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수묵화로 추정되는 독화로사도 - 이동천

Posted by 놀이터 추억보관소
2018.12.12 10:52 문화와예술/역사 화가와 그림

우리나라 고서화 시장에 파란을 가져왔던 이동천 박사는 국내 유일무이의 고서화 감정학 박사학위 소지자이기도합니다. 중국에서 다년간의 도제식 수련까지 받고들어와 천원짜리 화폐 뒷면의 정선의 계상정거도가 임모작이라고 이야기해 한동안 주목을 받았고 천경자 화백의 뉴델리로 서명을 근거로 위작이라고 밝혔습니다.

국내에서는 아직 인정을 받지 못하는 모습을 볼수있는데 그동안은 감정방식이나 감정한 사람이 누구인지 철저하게 가려져있기에 막연한 권위에 의존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인된 기관인것도 아니고 나중에 위작으로 판명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장자의 몫이기에 위작인지 모르고 구입했다면 막대한 손실이기도합니다. 

이동천 박사가 제시한 위작의 증거들은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것들이기에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점점 설득력있게 다가오고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사회적인 관심을 끌기위해 기존의 것을 대부분 부정하는 음모론이나 이런건 별로 좋아하지 않는편인데 그런 부류는 아니라는뜻...

역으로 그동안 별다른 이야기없이 넘어가던 불편한 부분이라 상당히 많은 압력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특히 유홍준 이태호 안휘준 이름난 미술사가들과의 의견 대립은 많은 심적 부담이 있었을것으로 보이는데 진실을 가리는 것이라 불편한 부분이 나타나더라도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동천 박사는 감정의 공신성이 높아지면 정선이나 김홍도 추사의 진작들은 지금보다 더욱 높은 가격에 거래가 될수 있다고 보고있습니다. 재미있는건 여러가지 형태의 위작중에는 정선 김홍도 추사의 작품이 의외로 많다고하니 근거가 확실하더라도 일반적인 통설을 뒤집는 것이라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릴수 있는 것들..


YTN 사이언스에 출연한 이동천 박사



고려시대 그림으로 제일 먼저 떠오르는건 화려한 고려불화이고 그외에는 예성강도를 그린 이경이 중국에서도 유명했다고 하지만 전해지는 그림이 없습니다. 사극을 많이 보신분이라면 공민왕을 떠올릴텐데 노국공주와 같이 마주보는 그림과 직접 그렸다는 천산대렵도가 있습니다. 


공민왕과 노국공주 - 종묘에 가면 공민왕 신당이 있습니다. 그곳에 있는 초상화


공민왕이 그렸고 현재는 조각으로 전해지는 천산대렵도 부분...





이동천 박사가 경매장에서 구입한 독화로사도는 고려시대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매우 획기적인 일로 미술사가 다시 쓰여져야할정도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그리 잦은 전란으로 온전하게 보존된 수묵화는 고려시대는 물론이고 조선 전기에 그려진 것들도 많지 않습니다.


군산 선유도 망주봉을 배경으로 그려진 고려시대 산수화 독화로사도


이작품은 고려시대 중기에 그려진걸 후기인 1350년대에 정교하게 모사한 그림으로 추정


이규보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온상인소축독화로사도’


“그대는 못 봤는가, 이백이 지은 시에서 마음의 한가로움을 이야기한 것을/ 오다가다 모래톱가에 홀로 서 있네/ 누구의 그림 솜씨가 이토록 신통한가/ 그림 그린 묘한 뜻 이백의 마음과 방불하구나/ 나는 처음에 화공의 의취를 깨닫지 못해/ 턱을 괴고 벽에 기대 혼자서 생각했네/ 이미 강호(江湖)의 기절한 경치를 그렸으면/ 어째서 어부와 사공이 왕래하며 유유히 노는 것은 그리지 않았는가/ 이미 백로의 뜻을 이룬 모습을 그렸으면/ 어째서 노는 물고기와 기는 게가 분주하게 출몰하는 것은 그리지 않았는가/ 가만히 생각하고 묵묵히 추리해 비로소 알아냈으니/ 생각으로는 이르지 못할 점이 여기에 숨겨져 있는 줄을/ 저 백로 사람을 봤다면/ 모래톱 머리에서 날개 치며 화닥닥 일어나 놀라 날아갈 것이며/ 저 백로 물고기를 엿봤을 때라면/ 갈대밭 사이에 우뚝 서서 움직이지 않은 채 한가롭기는 어려우리/ 어찌 백로의 한가로운 모습으로 해금/ 도리어 참새처럼 깜짝깜짝 놀라게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뜻을 아는 이가 적기에/ 내가 노래를 지어 비로소 널리 알리려 하네.”


송나라에서 사신으로 왔던 서긍 고려도경


“군산정은 바닷가에 있고 두 봉우리에 의지했는데, 그 두 봉우리는 나란히 우뚝 서 있어 절벽을 이루고 수백 길이나 치솟아 있다. 관문 밖에는 관아 십여 칸이 있고, 서쪽 가까운 산 위에는 오룡묘와 자복사가 있다. 또 서쪽에 숭산행궁이 있고 그 전후좌우로 민가가 열 두어 채 있다.”  


발굴내용 상세보기 - http://weekly.donga.com/List/3/all/11/95544/1

독화로사도 이동천박사의 직접 설명 영상 - http://pan.best/AVNBGy0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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