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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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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역사스페셜 - 고구려와 수당 전쟁 오래전 KBS에서 고두심이 진행하던 역사스페셜 영상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두번이나해서 승리한 고구려의 정신을 볼수있는 수나라 문제 양제의 4차례 침공과 당나라 이세민의 침공이었습니다. 수나라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영양왕과 을지문덕은 철저하게 승리해 수나라의 멸망까지 이르게하였습니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황제로 꼽히는 당태종 이세민은 치밀하게 준비하고 침공해 초반에는 기세를 올렸지만 안시성에서 막혀 되돌아갔고 연개소문은 이를 뒤쫓아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이세민은 죽을때 고구려에 쳐들어가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기도했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고구려의 멸망이었습니다. 19세기 이전까지 최대 규모의 적군을 물리쳤지만 이로인해 국력이 많이 소진했고 내분으로 멸망한건 안타까운 대목입니다.. 오래..
[도서평]조선시대 터럭하나까지도 같게 그려야... 초상화, 그려진 선비정신 - 이성낙 눌와 조선시대에는 어진을 비롯해 많은 초상화가 그려졌습니다. 전에는 지금의 사진이나 많이 봐온 서양의 초상화와는 다른 정서를 지닌것이고 사실성이 떨어지고 현재와 상관없는 정도로 애써 구시대의 유물정도로 치부했습니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지난 시대 특히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바라보던 조선시대에 대해 폄하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한몫... 권위의 상징인 어진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대부들의 초상화들을 들여다보면 흔히 요즘말로하는 꼰대들을 보는 기분이 들때도 있고 표정없이 근엄하게 무게잡은 모습에 어릴때는 까닭모를 거부감도 있었던데다 사실 그다지 관심이 가지도 않았습니다. 조선시대는 잘아는 것처럼 성리학이 바탕에 깔린 유교사회였습니다. 지금이야 유교의 이미지가 고루한 느낌이 들지만 당대에 성리학은 새로운 이념..
추사 김정희 문인이자 최고의 학자였던 예술가 - 생애 흔하게 추사체의 창시자로 생각하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일반적으로 깊이 알아보지 않았다면 추사 김정희는 한석봉처럼 글씨 잘쓰고 단원 김홍도처럼 그림 잘그리는 예술가로서 인지하는 경우가 꽤많지만 실제로 그는 금석학의 대가로서 지금기준으로 보면 (당시 성리학적 전통이 많이 사라진 상태의 청나라까지 이름이 알려졌는데 아직 성리학적 기운이 많이 남아있던 조선에서온 학인들의 식견을 알아보고 대우해주었고 역으로 당시 청나라의 높은 문명 수준을 답답했던 조선에 접목시키려던 박지원 홍대용 박제가등 실용적이고 개혁적 성향의 북학파 학자들을 볼수있습니다)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인문학자로 이야기할수 있습니다. 추사의 애제자 소치 허련이 그린 김정희 그림에 관해서 추사는 심의(心意)를 중시하는 문인화의 특징인 문..
