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안산 일동에 오면 대로변인 성호공원에 식물원 (행정구역상 이동이지만 접근성은 일동이 더 가깝습니다)이 있고 바로 옆에는 공영주차장과 성호박물관(성호박물관은 일동)이 있습니다. 성호 이익 선생이 어린 시절 내려온 후 평생을 머무르며 학문에 정진하던 곳으로 박물관 맞은편에는 성호 이익 선생의 묘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익선생묘는 안산 개발을 하던 70년대에 이장 논의가 있었는데 섬계 이잠등 다른 묘소는 이장을 했지만 이익 선생묘는 남겨두게 되었습니다. 이익 선생묘는 직계 후손이 없어 방치되다 1967년 이익선생 추모회에 의해서 정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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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설명 이익 선생묘 李瀷 先生墓 경기도 기념물 제40호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일동 555 조선 후기 실학(實學)의 대가 이익(1681~1763) 선생의 묘이다. 선생의 자(字)는 자신(子新), 호(號)는 안산 첨성리(瞻星里)의 명칭을 따 성호(星湖)라 하였다. 선생은 해박한 지식과 소양을 바탕으로 「성호사설(星湖僿說)」 과 「곽우록(藿憂錄)」 등 100여 권의 저술을 통해 당시 사회의 부조리를 실증적으로 분석·비판하여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였으며, 이러한 선생의 학문과 사상은 안정복, 정약용 등에게 계승되어 우리나라 실학사상의 원류가 되었다. 이곳 묘역에는 원래 이익 선생을 비롯하여 선생의 둘째 형 이잠, 선생의 외아들 이맹휴, 손자 이구환, 그리고 선생의 숙부 이국진 등 5위의 묘가 모셔져 있었다. 이후에 1977년 6월 반월공업 단지가 조성되면서 이익 선생 묘를 포함한 모든 분묘가 이장 공고 되었으나 이익 선생의 묘소만은 원위치에 보존해야 한다는 지역 사회와 학계의 중론에 따라 선생의 묘소는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오늘날까지 보존되었다. 1985년 우리나라의 민족 문화를 빛낸 선현중 사상분과(思想分科) 10인의 선현으로 이익 선생이 선정됨에 따라 묘역이 정비되었고, 1988년에는 사당조상의 신주를 모셔 놓은 집 첨성사(瞻星祠)와 재실(무덤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 경호재(景湖齋)의 준공이 이루어졌다. 아울러 2002년에는 선생의 묘역 건너편에 성호기념관을 건립함으로써 선생의 실학사상을 기리고 있다. |
이익선생묘 망주석(望柱石 묘의 시작점을 알리고 멀리서 볼 수 있게 만들 것으로 우리나라 왕릉에서는 혼이 자신의 위치를 찾는 표석으로도 사용)과 상석 그리고 정조시대 영의정이자 남인이었던 채제공이 쓴 비석이 세워져 있고 봉분 뒤에는 왕릉의 도래솔처럼 소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있습니다. 원래 이어져 있었을 현재의 점섬 공원과는 중간에 끊어진 상태입니다.
주택가와 도로 중간에 섬처럼 남아있는 이익선생 묘소입니다. 도로를 가로질러 일부러 가야하기에 관람 연계성과 편리성을 고려해 성호 박물관과 육교로 이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때가 있습니다.
묘소옆 공간은 햇볕이 많이 드는 곳이고 성호공원 조망이 되기에 특히 낙엽이 가득한 가을날 풍경이 보기 좋습니다. 성호 선생의 뜻을 기린다면 거창하진 않더라도 별을 관측하는 시설이 하나 있으면 좋을것 같습니다.
성호 이익 선생과 고령 신씨 사천 목씨 세분의 합장묘
이익 선생묘 안내문
바로 옆에 있는 사당은 대체로 잠겨있을텐데요 2015년에 산책하다 문이 열려져 있기에 안에 계시던 관리하는 분 허락하에 잠시 보고 나온 적이 있습니다. 첨성사와 경호재는 1988년에 지어졌습니다.
이익 선생묘 사당인 첨성사 현판 - 안산 일동은 점성으로 불리는 마을이었지만 점섬이나 첨성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내부에는 이익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있습니다.
성호 이익 선생의 재실 경호재 현판
글씨는 태동고전연구소를 세운 청명 임창순 선생입니다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key=563936
2014년 이익선생묘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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