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유적 방문/고궁 (28) 썸네일형 리스트형 [창경궁] 궁궐답사 - 왕과 신하가 경연하던 숭문당과 과거급제 신하들을 접견하던 함인정 창경궁 함인정은 명정전을 지나 뒤쪽 빈양문으로 나오면 공터같은 공간이 있고 숭문당은 명정전 뒷쪽과 문정전과 맞닿아 있습니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는 함인정이 보이고 뒤쪽으로 환경전과 경춘전을 볼수있습니다. 하단 설명과는 조금 다르게 동궐도에 보면 원래 함인정 양옆으로는 문과 전각 그리고 담이 있었기에 뒤에있는 내전들은 볼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숭문당과 함인정 설명 숭문당과 함인정 숭문당과 함인정은 명정전의 후전에 해당하는 건물이다. 숭문당은 임금이 신하들과 경연을 열어 정사와 학문을 토론하던 곳으로 1830년에 다시 세웠다. 앞쪽에 설치한 누각형 툇마루로 출입하였고, 영조 임금의 친필 현판이 현재까지 남아있다. 함인정은 문무 과거에 급제한 신하들을 접견하던 곳으로 1833년에 다시 세웠다.'세상이 임금의 .. [창경궁] 궁궐답사 - 명정문 정전인 명정전과 사도세자의 비극이 발생한 편전 문정전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과 옥천교를 건너면 정전인 명정전으로 가기위한 명정문이 있습니다. 방향은 아니지만 법궁인 경복궁처럼 홍화문 명정문 명정전이 일직선상으로 있습니다. 조선 고적도보의 명정문 - 현판이 삐딱하게 걸린 상태로 당시의 상황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듯... 2013년 더위에 지친 아들 이날은 광복절이었는데 막바지 더위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쏟아지던 날씨였습니다. 2015년 크리스마스에 갔던 창경궁 명정전에서 바라본 명정문 명정문은 창경궁의 동쪽에 있는 정출입문입니다. 명정문에서 즉위식은 딱 한번으로 중종의 뒤를 이은 인종입니다. 잘알다시피 권력욕이 매우 강했던 문정왕후의 위세가 대단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인종은 이런 가운데 즉위한지 얼마되지않아 죽음을 맞이합니다. 대단한 효자로 알려진 인종이 부왕의 .. [창경궁] 사극의 많은 배경이 되었던 궁궐 - 홍화문 옥천교 -동궐도와 조선고적도보 비교 창경궁은 경복궁이나 창덕궁에 비하면 건축물이 군왕으로서의 격식이나 위엄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편이지만 태종이 상왕으로 머물며 조성된 수강궁에서 성종때 창경궁으로 크게 다시 만든 이유가 많아진 대비들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된 곳입니다. 그렇기에 국가적으로 격식을 크게 차려야하는 의례는 많지 않았지만 궁중 여인들의 공간으로 많은 왕들이 태어난 공간이고 왕실 내부를 위한 의례들은 많이 치뤄진 공간입니다. 창경궁은 항상 사극의 소재로 떠도는 장희빈과 인현왕후 이야기의 주무대이고 또하나의 비극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공간이기도합니다. 창경궁의 최대 위기는 일제강점기에 이왕가로 격하된 조선왕족들을 위한 공간으로 식물원이 만들어지자 순종은 백성들에게 공개를 하기로 결정합니다. 이후로 이곳은 해방이후에도 그대로 .. [창덕궁] 후원관람 연경당 - 효명세자의 개혁의지가 서려있는곳 창덕궁 후원에는 효명세자와 관련된 곳이 많지만 가장 대표적인것은 이곳 연경당이라 할 수 있습니다. 효명세자는 순조의 권력을 이어받을 세자로 실제로 임금으로 등극하지는 않았지만 실권자로서 짧고 굵게 대리청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효명세자는 요새말로하면 그야말로 엄친아라 할 수 있습니다. 수려한 외모와 고귀한 신분은 왕세자이고 어린나이였지만 학식을 겸비한데다 감수성이 뛰어나 문학에도 출중했으며 여기에 덧붙여 음악과 춤에 정통해 각종 궁중의례를 직접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것때문에 의외로 국악이나 궁중복식을 연구하는 분들에게 효명세자는 굉장히 유명하다고합니다. 