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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유적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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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회루 연못에서 출토된 청동 용 - 국립 고궁박물관 경복궁의 백미 가운데 하나는 역시 경회루를 들수 있습니다. 현존하는 목조건물 중에서도 제일 규모가 크고 외국의 사신들을 접대하기 위한 용도도 있었기에 화려함을 추구하지 않았던 조선시대였지만 나름대로 멋을 많이낸 건축물입니다. 지금의 모습은 1867년 고종때 대원군이 중건하면서 원래보다 화려함이 축소된 것이라 하는데 층도 낮아지고 이전에는 기둥마다 용의 문양이 조각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2016년 경회루 관람 영상 https://noleter.com/140 [경복궁 경회루] 조선의 법궁 경복궁의 연회장 경복궁을 관람하다보면 아무래도 눈에띄는곳은 경회루와 향원정을 들수있습니다. 경회루는 웅장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실제로도 이곳은 왕과 신하들이 큰 연회를 열거나 외국 사신들을 noleter.com 현재 국..
조선왕릉 김포 장릉 경관을 훼손한 아파트와 조선왕릉 수난사 김포장릉의 경관훼손 아파트를 보면서 생각한점. 김포장릉과 관련된 뉴스들을 보면서 아연실색하는중입니다. 지금으로선 책임소재와 잘잘못은 명확하게 가리는게 매우 중요하지만 그이전에 이런 상태까지 가게된것 자체의 문제가 아쉽습니다. 그리고 고층아파트를 시공할 정도의 건설사면 그동안 많은 사례가 있었을 것이고 분명 법무팀이 있거나 외부에서라도 전문적인 자문을 구할수 있었을텐데요... 이전에 장릉 경관 훼손을 피해가며 지어진 15층 규모의 삼성쉐르빌의 사례도 있었기에 자체적으로 좀더 세밀하게 따져보지않고 공사가 강행된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1차적으로 건설회사에서 제시한 수정안으로 층고가 높은 것을 고려해 왕릉에 어울리는 디자인으로 변경하는것을 내세웠지만 어불성설입니다. 조선왕릉은 풍수적인 부분이 매우 중요한 핵..
이국적이고 기이한 불상이 가득한 용인 와우정사 와우정사는 경기도 용인에 있는 사찰입니다. 일반 사찰과는 다른 독특한 불상들을 만날수 있는 곳으로 일반적으로 접하는 사찰과는 다른 특이점이 있는 곳입니다. 아마도 이십대시절이었다면 종교시설에서 본질보다 겉치레에 신경쓴 곳이라 생각했을텐데 나이들고 보니 그래도 볼만한 여러가지가 있는곳을 가보는 것이 즐겁고 결국 믿음은 내자신에게 있는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상보기 유튜브 채널가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kUNFJ3sdnOj4TQ93Algckg 편안한 산책- daily walking 걷기의 즐거움 www.youtube.com 와우정사는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실향민이던 해월 삼장법사 김해근이 1970년에 세운 사찰입니다. 와우정사에 들어가면 거대한 불두를 만나게됩니다. 현..
[연재]조선왕릉 동구릉 혜릉 경종비 단의왕후(端懿王后) - 세계문화유산 동구릉 혜릉은 경종비 단의왕후(1686-1718)가 모셔진 능입니다. 단의왕후(端懿王后)는 경종이 세자시절에 세자빈의 신분으로 죽었고 경종이 등극한 이후 왕비로 올려졌습니다. 33살의 나이로 요절한 단의왕후는 심온(세종의 장인이자 태종이 아들 치세에 혹시나 방해가 될까 제거한 그분)의 12대손으로 병약했던 경종과 시어머니 장희빈때문에 고생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풍질(뇌졸중과 비슷한 질환)을 앓고있어 심신이 미약했다고합니다. 1718년(숙종 44년) 단의왕후의 혜릉은 처음에는 세자빈 신분으로 단장되었지만 1720년 경종이 즉위하면서 혜릉으로 추숭되었습니다. 단의왕후 심씨(端懿王后 沈氏, 1686년 7월 11일(음력 5월 21일) ~ 1718년 3월 8일(음력 2월 7일)) 시호는 공효정목단의왕후(..
