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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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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와 최순실 그리고 최태민 고려시대 공민왕과 함께 국정을 농단하던 신돈은 그래도 러시아의 괴승인 라스푸친과 비교되면서 개혁자인가 아닌가 하는 일말의 논란이라도 있습니다. 물론 대신 한동안 왕노릇했던것도 있지만 그래도 공민왕은 노국공주가 살아있던 시절 나름의 초기의 치적이 있습니다. 신돈도 정치적인 포석이 있었던부분도 있다고 해석할수 있습니다. 문정왕후의 보우는 승려임에도 병조판서에 임명하는등 역시 국정을 조롱했지만 그래도 주종관계는 확실했습니다. 문정왕후의 총애를 받았지 보우의 조종을 받은게 아닙니다. 문정왕후에게 많은 조언을 건네던 정난정도 주종관계는 그어져 있었다고 할수있습니다. 무속에 빠져 살았다던 명성황후.. 많은 국고를 탕진했다고 알려졌는데 비판을 많이 받아야하지만 그래도 당시는 시대적으로 왕정시대였고 역시 주종관계가 바..
경복궁 고궁박물관 전시 관람 - 조선왕릉,왕실의 영혼을 담다 지금 고궁박물관에 가면 조선왕릉 특별전을 열고 있습니다. 6월21일에는 별관에서 학술대회가 있었고 22일에는 신청했던 의궤에 관해 집옥재 강의듣고 잠깐 들렀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은 단순하게 보면 왕의 마지막 휴식처라 할수있겠지만 당대의 유교적 정서에 입각한 성리학적 세계관과 입지선정에 따르는 풍수사상 그리고 조각품과 건축물에서 예술과 건축의 정점을 만날수 있는 공간입니다. 더구나 해당 임금이나 왕후등 왕족들의 스토리들이 녹아들어있는 역사가 숨쉬는 곳이기도합니다. 가족과 함께 다니던 답사중에 성곽이나 궁궐은 한번 돌아본곳은 일정한 시간적 차이를 두고가게되는데 왕릉은 산재한 곳이 많고 서울을 중심으로 여러곳으로 넓게 분포해 한두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오백여년이 넘는 시간차이..
[조선왕릉 홍유릉 능침] 마지막 황제 순종의 유릉 - 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 합장릉 순종은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이자 형식을 떠나 기나긴 기록의 나라였던 조선왕조의 마지막 군주로 기억됩니다. 고종이 강제폐위되고 순종은 즉위식에 참가하지 않은 가운데 내시들에게 옷을 입혀 즉위식을 진행하는 일제와 친일파 무리들.. 최대한 여론의 동요를 무마시키며 서서히 자신들의 입맛대로 침략하는 시대였습니다. 순종은 고종과 명성황후의 둘째 아들로 창덕궁 관물헌에서 1874년 3월25일에 태어나 1926년 4월 26일날 승하합니다. 탄생한 다음해 2월 왕세자로 책봉되었고 1882년 순명효황후 민씨를 세자빈으로 맞습니다. 어려서부터 병약한편이었고 김홍륙의 다량의 아편을 이용한 독살시도도 있었는데 실제로는 일제의 뒤집어 씌우기 의도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이때 치아가 대부분 망가지고 몇일을 앓아누웠다고 합니다. ..
[조선왕릉 홍유릉 능침] 대한제국 고종황제릉 홍릉 능침 - 고종 명성황후 합장릉 홍유릉은 작년 2015년에 방문했었습니다. 그때는 이곳 해설사님의 친절한 이야기를 들으며 설명을 들었지만 능침에는 올라가볼 수 없었습니다. 이번 대한제국의 발자취를 따라서 프로그램에 참석하면서 능침공간에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조선 왕릉 관리소에서 나오신 훈남 선생님 덕분이었습니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합장릉 형태이지만 실제적으로 명성황후의 시신은 없습니다. 을미사변이후 일본 군인들과 낭인들에의해 불태워지면서 이곳에 들어가있는건 옷가지들뿐... 실제 시신이 없는 왕릉은 선조의 몽진이있던 임진왜란 당시 파헤쳐진 성종의 선릉과 중종의 정릉이 있습니다. 모두 일본과 관계가있습니다. 고종과 명성황후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이웃나라 군인과 불량배들에 의해 짓밟힌건 두고두고 치욕스런 역사입니다. 더구..
