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적 방문/유적지 (8) 썸네일형 리스트형 [서울 서촌] 경복궁옆 통의동 창의궁 백송터 - 월성위궁 추사 김정희 집터 최근에 추사관련 글을 연달아 쓰고있습니다. 과천에 추사 박물관이 있지만 서울안에서도 만날수있는 추사 유적지는 경복궁옆 일명 서촌으로 불리는 동네에 김정희 집터가 있습니다. 추사는 아들이 없는 백부 김노영의 집에 대를잇기위해 양자로 들어가는데 추사의 집안은 증조부 김한신이 영조의 딸 화순옹주와 결혼하면서 월성위에 봉해졌습니다. 이주변은 영조가 연잉군시절에 살던곳으로 창의궁이있던 자리입니다. 이후에는 생모 숙빈최씨(사극 동이의 주인공)가 살고있었고 즉위한 뒤에도 가끔씩 들러 잠을자고 가기도 했다는데 화순옹주가 태어난 곳인 창의궁에 집을 하사 월성위궁이 있었습니다. 창의궁안은 사당등이 있었기에 이곳을 전부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김정희는 12세때 이곳에 들어와 관직생활을 하던 당시까지 이곳에 주로.. 거란의 침공을 막고 나라를 구한 귀주대첩의 강감찬과 유적지 낙성대 우리역사에 나라구한 영웅이 몇몇 있습니다. 대표적인분이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구한 이순신장군이고 조금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구려의 수나라의 침공에 살수대첩을 이끈 을지문덕과 안시성에서 당태종을 막은 양만춘, 여세를 몰아 당태종을 지금의 북경부근까지 추격해 혼쭐을 내던 연개소문 그리고 고려시대에는 거란이세운 요나라로 거란족 소손녕의 첫번째 침공에 뛰어난 외교술로 전쟁을 치르지않고 영토까지 얻은 서희와 요나라 성종의 명령으로 소배압의 세번째 침공을 막은 귀주대첩의 영웅 강감찬이 있습니다. 낙성대는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곳입니다. 낙성대란 이름의 유래는 중국사신들이 왔을때 별이 떨어진곳을 찾아갔더니 아이가 태어난곳이기에 붙여진 것입니다. 예전에 우스개소리로 서울대 떨어진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이라 하기도했는데 사실 .. 조선왕조 역대왕들을 모신 종묘에 처음가다 - 2013년 8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경희궁과 서울 역사박물관을 돌아 종로에있는 종묘로 갔습니다. 경희궁터나 종묘앞에는 지나다니긴 많이 했었지만 무엇이 있었는지 관심도 없던곳이었습니다. 종묘역시 임진왜란 당시 불에타 선조때 시작해서 광해군때 복구가 되었습니다. 종묘는 역대왕과 왕비들의 신주를 모신곳입니다. 유교국가인 조선에서는 가장 중요한 근간가운데 하나가 조상을 모시는것입니다. 군주가 스스로 모범을 보이는것이 매우 중요한 덕목이었습니다. 더구나 왕에대한 충성이라는 부분까지 겹치면서 중요한 의례가운데 하나가되었습니다. 종묘는 현재 건축물들과 더불어 육백년 동안 내려온 제례의식이 인정되어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종묘제례 및 제례악은 2001년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되었고 200.. 설악산 비경 토왕성 폭포 영상 설악산에 이런곳이 있는줄 몰랐습니다외국영화에서 봤음직한 풍경입니다이곳은 명승96호로 지정된 설악산 토왕성폭포입니다.45년만에 개방한다는데 설악산은 고등학교때 겉핥기식 수학여행 이후 이때 여기 부근이라는 비룡폭포는 갔었던 걸로 기억..아! 90년대 중반에 회사 야유회로 갔다가 흔들바위까지 올라갔었고 대부분은 산중턱 술집에서... 가족들과 시간나면 한번가봐야겠습니다 토왕성폭포는 외설악에 위치하고 있으며, 노적봉 남쪽 토왕골에 있다. 토왕성은 『여지도서』『양양도호부』고적조에 “토왕성(土王城) 부(府) 북쪽 50리 설악산 동쪽에 있으며, 성을 돌로 쌓았는데,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세상에 전해오기를 옛날에 토성왕이 성을 쌓았다고 하며, 폭포가 있는데, 석벽사이로 천 길이나 날아 떨어진다.”