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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도서 – 단원 김홍도 – 오주석 지음

단원 김홍도 연구서와 오주석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많이 알려진 화가를 꼽으라면 단원 김홍도를 제일 처음 이야기할수 있습니다.

단원의 풍속화는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그림이기도합니다. 

현재 전하는 단원의 작품은 대략 3백점정도입니다.

김홍도 연구로 유명한 오주석 선생의 말에 의하면 당시 화원들이 가졌던 생활상이나 성실함 그리고 정조의 특별화가로서의 활동까지 고려하면 대략 만점이 넘었을 것으로 추산합니다.

도서관에서 우리나라 화가와 관련된 책들을 보면 김홍도관련 책들이 상당히 많은 것을 볼수 있지만 단연코 군계일학은 오주석 선생의 김홍도 연구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주석이 저술한 단원 김홍도
오주석이 저술한 단원 김홍도

오주석 선생은 오십이라는 촉망받는 학자로서는 안타까운 나이에 지병으로 별세를 했습니다.

우리그림 읽어내는데 탁월한 식견을 가졌고 열정적으로 연구를 하셨던 분이기에 더욱 안타깝기도합니다.

역사학을 전공했기에 승정원일기의 날씨기록을 대조해 겸재 정선의 인왕재색도가 그려진 날짜를 정확하게 추산하기도했습니다.

단원의 시조를 찾아내기도 한데다 이채 초상화 두점이 할아버지와 손주가 아닌 동일 인물의 시간차이라는걸 간파하고 피부과 전문의에게 문의해 새롭게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실력과 열정이 결합해낸 역작들을 많이 기대하게 했던 평론가이기도했습니다.

오주석의 가장 유명한책은 한국의미 특강인데 우리그림을 보고 읽는법을 쉽지만 상세하게 기술하기도 했습니다.

수원 출신 미술 사학자를 기리기 위해 수원 남창동에 오주석의 서재가 지난 9월에 열렸다는데 시간날때 방문해볼 생각입니다.

김홍도와 빈곤함에 대하여

한가지 분명히 해둔건 일부 춘화가 김홍도작이라고 전하는데 이는 김홍도의 생활이나 품성등 됨됨이를 고려하면 전혀 그의 작품일수 없다고 합니다.

당시가 지금처럼 돈을 밝히는 사회도 아니었고 정조의 돈독한 신임을 얻었던 김홍도는 임금을위해 주어진 그림을 그리기에도 바빴고 고관대작들의 그림 청탁도 들어주기 힘들정도로 시간이 없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의 명성에 맞게 항상 그림 부탁이 많았고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섬세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감흥이 돋지않으면 시일이 오래된것이라도 붓을 잡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조희룡은 호산외사에서 김홍도가 매화 그림을 그리기로하고 그돈으로 그 매화를 사고 술을산 다음에 간신히 쌀이나 조금 사가 생활이 곤궁했을거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단지 김홍도가 지닌 풍류를 띄워주기위한 수사였을뿐 실상은 먹고사는건 크게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재산을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청빈한 생활에 대한 선비들의 수사였다고 보는게 당시에는 이런식의 비유들을 덕담 비슷하게 서로들 했다고합니다.

김홍도의 일화와 풍류

단원의 풍류를 볼수있는 그림 – 포의풍류도

단원 김홍도 포의풍류도
단원 김홍도 포의풍류도

스승이자 당대 최고의 화가이고 비평가였던 강세황의 영향으로 문인화가 가지는 높은 격조를 코흘리개 시절부터 몸으로 배운 것이기에 그에 어울리지 않는 그림을 그렸을리 없다고보입니다. 

김홍도의 중년 자화상인 포의풍류도를 보더라도 풍류를위한 진귀한 명품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악기 연주가 매우 빼어났던 음악가이기도했던 김홍도였는데 지병이 있었는지 당시 편지들을 보면 고질병이 돋아 힘들다는 토로를 하고있기도 합니다.

연풍 현감 시절도 인터넷에서는 중매나 놔주고 사냥이나 다닌식으로 묘사된것들이 있지만 도드라지게 끄집어낸 극히 일부분이었습니다.

당시의 업무 평가는 나쁘지는 않은편에 속했다고 합니다.

다만 자기위에있던 지방관들의 알력속에서 억울하게 뒤집어쓴 결과임을 밝히기도했습니다.

당시에 파직이되고 한양으로 압송중에 바로 풀려나기도했습니다.

김홍도의 외모는 많은 군중가운데서도 눈에 띄일만큼 출중했고 그림은 물론 글씨도 잘쓴데다 편지들을 보면 매우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였습니다.