덕수궁(경운궁) 석조전과 대한제국 역사관 2 - 2016년 5월 대한제국의 비운을 간직한 황실의 마지막 건축물인 덕수궁 석조전 덕수궁 석조전은 신고전주의 양식풍으로 1층 관람을 마치고 황제를 석조전 2층으로 올라갑니다. 이곳에는 황제의 황후의 침실 그리고 원래 식당이 있던 곳이지만 황제를 직접 폐현(왕은 알현이라하고 황제이기에 폐현이라고 한답니다)하던 장소를 꾸몄습니다. 황제에게는 등을 보이면 안된다기에 외국인들도 모두 폐현후 뒷걸음으로 나가야만 했다고 합니다.대한제국의 황제국 선포는 뜬금없기는 합니다. 주변 강대국들의 입김으로 국운은 이미 기울었고 조강지처인 명성황후도 무참히 비명사한 마당에 고종 자신도 이런 일본을 피해 러시아 대사관으로 피신생활중이었던것을 감안하면 모양새는 매우 보기좋지 않습니다. 대체로 정조사후 조선후기로 넘어오면서 외척의 발호가 장기간 지속되..
[도서평] 미야모토소위, 명성황후를 찌르다 - 이종각 명성황후 민씨의 죽음에 관해 지난번에 읽은 저서는 사바찐의 시선에서 재구성했던것인데이책은 본격적인 탐구서 가운데 하나 실제로 명성황후를 시해한건 낭인들일까? 일본 군인이었을까? 를 밝히는 책저자는 일본군 소위인 미야모토를 지목했는데..미우라는 결과지향적인 군인이었기에 낭인들에게 맡기는 변수로인한 불안함보다 확실한 처리를 원했던것 그렇게하기위해 군인을 최종 순간에 같이 투입시켰던것이 추론이 사실이라면 이문제는 낭인들에게 돌아갈 우발적으로 이뤄졌다는 해석을 지워주는 부분으로충분히 국제적으로 문제화시켜 사과와 배상을 받아야할 문제 블로그의 관련글2015/10/25 - [한국사 놀이터/근대] - [도서평] 명성황후 최후의 날 - 사바찐이 목격한 을미사변 그날 육군 장성 출신의 미우라 고로당시 청일전쟁에 승리하며..
[도서평] 명성황후 최후의 날 - 사바찐이 목격한 을미사변 그날 명성태황후 민씨(明成太皇后 閔氏)... 그녀는 1985년 10월 9일 황후로서 자신의 나라 자신의 처소에서 외국 자객들의 칼에 허망하게 죽임을 당하고 불태워져 사라졌습니다민비라고도 부르는 여인은 국가의 황후였고 대단한 권력자였던 시아버지 흥선대원군과도 겨룰 정도의 야심과 지략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원래 대원군은 외척의 발호를 걱정해 8살때 양친을 여읜 민치록의 딸을 며느리도 받아들이지만 오히려 늑대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불러들인셈 어릴때부터 독서 특히 춘추와 춘추좌씨전같은 역사서를 즐겨 읽었다던 명성황후 민자영대원군과의 권력싸움에서 승리하고 조언자 역할을하며 고종과 매일밤 행사에다 관련인물들이나 무속인들에게 후하게 내주면서 국고를 많이 탕진하기도했기에 우리는 이시대를 말아먹은 사람들로 흥선대원군 고종 민비를..
[서울 정동 기행]구러시아공사관과 고종의 아관파천 조선왕조 오백년 말기 그동안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을 제외한다면 사회가 급속도로 변한 것은 조선말기 대한제국 시절로 초기라 볼수있는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은 외부의 침략에 이백여년 가까지 전쟁이 없었기에 설마했던 무사안일했던 측면과 실질적인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명분에 지나치게 사로잡힌 측면이 있었다면, 구한말은 산업혁명이후 급속도로 팽창한 서구의 근대화를 쫓아가는 시기를 놓쳤기에 우리의지와 상관없이 주변 열강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시절 거기에다 안동김씨 풍향조씨같이 왕위에 군림한다시피할정도의 외척의 발호등 정조사후 부패의 정도가 조금씩 조금씩 심해져 국가의 질적인 면이 서서히 수면 아래로 내려가는 중이었기에 급기야 외세의 입김에 바람처럼 몰려다니던 시절 우리가 알고있는 아관파천은 1896년 2월 11일 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