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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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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동구릉 원릉 능침 영조 정순왕후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는 경주 김씨로 15세의 나이로 당시 66세의 할아버지였던 영조와 국혼을 하게됩니다. 왕비 자리는 상징적인 의미도 크지만 요즘 같아선.. 할아버지와 손녀뻘... 더구나 정순왕후는 정조 독살설의 주인공으로 나쁘게 묘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10여년전 심환지와 정조의 밀서가 발견되어 독살설은 지금으로선 사실무근인게 밝혀졌지만 그전까지는 정조사후 조선의 국운이 기울기 시작하는 시기의 권력자로 보여지기도 했습니다. 장용영 해체나 천주교 박해등등.. 하지만 실록을 통해본 정순왕후는 나름 정치적 식견이 높고 중립적인 인물로 평가됩니다. 헬조선으로 불리는 조선말의 세도정치는 왕권이 강화되었을때 극심한 당쟁이 사라졌다 왕권이 약해졌을때 권력의 쏠림 현상이 몰고온 것으로 보기도합니다. 정조가 사후에 ..
[연재] 조선 왕릉 답사 시작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답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답사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한두번 소풍으로 가봤음직한 조선왕릉은 화려한 건축물도 없고 세계 각지의 왕릉이 당한것처럼 도굴범의 소굴이 될만한 부장품도 나오지 않고 애초에 묻히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조선왕릉은 절제미라고 할수밖에 없는 왕릉치고는 소박한 모양새이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보존된 자연환경과 남한에 있는 40기의 왕릉이 온전한 모습(훼손이 있긴 했지만 복원이 가능한 정도)으로 지금까지 육백여년의 시간차를 두고 내려져온것 그리고 전통의 제향의식이 아직도 거행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절제미는 지금까지 온전하게 지켜져내려온 조상의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아주 꼼꼼하게 기록된 의궤는 원형..
추사 김정희 문인이자 최고의 학자였던 예술가 - 생애 흔하게 추사체의 창시자로 생각하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일반적으로 깊이 알아보지 않았다면 추사 김정희는 한석봉처럼 글씨 잘쓰고 단원 김홍도처럼 그림 잘그리는 예술가로서 인지하는 경우가 꽤많지만 실제로 그는 금석학의 대가로서 지금기준으로 보면 (당시 성리학적 전통이 많이 사라진 상태의 청나라까지 이름이 알려졌는데 아직 성리학적 기운이 많이 남아있던 조선에서온 학인들의 식견을 알아보고 대우해주었고 역으로 당시 청나라의 높은 문명 수준을 답답했던 조선에 접목시키려던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등 실용적이고 개혁적 성향의 북학파 학자들을 볼수있습니다)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인문학자로 이야기할수 있습니다. 추사의 애제자 소치 허련이 그린 김정희 그림에 관해서 추사는 심의(心意)를 중시하는 문인화의 특징인 문..
[창덕궁] 후원관람 연경당 - 효명세자의 개혁의지가 서려있는곳 창덕궁 후원에는 효명세자와 관련된 곳이 많지만 가장 대표적인것은 이곳 연경당이라 할 수 있습니다. 효명세자는 순조의 권력을 이어받을 세자로 실제로 임금으로 등극하지는 않았지만 실권자로서 짧고 굵게 대리청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효명세자는 요새말로하면 그야말로 엄친아라 할 수 있습니다. 수려한 외모와 고귀한 신분은 왕세자이고 어린나이였지만 학식을 겸비한데다 감수성이 뛰어나 문학에도 출중했으며 여기에 덧붙여 음악과 춤에 정통해 각종 궁중의례를 직접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것때문에 의외로 국악이나 궁중복식을 연구하는 분들에게 효명세자는 굉장히 유명하다고합니다. 이시절은 바로 조선 후기로 넘어서면서 안동김씨 세력의 입김이 매우 강해지고 세도정치라고 부를만큼 왕위에 군림하는것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역사에 관심있는 사..