[연재]조선왕릉 동구릉 경릉 헌종 효현왕후 효정왕후 삼연릉 - 세계문화유산 효명세자와 신정왕후의 아들인 헌종은 불과 여덟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됩니다. 당연히 수렴청정이 들어가게되지만 어머니인 신정왕후가 아닌 할머니이자 안동김씨였던 순원왕후가 하게됩니다. 이른바 세도정치기의 정치.. 조선왕릉중 유일하게 삼연릉 형식의 경릉은 상석인 오른쪽부터 헌종 효현왕후 효정왕후의 순으로 되어있습니다. 헌종은 아버지인 효명세자를 닮아 매우 영특했다고합니다. 글도 일찍 깨우쳤고 실록에는 외모를 묘사할 정도의 미남이기도 했습니다. 거기에다 로맨틱 가이로 두번째 왕비 선정시에 보았지만 이루어지지 못한 여인을 후궁으로 들였던 경빈 김씨와의 로맨스는 유명해 그녀를 위해 현재도 남아있는 창덕궁의 낙선재를 만들기도했습니다. 헌종은 예술을 사랑하고 많은 작품을 소지했는데 추사의 제자인 소치 허련을 총애했고..
[연재]동구릉 원릉 능침 영조 정순왕후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는 경주 김씨로 15세의 나이로 당시 66세의 할아버지였던 영조와 국혼을 하게됩니다. 왕비 자리는 상징적인 의미도 크지만 요즘 같아선.. 할아버지와 손녀뻘... 더구나 정순왕후는 정조 독살설의 주인공으로 나쁘게 묘사가 되기도 했습니다. 10여년전 심환지와 정조의 밀서가 발견되어 독살설은 지금으로선 사실무근인게 밝혀졌지만 그전까지는 정조사후 조선의 국운이 기울기 시작하는 시기의 권력자로 보여지기도 했습니다. 장용영 해체나 천주교 박해등등.. 하지만 실록을 통해본 정순왕후는 나름 정치적 식견이 높고 중립적인 인물로 평가됩니다. 헬조선으로 불리는 조선말의 세도정치는 왕권이 강화되었을때 극심한 당쟁이 사라졌다 왕권이 약해졌을때 권력의 쏠림 현상이 몰고온 것으로 보기도합니다. 정조가 사후에 ..
[연재]동구릉 원릉 영조 정순왕후 - 조선왕릉 폐릉지에 모신 정조의 복수? 동구릉의 원릉은 영조와 정순왕후가 모셔진 공간입니다. 영조는 재위기간이 가장 길었던 군주이지만 생모인 숙빈 최씨가 천출이었기에 괄시와 콤플렉스에 시달리던 인물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이런 역경을 이기고 노론의 힘을 얻어 왕위에 올라섰습니다. 영조는 조선왕중에서 가장 재위기간이 길었습니다. 주변에서 걱정할만큼 소식과 채소위주의 식단이었는데 오히려 당시로서는 드물게 장수하는 비결이 되었습니다. 고기없으면 식사를 못하던 세종은 태종이 상중에도 고기먹는걸 허락했을 정도이니 영조와 비교하면 당뇨병등 각종 성인병에 시달리던것과 대비됩니다. 동구릉 영조 정순왕후 원릉 - 2019년 6월 영조치세의 공적은 탕평책이나 백성과 친밀한 군주였다는 점이지만 사도세자의 비극이 일어났고 따지고보면 영조의 콤플렉스가 지나친 관심을 ..
[연재] 동구릉 인조 계비 예송논쟁의 당사자 장렬왕후 휘릉 - 익랑 정자각 조선왕릉 동구릉 휘릉(徽陵)은 태조의 건원릉 좌측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곳의 주인공은 장렬왕후로 인조의 두번째 왕비입니다. 첫번째 왕비는 인열왕후로 소현세자의 친모입니다만 43세에 출산중 사망합니다. 중년의 인조가 총애하고 사극에서는 희대의 악녀로 많이 묘사되는 소용 조씨가 버티고 있었는데 출신이 미천한지라 왕비로 올라서지는 못하고 15세로 어린 장렬왕후가 계비로 앉습니다. 정자각 양옆에 익랑이 달려있는 휘릉 - 2019년 6월 병자호란 직후이고 나이차가 많아 딸을 내줄려는 양반들이 없어 어렵게 계비로 들였지만 당시 44세였던 인조는 장렬왕후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냥 형식상의 부부였습니다. 인조 생전에는 소용 조씨의 눈치를 보고살았고 인조사후에는 안정되는듯했지만 어린 나이에 궐에들어와 대비가 되었기에 효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