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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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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궁궐답사 - 왕과 신하가 경연하던 숭문당과 과거급제 신하들을 접견하던 함인정 창경궁 함인정은 명정전을 지나 뒤쪽 빈양문으로 나오면 공터같은 공간이 있고 숭문당은 명정전 뒷쪽과 문정전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는 함인정이 보이고 뒤쪽으로 환경전과 경춘전을 볼수있습니다. 하단 설명과는 조금 다르게 동궐도에 보면 원래 함인정 양옆으로는 문과 전각 그리고 담이 있었기에 뒤에있는 내전들은 볼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숭문당과 함인정 설명 숭문당과 함인정 숭문당과 함인정은 명정전의 후전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숭문당은 임금이 신하들과 경연을 열어 정사와 학문을 토론하던 곳으로 1830년에 다시 세웠다. 앞쪽에 설치한 누각형 툇마루로 출입하였고, 영조 임금의 친필 현판이 현재까지 남아있다. 함인정은 문무 과거에 급제한 신하들을 접견하던 곳으로 1833년에 다시 세웠다.'세상이 임금의 ..
[창경궁] 궁궐답사 - 명정문 정전인 명정전과 사도세자의 비극이 발생한 편전 문정전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과 옥천교를 건너면 정전인 명정전으로 가기위한 명정문이 있습니다. 방향은 아니지만 법궁인 경복궁처럼 홍화문 명정문 명정전이 일직선상으로 있습니다. 조선 고적도보의 명정문 - 현판이 삐딱하게 걸린 상태로 당시의 상황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듯... 2013년 더위에 지친 아들 이날은 광복절이었는데 막바지 더위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쏟아지던 날씨였습니다. 2015년 크리스마스에 갔던 창경궁 명정전에서 바라본 명정문 명정문은 창경궁의 동쪽에 있는 정출입문입니다. 명정문에서 즉위식은 딱 한번으로 중종의 뒤를 이은 인종입니다. 잘알다시피 권력욕이 매우 강했던 문정왕후의 위세가 대단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인종은 이런 가운데 즉위한지 얼마되지않아 죽음을 맞이합니다. 대단한 효자로 알려진 인종이 부왕의 ..
분단의 아픔이 드러나있는곳 - 파주 임진각과 장단역 증기기관차 오랫동안 개인적인 이유로 블로그를 방치했네요.. 이제서야 조금씩 여유가 생겨 다시재개해볼 생각입니다. 최근 북한의 김정은과 미국의 트럼프가 막말을 서로 시전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을 만들어내고있습니다. 오히려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수있는 우리는 너무나 단단한 내성이 생겼는지 그리 심각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주변국들의 너무나 많은 협박속에서 살아서 그런지 왠만한걸로 눈하나 꿈쩍하지 않게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뾰족한수가 있는것도 아니고.. 내팽개칠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옴싹달싹할수 없는 가운데 생긴 모순적 여유라할수 있습니다. 조선말부터 현재까지 직접적으로 외세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한반도입니다. 분단의 상징처럼 존재하는곳이 JSA 공동경비구역이고 철책과 더불어 명절때면 실향민들이 차례를 지내는 장소로 나온..
이순신 장군 장계로 살펴보는 임진왜란 그날 - 삼가 적을 무찌른 일로 아뢰나이다 현충사에서 임진장초와 충민공계초 이충무공전서 장계를 모아서 전시합니다. 거의 왕릉급으로 조성된 현충사 그곳에 들러 이순신장군의 기상을 느끼고 오는것도 좋을듯.. 가을철에는 현충사 경내도 나들이 하기 좋은 장소입니다.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소장 원성규)는 제97회 전국체전이 아산시에서 개최되는 시점에 맞추어 체전 개막일인 7일부터 12월 11일까지 ‘삼가 적을 무찌른 일로 아뢰나이다–한눈에 보는 이순신 장군의 전투 보고서’ 특별 전시를 현충사 내 충무공 이순신기념관 제2 상설전시실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을 치르면서 조정에 보고한 장계를 엮은 국보 제76호 ‘임진장초(壬辰狀草)’와 최근에 소재가 확인된 ‘충민공계초(장계별책)’, 1795년(정조 19) 간행된 활자인쇄본인 ‘이충무공..