고 기록 되어있.. 용산 효창공원 - 임시정부 요인의묘 이동녕 조성환 차리석 효창공원에는 김구 선생묘와 기념관 삼의사묘와 안중근의사 가묘 그리고 임시정부 요인이던 이동녕 조성환 차리석 선생의 묘가 있습니다. 임시정부 요인이던 세분은 이동녕 선생은 국무령과 주석을 지낸분이고 조성환 선생은 가쓰다 총리를 암살하려다 실패 옥살이후 임정에서 광복군 조직을 만드는데 많은 공헌을 하다 광복후 귀국 정치인 생활 차리석 선생은 임정에서 언론쪽과 비서실장 국무위원등을 역임 광복직후 중국에서 안타깝게 귀국하지 못하고 사망 이후 이곳에 안장 효창공원내 임정요인의 묘 - 1948년 임시정부 요인들 앞줄 가운데가 이동녕 뒷줄 오른쪽 끝이 조성환 왼쪽끝이 차리석 그옆이 김구 광복군 앞줄 가운데 김구 오른쪽으로 이시영 그리고 오른쪽 끝이 차리석 맨뒷줄 왼쪽끝이 조성환 옆으로 조소앙 지청천 이범석 임정요인묘.. 용산 효창공원 - 삼의사(이봉창 윤봉길 백정기)묘와 안중근 가묘 그리고 이봉창 의사 동상 용산 효창공원에 안장된 삼의사는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의사로 세분중에 백정기 의사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기에 이름이 생소했고 이봉창의사와 윤봉길 의사는 어릴때부터 위인전으로 익숙하게 만나던 인물 여기에는 안중근의사의 가묘도 있는데 지난 안중근평전 포스팅을 하면서 언급했지만 해방이되면 뤼순감옥에서 이장해 달라는 유언이 있었지만 현재 시신도 찾지 못한 상태 유해찾기는 남한은 물론이고 안의사 고향인 북한에서도 여러차례 시도되었지만 아직 확실한것이 없는 상태로 4-50년대에 뤼순감옥 뒷편에서 참배를 했었다는 증언만 남아있는 상태.. 현재 남은곳은 동산파쪽이라는데 중국쪽 문화재 보호구역이라 쉽게 허가가 나오지 않는 상태라고 알려진 가운데 중국으로서는 남북한 사이에서 미묘한 입장일 수 있기에 공동 발굴이 적절한 .. 용산 효창공원 효창원 - 김구 선생묘와 백범 김구 기념관 아무리 생각해도 안타까운 김구 선생의 암살에 의한 서거외세의 입김이 조선말부터 시작해 현재까지도 영향을 끼치는 우리나라더욱이 분단된 조국이기에 더더욱 안타까운일더구나 효창공원은 아직까지 국립묘지가 아니기에 국가에서 관리하는게 아니고 구청에서 관리를 하게되는데 도심한복판이고 집값하락등을 이유와 국립묘지로 지정되면 현재처럼 거주 주민의 공원이 아닌 사용시간이 한정되기에 구의원과 일부 주민들의 반발까지 겹쳐졌는데 이부분은 묘주변만 시간을 엄수하고 나머지 공간은 공원으로 사용하면 될듯하고 나라를 위해 평생 몸바친 분들의 국립묘지가 어느덧 혐오시설처럼 반대를 받으면서 취급받는건 너무 서글픈 현실 효창공원내 김구 선생묘 2015년 5월 김구선생 본명은 김창수로 1876년 황해도 해주 출생으로 .. [서울 정동 기행]구러시아공사관과 고종의 아관파천 조선왕조 오백년 말기 그동안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을 제외한다면 사회가 급속도로 변한 것은 조선말기 대한제국 시절로 초기라 볼수있는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은 외부의 침략에 이백여년 가까지 전쟁이 없었기에 설마했던 무사안일했던 측면과 실질적인 것을 파악하지 못하고 명분에 지나치게 사로잡힌 측면이 있었다면, 구한말은 산업혁명이후 급속도로 팽창한 서구의 근대화를 쫓아가는 시기를 놓쳤기에 우리의지와 상관없이 주변 열강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던 시절 거기에다 안동김씨 풍향조씨같이 왕위에 군림한다시피할정도의 외척의 발호등 정조사후 부패의 정도가 조금씩 조금씩 심해져 국가의 질적인 면이 서서히 수면 아래로 내려가는 중이었기에 급기야 외세의 입김에 바람처럼 몰려다니던 시절 우리가 알고있는 아관파천은 1896년 2월 11일 고..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