삼국지 조조의 참모 양수와 문정인 특보 - 계륵 문정인 외교특보의 주한미군 철수론이 쟁점이 되었습니다. 김대중 정부시절부터 외교통이었던 문정인 특보는 한반도가 평화협정이 맺어진 상태가 되면 주한 미군은 철수해야 한다는 논지를 펼쳤습니다. 원론적으로 말할수 있는 부분이긴하지만 그의 현재 위치나 시기등을 고려하면 부적절해 보입니다. 그리고 현재 중국의 자국주의가 너무 심한부분이나 주한 미군 철수로인한 일본과 미국간의 관계는 더욱 공고해지고 한반도를 압박할수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렇게되면 단순한 철수문제가 아닌 다시 격량속으로 자처해서 들어가게 될수도 있습니다. 북한에서도 북미수교만 이루어지면 미군철수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을 김일성때부터 시작해 김정일도 가지고 있었고 유훈으로 남기기까지 했습니다. 결국 북한은 중국과 미국사이에서 많은걸 저울질하고 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역사적인 판문점 남북정상회담과 판문점선언 전문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상징적인 장소가운데 하나인 판문점은 비극적인 한국전쟁의 휴전협정이 체결된 곳이고 남북분단이 집약된 장소처럼 인식되었습니다. 판문점이란 명칭은 임진왜란당시 선조가 백성들의 눈총을 받으면서 가던 몽진길에 임진강을 건너기위해 대문 널빤지로 만든 다리에서 유래했습니다. 지난 4월 27일에는 아주 역사적인 만남이 판문점에서 있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전격적인 남북회담이 진행되었고 전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TV로 보면서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특히 도보다리에서의 주변을 모두 물리치고 허심탄회하게 둘만의 대화를 나누는 화면은 두고두고 나올 세기의 명장면이 될것입니다. 판문점 도보다리위에서 티타임 남북 정상회담 판문점 선언문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에서는 ..
이천년전 수도 서울의 시발점 한성 백제의 위례성으로 추측되는 풍납토성 백제 초기의 수도였던 한성의 위례성은 하남에있는 이성산성이나 바로옆 몽촌토성으로 추측했습니다. 하지만 지하에 많이 묻혀있고 발굴은 매우 어려워진 풍납토성에서 간간히 나오는 유물들이 왕궁의 격식에 맞추어진것이라는 여러가지 물증들이 나오면서 위례성은 풍납토성이었을 것으로 의견이 많이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개발논리와 현재의 삶 그리고 역사적 유물이 지니는 영속적 가치를 고려한다면 장기적으로는 보전하는게 마땅하지만 초기에 대응이 적절하지 못해 현재는 매우 어렵게 이해들이 얽혀있는 부분입니다. 그래도 될수있으면 보전하는게 여러가지 면에서 좋은점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교육적인 가치는 물론이고 우리에게 많이 부족한 관광 인프라까지 고려한다면 천년넘은 시간의 역사적 유적이 가득한 서울은 새롭게 관광명소가 될수도 있는 ..
신석기 유물이 가득한 암사동 선사유적 전시관 관람 앞서 전시관 주변의 움집 모형과 원시 마을 모형등을 봤습니다. 석기시대는 연대를 가늠하는게 어렵고 선사시대이기에 문자로 남겨진것들도 없습니다. 결국 유물을 가지고 판단을 해야되는 시기이기에 출토되는 유물을 연구하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볼수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것처럼 암사동 선사시대 유물이 처음 세상에 나온건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당시였습니다. 이후 계속 묻혀져있다 1967년 전국대학연합 발굴조사단에 의해 발굴 조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방문은 2014년 4월이었고 암사동을 비롯해 이날은 백제의 근거지였던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을 들렀고 다음에는 송파 백제 고분군과 방이동 고분군을 답사했습니다. 시간이 남아 몽촌토성내의 한성백제 박물관을 재방문했고 올림픽 공원내에 있는 올림픽 기념관도 같이 방문했습니다. 코스..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토기가 대량 출토된 서울 암사동 선사 유적지 한강은 역사적으로 우리민족에게는 많은 역사의 물결을 안겨준 곳입니다. 우리에게 한강의 역사는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암사동에 있는 한강의 유적은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당시에 대량의 신석기 유물들이 발견되면서입니다. 시대가 일제시대 였기에 일본은 말로는 내선일체니 내세우긴했지만 오래된 역사유물이 새로나오는게 그리 탐탁치는 않을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현재로선 이유를 정확히 알수없지만 수많은 유물이 나왔지만 거기에서 그치고 그대로 넘어가게됩니다. 한강이 우리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역시 먹고살기 좋은 입지때문이라고 할수있습니다.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아간 커다란 이유라 볼수있습니다. 암사동 선사유적지의 중요성은 집단 거주의 흔적이 있기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곳곳에서 석기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