[창덕궁] 후원관람 옥류천 취규정 취한정 소요정 태극정 청의정 농산정 예전에 꽤 오랫동안 서울에 살았을때는 앞으로 그렇게 지나다니면서도 희안하게 궁궐에 들어가본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경복궁은 그앞으로 버스타러 매일 가로질러 다녔고.. 경희궁앞 지금 서울역사박물관이 있는곳은 공원이었을때 수시로 앉아서 멍때리던 곳이며.. 덕수궁 돌담길은 걸어도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으며 사진 한장으로만 덩그라니 남은 창경궁은 창경원일때 동물구경하러 한번 가본곳...아마도 서울만한 궁궐을 가진 도시도 드물것입니다. 조선시대 5대궁궐은 물론이고 한성 백제의 몽촌토성 풍납토성까지 생각하면.. 아마 원형 보전이 잘되었다면 국제적인 관광도시가 될수도 있었습니다. 아이랑 몇년동안 틈틈이 답사다니면서 들여다보니 서울만큼 역사 유적이 많은곳도 없습니다. 지금도 제대로 둘러보지못한 유적지가 구석구석에 있습니..
[창덕궁] 동궐도와 돈화문 그리고 조선시대 왕가의 정원이 있던곳 창덕궁 후원 - 1 창덕궁은 조선의 법궁이던 경복궁을 대신해 태종 이방원이 건설한 곳입니다. 태조의 조선 건국에 능력이나 기여도로 따지면 후계는 당연히 자신의 몫인줄 알았건만 신정왕후의 읍소와 정도전의 지지로 막내에게 돌아간 후계구도... 왕자의난이후 골육간의 상쟁을 통해 왕이된이후 지긋지긋한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던것으로 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정적인 정도전의 그림자까지 지워내고 싶었을듯... 창덕궁은 성종이후 대비들을위해 크게 변모하는 창경궁과 더불어 보통 동궐로 불립니다. 그럼 서궐은 어디? 일제시대 공중분해되어 지금은 자취만 남았다고 할수있는 경희궁입니다. 임진왜란이후 선조의 뒤를이은 광해군이 세운곳으로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의 왕기가 서린 바위가 있는 사가를 헐어내고 지은곳으로 실제로 들어가 살지는 못한..
옛그림에 그려진 궁궐 속 우리나무-‘동궐도와 함께하는 창덕궁 나무답사’확대 운영 10.7.~30. 매주 금ㆍ토ㆍ일 - 창덕궁은 자연환경을 그대로 이용한 독특한 형식의 궁궐입니다. 경복궁은 직선적인 구조라면 창덕궁은 비뚤빼뚤 원래의 공간을 그대로 살려 설계하고 만들어 졌습니다. 창덕궁을 설계한 박자청은 이로인해 벌을 받기도 했지만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될만큼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창덕궁은 태종 이방원이 왕자의난등으로 너무 많은 피를본 경복궁을 피해 들어간 곳입니다. 조선시대 경복궁은 임진왜란이후 방치되었고 고종대에 조대비와 흥선대원군이 복원을 시작할때까지 쓰이지 않았습니다. 조선시대 가장 많이 왕들에의해 사용된곳은 창덕궁입니다. 블로그 관련글2015/10/13 - [역사유적 방문/고궁] - 창덕궁 처음가던날 - 2013년 8월6일 날씨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 동궐도는 현재 2개본이 있고 순조대에..
효명세자의 부인 신정왕후의 일생 - 동구릉 수릉 후일 고종을 즉위시킨 조대비로 나오는 효명세자의 부인인 신정왕후는 안동김씨와 더불어 세도정치를 펼치던 풍양조씨 집안입니다. 순조시절 세도가이던 안동김씨와 더불어 반남박씨 세력을 몰아낸 것으로 세자빈이 될수 있었습니다. 당시 12세때의 일로 효명세자 이영은 11살이던 시절입니다.현재 방영중인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는 로맨스를 위해 밀당하는 18세 소녀로 나오지만 실제로 이때는 세자빈으로 있은지 벌써 6년이 넘어가는 시점으로 나중에 헌종이 되는 세손이 태어나기 일년전입니다. 그동안 거의 조명받지 못했던 효명세자를 다룬 사극 구르미 그린 달빛의 주인공 이영역의 박보검 현재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결과를 놓고보면 절묘한 캐스팅이란 생각이 듭니다.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후일 신정왕후 조대비가 되는 풍양조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