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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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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조선 왕릉 답사 시작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답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답사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한두번 소풍으로 가봤음직한 조선왕릉은 화려한 건축물도 없고 세계 각지의 왕릉이 당한것처럼 도굴범의 소굴이 될만한 부장품도 나오지 않고 애초에 묻히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조선왕릉은 절제미라고 할수밖에 없는 왕릉치고는 소박한 모양새이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보존된 자연환경과 남한에 있는 40기의 왕릉이 온전한 모습(훼손이 있긴 했지만 복원이 가능한 정도)으로 지금까지 육백여년의 시간차를 두고 내려져온것 그리고 전통의 제향의식이 아직도 거행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절제미는 지금까지 온전하게 지켜져내려온 조상의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아주 꼼꼼하게 기록된 의궤는 원형..
[서평] 김정호의 동여도를 비교해 설명된 '천문과 지리 전략가 이순신' - 이봉수 시루 우리 역사에 위대한 인물들을 꼽자면 무수하겠지만 한두명으로 압축하자고 들면 제일많이 나올분은 이순신 장군을 들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때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지금쯤 이곳은 일본의 반도땅정도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순신에 철저하게 유린당한 일본 수군은 물론이고 보급선이 끊긴 왜군의 곤란함은 임진왜란의 전황 자체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한편에선 이순신의 커다란 영향력을 두려워한 가장 욕먹는 군주인 선조의 졸렬함이 부각되어 강력한 리더쉽과 준비태세 그리고 정신무장이 깊게 각인되었습니다. 십여년전 김명민이 주연으로 나온 사극 불멸의 이순신을 시청할때의 흥분이 아직까지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최근에 읽은 천문과 지리전략가 이순신은 임진왜란 당시 전투가 있던곳을 실제로 20여년간 답사하면서 조선시대 지..
[서울 서촌] 경복궁옆 통의동 창의궁 백송터 - 월성위궁 추사 김정희 집터 최근에 추사관련 글을 연달아 쓰고있습니다. 과천에 추사 박물관이 있지만 서울안에서도 만날수있는 추사 유적지는 경복궁옆 일명 서촌으로 불리는 동네에 김정희 집터가 있습니다. 추사는 아들이 없는 백부 김노영의 집에 대를잇기위해 양자로 들어가는데 추사의 집안은 증조부 김한신이 영조의 딸 화순옹주와 결혼하면서 월성위에 봉해졌습니다. 이주변은 영조가 연잉군시절에 살던곳으로 창의궁이있던 자리입니다. 이후에는 생모 숙빈최씨(사극 동이의 주인공)가 살고있었고 즉위한 뒤에도 가끔씩 들러 잠을자고 가기도 했다는데 화순옹주가 태어난 곳인 창의궁에 집을 하사 월성위궁이 있었습니다. 창의궁안은 사당등이 있었기에 이곳을 전부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김정희는 12세때 이곳에 들어와 관직생활을 하던 당시까지 이곳에 주로..
신석기 유물이 가득한 암사동 선사유적 전시관 관람 앞서 전시관 주변의 움집 모형과 원시 마을 모형등을 봤습니다. 석기시대는 연대를 가늠하는게 어렵고 선사시대이기에 문자로 남겨진것들도 없습니다. 결국 유물을 가지고 판단을 해야되는 시기이기에 출토되는 유물을 연구하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볼수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것처럼 암사동 선사시대 유물이 처음 세상에 나온건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당시였습니다. 이후 계속 묻혀져있다 1967년 전국대학연합 발굴조사단에 의해 발굴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방문은 2014년 4월이었고 암사동을 비롯해 이날은 백제의 근거지였던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을 들렀고 다음에는 송파 백제 고분군과 방이동 고분군을 답사했습니다. 시간이 남아 몽촌토성내의 한성백제 박물관을 재방문했고 올림픽 공원내에 있는 올림픽 기념관도 같이 방문했습니다. 코스..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토기가 대량 출토된 서울 암사동 선사 유적지 한강은 역사적으로 우리민족에게는 많은 역사의 물결을 안겨준 곳입니다. 우리에게 한강의 역사는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암사동에 있는 한강의 유적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당시에 대량의 신석기 유물들이 발견되면서입니다. 시대가 일제시대 였기에 일본은 말로는 내선일체니 내세우긴했지만 오래된 역사유물이 새로나오는게 그리 탐탁치는 않을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현재로선 이유를 정확히 알수없지만 수많은 유물이 나왔지만 거기에서 그치고 그대로 넘어가게됩니다. 한강이 우리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역시 먹고살기 좋은 입지때문이라고 할수있습니다.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아간 커다란 이유라 볼수있습니다. 암사동 선사유적지의 중요성은 집단 거주의 흔적이 있기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곳곳에서 석기시대..