덕수궁(경운궁) 야경과 석조전 미디어파사드 5월25일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과 홍유릉 답사를 마치고 저녁식사후에 다시 덕수궁으로 갔습니다. 들어가면서 중화전과 석어당 즉조당에 불을 밝혀두었는데 상당히 운치있습니다. 마지막주에는 덕수궁을 비롯해 경복궁에서도 미디어파사드를 하는데 이날 덕수궁 석조전에서 공연이 있었습니다. 궁궐에 미디어 파사드는 어떤 형태일까 궁금했었는데 생각했던것보다 화려하고 감성적인 공연이었습니다. 집에가자고 보채던 아들도 넋놓고 바라보더니 멋있다고 좋아하더군요. 다음에는 경복궁에서 할때 찾아가봐야겠습니다. 블로그의 관련글2016/05/27 - [역사유적 방문/고궁] - 덕수궁(경운궁) 석조전과 대한제국 역사관 1 - 2016년 5월2016/05/27 - [역사유적 방문/고궁] - 덕수궁(경운궁) 석조전과 대한제국 역사관 2 - 2..
덕수궁(경운궁)에 처음 가던날 - 2013년 8월 덕수궁 돌담길은 유행가 가사에 자주나오는 곳으로 특히 가을철이 되면 도심지에서 운치를 즐길수 있는곳이고 헤어지는 연인들로 유명하기도합니다. 아들과 덕수궁은 이날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궁궐을 살펴 보기위해 방문한건 처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8년 이곳 현대미술관에서 라틴아메리카 거장전이 전시되었을때 그림보러 들어왔었고 당시 다른곳은 가보지않고 석조전안에 잠시 들어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주로 촬영하던 캠코더는 고장이난 관계로 확인이 안되고 있습니다. 1년정도 구닥다리 디지털 8미리 캠코더를 들고 다니던 시절이고 디지타이징을 해놓지않아 현재 다시보기가 어렵습니다. 언제 날잡아서 의뢰해야할듯합니다.. 그런데 분량이 너무 많아서 수리는 커녕 단종되어서 중고 구하기도 힘든 기종이라 고민중입니다. 덕수궁의..
경희궁에 처음 가던날 - 2013년 8월 경희궁은 아직 복원이 될려면 먼곳입니다. 일제시대 공중분해되다시피했고 학교까지 들어섰던데다 현재 서울역사박물관이 중간에 들어서면서 현재로선 원형대로의 복구는 물건너간 상태.. 정문이 이토히로부미의 박문사 문으로 쓰이다가 다시 원래위치인 경희궁으로 흥화문이 되돌아왔지만 위치가 바뀌었고 아쉬운건 역시 금천교와 위치가 심하게 틀어진 상태.. 하지만 주변은 이미 빌딩과 사유지들이기에 되돌려지기는 어려워보이는데.. 하긴 부근의 서대문도 전차지나다니기 걸리적거린다고 오백년 넘은 서대문을 없앤 일제이고보면.. 경희궁은 광해군시절 지어지기시작했습니다. 서쪽에 있기에 서궐로 불렸고 동궐은 창덕궁을 말합니다. 세자시절 우연까지 겹쳐 꼬인 명나라로부터 인정받는것부터 시작해 아버지인 선조의 선위파동을 비롯해 마음고생 심했던 ..
창경원이 아닌 창경궁에 처음 가던날 - 2013년 8월 내게 창경궁은 창경원으로 어린시절 호랑이 보러 가던곳이었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지금의 에버랜드인 자연농원을 자주갔지만 창경원은 아마도 1976년이던가 77년이던가 여동생과 어머니였는지 따라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낙타앞에서 찍은 사진 한장 달랑 남아있고 그때의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제의 만행은 교묘하기도합니다. 조선시대의 흔적을 지우기위해 부단히 노력(?)한 것 가운데 하나가 창경궁은 원으로 격하시키고 동물원 식물원을 주욱 나열시키고 연못도파고... 창경궁(昌慶宮)은 조선 성종 시절 모셔야하는 늘어난(?) 대왕대비와 대비들이 거처하기위해 중건한 궁궐로 원래는 세종때 상왕인 태종을 위해 만들어진 수강궁(壽康宮)이란 이름을 가진곳이었습니다. 대체로 뒤로 물러난 궁중의 어른들을 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