이시절은 바로 조선 후기로 넘어서면서 안동김씨 세력의 입김이 매우 강해지고 세도정치라고 부를만큼 왕위에 군림하는것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역사에 관심있는 사.. [창덕궁] 후원관람 옥류천 취규정 취한정 소요정 태극정 청의정 농산정 예전에 꽤 오랫동안 서울에 살았을때는 앞으로 그렇게 지나다니면서도 희안하게 궁궐에 들어가본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경복궁은 그앞으로 버스타러 매일 가로질러 다녔고.. 경희궁앞 지금 서울역사박물관이 있는곳은 공원이었을때 수시로 앉아서 멍때리던 곳이며.. 덕수궁 돌담길은 걸어도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으며 사진 한장으로만 덩그라니 남은 창경궁은 창경원일때 동물구경하러 한번 가본곳...아마도 서울만한 궁궐을 가진 도시도 드물것입니다. 조선시대 5대궁궐은 물론이고 한성 백제의 몽촌토성 풍납토성까지 생각하면.. 아마 원형 보전이 잘되었다면 국제적인 관광도시가 될수도 있었습니다. 아이랑 몇년동안 틈틈이 답사다니면서 들여다보니 서울만큼 역사 유적이 많은곳도 없습니다. 지금도 제대로 둘러보지못한 유적지가 구석구석에 있습니.. [창덕궁] 후원관람 애련지 애련정 의두합 관람정 승재정 폄우사 존덕정 창덕궁 후원을 처음갔을때는 답사다니는 초기라 공부나 정보없이 그냥 직관적으로 보고왔기에 촬영을 놓친부분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초등학생 아이랑 같이 간다는 부분을 고려해서 처음 답사시에는 사전 정보 공부없이 다녀왔습니다. 괜히 정보에 짓눌리는 선입견과 다른 시각을 가질수 있는 부분을 원천차단하는것은 아닌가하고 염려했고 있는 그대로 날것으로 느껴본후 살을 붙여나가길 원했습니다. 아마도 답사를 많이 다니신 분들은 정확하게 인지하겠지만 유적이나 유물은 눈으로 한번 본것과 여러번 글로 접한것은 하늘과땅 차이가 날때가 대부분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말은 괜히 생긴게 아니었습니다. 물론 책으로만 접해 상상력에 의한 재미있는 이야기의 구조가 나올수는 있겠지만 직접 눈으로 각인된것은 그러지 아니한것과 나중에 서책으로 .. [창덕궁] 후원 관람시작 부용지 부용정 주합루 어수문 영화당 - 조선고적도보에 나온 사진 비교 창덕궁 후원은 일제시대이후 비원으로 격하되어 불리며 이후 한참동안 일반에게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창덕궁 낙선재에서는 조선시대 왕족들을 경계하던 이승만에게 쫓겨나기도 했지만 하야이후 다시들어와 살던 순종의 계후인 순정효황후가 있고 그리고 1980년대까지 덕혜옹주와 영친왕비 이방자여사가 살았습니다. 후원관람시에는 현재 해설사를 동반해 일정한 시간에 출발해 동시에 끝나는 형태로 관람이 가능합니다. 후원입구에서 시작해 처음 도착하는 곳은 부용지로 부용루와 어수문 주합루 뚫려있지만 원래는 담장이 둘러있었던 영화루를 볼수있습니다. 조선시대였다면 물론 중간에 문이있기는 하지만 공간이 분리된 것을 볼수 있습니다. 부용지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영화루 담장에 있던 문을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했던것을 알수있습니다. 창덕궁 후.. [창덕궁] 동궐도와 돈화문 그리고 조선시대 왕가의 정원이 있던곳 창덕궁 후원 - 1 창덕궁은 조선의 법궁이던 경복궁을 대신해 태종 이방원이 건설한 곳입니다. 태조의 조선 건국에 능력이나 기여도로 따지면 후계는 당연히 자신의 몫인줄 알았건만 신정왕후의 읍소와 정도전의 지지로 막내에게 돌아간 후계구도... 왕자의난이후 골육간의 상쟁을 통해 왕이된이후 지긋지긋한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던것으로 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정적인 정도전의 그림자까지 지워내고 싶었을듯... 창덕궁은 성종이후 대비들을위해 크게 변모하는 창경궁과 더불어 보통 동궐로 불립니다. 그럼 서궐은 어디? 일제시대 공중분해되어 지금은 자취만 남았다고 할수있는 경희궁입니다. 임진왜란이후 선조의 뒤를이은 광해군이 세운곳으로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의 왕기가 서린 바위가 있는 사가를 헐어내고 지은곳으로 실제로 들어가 살지는 못한..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