경기도 연천 전곡리 구석기 유적과 구석기 겨울여행 축제 - 2015년 전곡 선사박물관을 관람하고나서 같이 붙어있는 선사유적지와 그곳에서 열리는 구석기 겨울여행 축제를 보러갔습니다. 선사박물관은 당시만해도 유료관람이었고 경기도민 할인받아서 좋아라했는데 지금은 무료로 개방되고 있습니다. 날잡아서 한번 더가는걸로... 관련글보기2018/03/19 - [한국사 놀이터/선사시대] - 고고학계의 통설을 뒤집은 아슐리안 도끼가 출토된 연천 전곡 선사유적지 - 전곡선사박물관 우리가족은 동선을 선사박물관부터 시작한 관계로 선사유적지를 둘러보고 가는중 구석기 축제 동영상 유튜브 - https://youtu.be/7QIQaMPECMM카카오 TV - http://tv.kakao.com/v/383707980네이버 TV - http://tv.naver.com/v/2892666 곳곳에 선사시대와 관..
고고학계의 통설을 뒤집은 아슐리안 도끼가 출토된 연천 전곡 선사유적지 - 전곡선사박물관 한탄강변에 위치한 경기도 연천군의 전곡 선사유적지는 1978년 당시 주한미군으로 와있던 보웬이 발견했습니다. 한탄강에서 애인(이후에 결혼)과 데이트중 우연히 발견한 석기는 대부분이 대수롭지않게 그냥 지나쳤을수도 있었는데, 그레그 보웬은 캘리포니아 빅터벨리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했기에 애인이 줏어온 돌들이 당연히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을터였습니다. 보웬의 제보로 1979년부터 고고학자이자 미술사학자로 유명한 김원룡 선생이 있던 서울대에서 발굴을 시작했고 구석기 유적이 대량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전곡 선사유적지에서 발굴된 것은 아슐리안 도끼로 그때까지의 통설은 아프리카와 중동 유럽등지에서만 발달한 석기였습니다. 아시아에서는 발견된적이 없었기에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곡리 유적을 처음 발견한 그렉 ..
[창경궁] 궁궐답사 - 왕과 신하가 경연하던 숭문당과 과거급제 신하들을 접견하던 함인정 창경궁 함인정은 명정전을 지나 뒤쪽 빈양문으로 나오면 공터같은 공간이 있고 숭문당은 명정전 뒷쪽과 문정전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는 함인정이 보이고 뒤쪽으로 환경전과 경춘전을 볼수있습니다. 하단 설명과는 조금 다르게 동궐도에 보면 원래 함인정 양옆으로는 문과 전각 그리고 담이 있었기에 뒤에있는 내전들은 볼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숭문당과 함인정 설명 숭문당과 함인정 숭문당과 함인정은 명정전의 후전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숭문당은 임금이 신하들과 경연을 열어 정사와 학문을 토론하던 곳으로 1830년에 다시 세웠다. 앞쪽에 설치한 누각형 툇마루로 출입하였고, 영조 임금의 친필 현판이 현재까지 남아있다. 함인정은 문무 과거에 급제한 신하들을 접견하던 곳으로 1833년에 다시 세웠다.'세상이 임금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