거기에다 음악적인 조예도 깊어 악기 연주도 빼어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런 김홍도의 됨됨이를 저자인 오주석 선생은 역사학을 전공한분답게 기록들을 대조하면서 지금 이시대에 김홍도를 되살렸다고 평할수 있겠습니다.

김홍도의 그림과 인간적인 삶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야할 도서중에 하나입니다!

단원 김홍도 저자 오주석 소개

미술평론가 사학자 오주석 사진
미술평론가 사학자 오주석 사진


솔출판사 오주석 소개

서울대 동양사학과, 동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더 코리아헤럴드 문화부 기자, 호암미술관 및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원을 거쳐 중앙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다.

간송미술관 연구 위원 및 연세대학교 영상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했다.

단원 김홍도와 조선시대의 그림을 가장 잘 이해한 21세기의 미술사학자라 평가받은 그는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을 알리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강연을 펼쳤습니다.

한국 전통미술의 대중화에 앞장선 사람이다.

2005년 2월 49세의 나이에 혈액암과 백혈병을 얻어 스스로 곡기를 끊음으로써 생을 마쳤다. 

그는 그림을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읽고 그 속의 작가와 대화를 하도록 가르쳐준다.

그림 속에서 무심히 지나칠 선 하나, 점 하나의 의미를 일깨우며 그림의 진정한 참맛을 알게 한다.

그러기에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워졌고 이에 따라 98년에 <단원 김홍도>로 시작된 그의 저술은 계속 이어지면서 옛 그림에 대한 일반인들의 사랑을 불러 일으켰다.

학계에서는 그에 대해 “엄정한 감식안과 작가에 대한 전기(傳記)적 고증으로 회화사의 저변을 넓히는 데 힘써 왔다”고 평가한다.

오주석의 주요 저작

1995년 김홍도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단원 김홍도 특별전’을 기획해 주목받았으며, 저서로는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단원 김홍도』『우리 문화의 황금기 진경시대』및 유작 『오주석이 사랑한 우리 그림』이 있다. 오주석은 “우리 옛그림 안에는 우리가 지금 이 땅에 사는 이유, 그리고 우리인 까닭이 들어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내가 사랑하는 우리그림 하나 대기가 힘들다”고 하면서 전국을 돌며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에 대해 강연을 해왔다.

그는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知者 不如樂之者)”는 옛말을 인용하며, “감상은 영혼의 떨림으로 느끼는 행위인 만큼 마음 비우기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의 대표작 『단원 김홍도』에서는 김홍도의 전모를 크게 세 층위에서 당대의 화가 가운데서도 여러 방면의 그림을 가장 잘 그리고, 게다가 글씨까지 잘 쓴 서화가의 면모, 시를 잘 짓고 악기를 잘 다룬 풍류인의 면모, 그리고 사람 됨됨이가 호쾌하면서 일방 섬세한 선인의 면모를 보여준다.

고 문일평 선생은 그를 일러 ‘그림 신선’이라고 지칭하기도 했는데 그것은 일차적으로는 그 예술의 드높고 아득한 깊이를 말한 것이지만, 나아가서 그의 생김생김이나 인품, 그리고 초탈한 생활의 모습이 신선 같았다는 조희룡의 전기에 근거한 것이기도 하다. 필자는 김홍도의 작품 속에서 시대에 대한 그의 사랑을 읽어내고 또한 그 자신과 스승 강세황의 여유롭고 해학적인 기질과 그의 절대적 후원자였던 뛰어난 철인군주 정조의 훌륭한 예술적 안목과 위민정치의 양상을 읽어낸다. 

『오주석의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은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화가 9명의 명화 12점을 충실하게 해설하는 작품으로 우리 옛 그림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안목을 키워주는 우리 문화유산 안내서이다. 이 책은 김명국의 <달마상>, 안견의 <몽유도원도>, 윤두서의 <진단타려도>, 김정희의 <세한도>, 정선의 <인왕제색도>, 김홍도의 <씨름>과 <무동> 등 12편의 명화가 간직한 숨은 이야기들을 들려주며 그 그림들이 왜 좋은지, 왜 의미 있는지를 자세히 설명한다. 

『이인문의 강산무진도』는 오주석 선생이 타계한 이후 그가 생전에 제출했던 연구계획서에 따라 유고를 모아 역사문화 연구소에서 낸 책으로 그의 석사논문을 발전시켜 쓴 글이다.

조선 선비의 심오한 철학과 이념적 지향 위에서 강산무진도를 해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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