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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유적 방문/조선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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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조선왕릉 동구릉 경릉 헌종 효현왕후 효정왕후 삼연릉 - 세계문화유산 효명세자와 신정왕후의 아들인 헌종은 불과 여덟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됩니다. 당연히 수렴청정이 들어가게되지만 어머니인 신정왕후가 아닌 할머니이자 안동김씨였던 순원왕후가 하게됩니다. 이른바 세도정치기의 정치.. 조선왕릉중 유일하게 삼연릉 형식의 경릉은 상석인 오른쪽부터 헌종 효현왕후 효정왕후의 순으로 되어있습니다. 헌종은 아버지인 효명세자를 닮아 매우 영특했다고합니다. 글도 일찍 깨우쳤고 실록에는 외모를 묘사할 정도의 미남이기도 했습니다. 거기에다 로맨틱 가이로 두번째 왕비 선정시에 보았지만 이루어지지 못한 여인을 후궁으로 들였던 경빈 김씨와의 로맨스는 유명해 그녀를 위해 현재도 남아있는 창덕궁의 낙선재를 만들기도했습니다. 헌종은 예술을 사랑하고 많은 작품을 소지했는데 추사의 제자인 소치 허련을 총애했고..
[연재]동구릉 원릉 능침 영조 정순왕후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는 경주 김씨로 15세의 나이로 당시 66세의 할아버지였던 영조와 국혼을 하게됩니다. 왕비 자리는 상징적인 의미도 크지만 요즘 같아선.. 할아버지와 손녀뻘... 더구나 정순왕후는 정조 독살설의 주인공으로 나쁘게 묘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10여년전 심환지와 정조의 밀서가 발견되어 독살설은 지금으로선 사실무근인게 밝혀졌지만 그전까지는 정조사후 조선의 국운이 기울기 시작하는 시기의 권력자로 보여지기도 했습니다. 장용영 해체나 천주교 박해등등.. 하지만 실록을 통해본 정순왕후는 나름 정치적 식견이 높고 중립적인 인물로 평가됩니다. 헬조선으로 불리는 조선말의 세도정치는 왕권이 강화되었을때 극심한 당쟁이 사라졌다 왕권이 약해졌을때 권력의 쏠림 현상이 몰고온 것으로 보기도합니다. 정조가 사후에 ..
[연재]동구릉 원릉 영조 정순왕후 - 조선왕릉 폐릉지에 모신 정조의 복수? 동구릉의 원릉은 영조와 정순왕후가 모셔진 공간입니다. 영조는 재위기간이 가장 길었던 군주이지만 생모인 숙빈 최씨가 천출이었기에 괄시와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인물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이런 역경을 이기고 노론의 힘을 얻어 왕위에 올라섰습니다. 영조는 조선왕중에서 가장 재위기간이 길었습니다. 주변에서 걱정할만큼 소식과 채소위주의 식단이었는데 오히려 당시로서는 드물게 장수하는 비결이 되었습니다. 고기없으면 식사를 못하던 세종은 태종이 상중에도 고기먹는걸 허락했을 정도이니 영조와 비교하면 당뇨병등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던것과 대비됩니다. 동구릉 영조 정순왕후 원릉 - 2019년 6월 영조치세의 공적은 탕평책이나 백성과 친밀한 군주였다는 점이지만 사도세자의 비극이 일어났고 따지고보면 영조의 콤플렉스가 지나친 관심을 ..
[연재] 동구릉 인조 계비 예송논쟁의 당사자 장렬왕후 휘릉 - 익랑 정자각 조선왕릉 동구릉 휘릉(徽陵)은 태조의 건원릉 좌측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곳의 주인공은 장렬왕후로 인조의 두번째 왕비입니다. 첫번째 왕비는 인열왕후로 소현세자의 친모입니다만 43세에 출산중 사망합니다. 중년의 인조가 총애하고 사극에서는 희대의 악녀로 많이 묘사되는 소용 조씨가 버티고 있었는데 출신이 미천한지라 왕비로 올라서지는 못하고 15세로 어린 장렬왕후가 계비로 앉습니다. 정자각 양옆에 익랑이 달려있는 휘릉 - 2019년 6월 병자호란 직후이고 나이차가 많아 딸을 내줄려는 양반들이 없어 어렵게 계비로 들였지만 당시 44세였던 인조는 장렬왕후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냥 형식상의 부부였습니다. 인조 생전에는 소용 조씨의 눈치를 보고살았고 인조사후에는 안정되는듯했지만 어린 나이에 궐에들어와 대비가 되었기에 효종 ..
