아비와 더불어 이를 반대하였다. 후에 인조반정으로 인조가 즉위하자, 인조는 광해군 치하에서 진안위가 정의롭게 처신하였다 하여 통헌대부에 추증하고 정정 옹주에게도 두터운 예로 대우하였다. 후사가 없어 시동생 영(潁)의 아들 명전(命全)을 양자로 삼았으나 명전도 문과에 급제한지 2년만에 요절하였다. 이후 2년만에 옹주도 타계하니 현종은 정사를 폐하고 장례비용을 후사하였으며 스스로 빈소에 나아가 진안위묘에 합장토록 하였다. 묘는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에 있다. 자료출처 정정옹주 묘 – 디지털안산문화대전 |

구글맵에 정정옹주묘는 표시되지 않습니다. 정정옹주묘는 부곡공원내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