[연재]조선왕릉 동구릉 목릉 인목왕후 능침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인목왕후는 선조의 계비로 19살의 나이에 당시 51세이던 선조와 국혼을 올립니다. 지금 시대 같았으면 말도 안되는 상황이겠지만... 당대는 당대의 시선으로... 인목왕후는 영창대군의 생모로 당시 임진왜란 당시 많은 고생을 했던 세자 광해군과 대립을 하게됩니다. 하지만 영창대군이 너무 어렸기에 선조는 광해군이 왕위를 잇도록 유언을 남겼습니다. 이후 영창대군은 강화도에서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인목왕후는 경운궁 현재 덕수궁 석어당에 유폐가됩니다. 정명공주로 이연희가 연기했던 몇년전 사극 화정의 배경이기도합니다. 짧지않은 십여년의 생활 하지만 이후 극적인 반전으로 인조반정이 일어나며 광해군은 쫓겨나고 인조는 정통성을 가지기위해 반정직후에 이곳으로 달려가 인목대비의 인가를 받는 형식을 취합니다. 인목대비로선 ..
[연재]조선왕릉 동구릉 목릉 선조 능침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선조 목릉 전경 목릉 관련글보기 - https://noleter.com/258 [연재] 조선왕릉 동구릉 목릉 선조 - 지금도 비난을 많이 받고있는 임금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사극과 역사에 관심많은 분들이 암군으로 꼽는 조선시대 임금은 선조와 인조가 있습니다. 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고생도 많이 했지만 전체를 끌고가는 군주로서의 판단이나 태도�� noleter.com 목릉 능침 - 2014년 8월 방문당시.. 지금은 비공개지역이지만 당시만해도 공개를해 아무나 올라갈수 있었습니다. 이때는 왕릉 답사 초기 시점이라 촬영에 포인트를 잡지못했지만 답사의 경험은 생생하게 남아있기도합니다. 새로운 세계를 접했을때의 신비감같은... 장명등과 혼유석 그리고 봉분 세조는 병풍석을 두르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지..
[연재]조선왕릉 동구릉 목릉 선조 - 지금도 비난을 많이 받고있는 임금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사극과 역사에 관심많은 분들이 암군으로 꼽는 조선시대 임금은 선조와 인조가 있습니다. 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고생도 많이 했지만 전체를 끌고가는 군주로서의 판단이나 태도가 백성들의 호응을 얻지못하고 상상할수 없는 온갖 고초를 더욱 증폭시켜 겪게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문정왕후에 휘둘리던 명종의 뒤를 이은 선조는 방계로서 원래는 왕위 계승과는 크게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성군시절 선조는 나름대로 명민함을 인정받아 후사가 없는 명종에 이어 중종의 손자가운데 선택되었고 서예도 능통해 지금도 많이 찾아볼수 있습니다. 사림의 당쟁이 심화되는 시기이기는 했지만 아마 임진왜란이 아니었다면 성군까지는 아니더라도 평범한(?) 왕생활을 이어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조의 어필 병풍 아래는 선조의 초상화..
[연재] 조선왕릉 태조 이성계 동구릉 건원릉 억새 절정기 - 2 한포스트에 넣기에 분량이 많은것 같아 두개로 나누었습니다. 처음부터 보실분은 아래 링크로.. https://noleter.com/255 [연재] 조선왕릉 태조 이성계 동구릉 건원릉 억새 절정기 - 1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결국 자식들간의 골육상쟁을 눈으로 보았고 가장 총애하는 신하 조선의 설계자였던 정도전마저 잃게됩니다. 후계구도를 제대로 설정하지못한것으로 애틋하던 신� noleter.com 건원릉 동쪽 문석인 동쪽 문석인과 무석인 동쪽 무석인 시점의 정자각 장명등과 능침 장명등에서 바라본 문석인 장명등에서 바라본 정자각. 장명등을 통해 정면을 바라보면 능의 주산을 바라볼수 있습니다. 건원릉 병풍석 불교적 상징들을 볼수있는 초기 조선왕릉의 모습. 병풍석에 새겨진건 십이지신입니다. 불교적인 것은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