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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유적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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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동구릉 - 외연지와 제례를 준비하던 재실 2-1 구리 동구릉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조선왕릉군은 구리에 있는 동구릉입니다. 여기에는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이 자리잡은후 조선후기인 헌종의 경릉까지 깊은 역사를 지닌 공간입니다. 워낙 방대한 공간이기에 처음에 모든걸 세심하게 볼려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걸어다녀야합니다. 처음방문이고 산책삼아 가는정도면 크게 상관없지만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보는데는 무리가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동구릉 외연지터와 재실 영상 아이를 데리고 간다면 두번정도로 나누어서 보는걸 추천합니다. 아들이랑 처음갔을때 왜이리 넓냐면서 중간중간 지쳐서 보고있을때 단체로 답사온 초등학생들을 단체로 인솔한 분은 홍살문앞에서 누구라고 설명만하고 능역으로 들어가는건 생략하는걸 보기도 했습니다. 처음갔을때 언제 여기또 올수있겠냐며 수..
[연재] 조선 왕릉 답사 시작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답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답사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한두번 소풍으로 가봤음직한 조선왕릉은 화려한 건축물도 없고 세계 각지의 왕릉이 당한것처럼 도굴범의 소굴이 될만한 부장품도 나오지 않고 애초에 묻히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조선왕릉은 절제미라고 할수밖에 없는 왕릉치고는 소박한 모양새이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보존된 자연환경과 남한에 있는 40기의 왕릉이 온전한 모습(훼손이 있긴 했지만 복원이 가능한 정도)으로 지금까지 육백여년의 시간차를 두고 내려져온것 그리고 전통의 제향의식이 아직도 거행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절제미는 지금까지 온전하게 지켜져내려온 조상의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아주 꼼꼼하게 기록된 의궤는 원형..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조선왕릉 - 태조 이성계 건원릉 능침 건원릉 능침의 무석인 옆모습.. 앞서 이야기한것처럼 건원릉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능이란 점에서 커다란 상징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조선왕릉의 표본이 되는건 고려의 공민왕릉이라고 볼수있습니다. 조선초기의 능은 아직 불교적인 성격을 지닌것들이 있는데 뒤로 갈수록 불교적인 부분은 대부분 사라지게됩니다. 능침앞에 있는 배위 건원릉은 박자청이 설계했는데 제례는 정자각에서 이뤄지기에 실제로 능침은 필수로 올라가야할 성격은 아니었기에 특이한 부분이라 볼수 있습니다. 건원릉 능침 전경 능침 후면에서 바라본 모습 촬영하는 자리는 풍수적으로는 이곳의 기혈이 모여있는 곳이기도합니다. 건원릉의 봉분은 억새풀로 유명하지만 매해 한식때에 한번씩 예초하는 청완예초를 거행합니다. 방문이 4월말이라 얼마되지 않아 다른 왕릉과 ..
태조 이성계 건원릉 정자각과 소전대 비각 - 구리 동구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정자각에서 바라본 능침으로 정자각에서는 제향을 지내는 공간입니다. 몇년전까지는 제구들을 황색천으로 덮어두지 않아 제구색으로 추존황제와 아닌걸 구분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모두 황색 천으로 덮어두고 있습니다. 건원릉 정자각 바닥의 양쪽에는 사진과 같은 돌이 있습니다. 용도는 어계가 있는쪽은 배위로 절을하는 곳을 표시한것이고 맞은편은 축문을 태우는 소전대를 바라보는 망료위입니다. 건원릉 소전대로 이곳과 헌릉에 있습니다. 그외에 인종의 효릉에도 있는데 세종이후 축문을 태우는 예감만 남아있는 형태로 변형되었습니다. 인종 효릉에 소전대가 있는건 의문입니다. 정자각 뒤편의 신로인데 능침과 통하는 영혼이 다니는 길입니다. 건원릉 비각으로 조선왕릉 초기 형식인 신도비가 있습니다. 신도비는 이곳과 태종의 헌릉 그리고 세종..
신들의 정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동구릉 태조 이성계 건원릉 금천교에서 정자각까지 조선왕릉은 42기중 개성에 있는 후릉과 제릉을 제외하고 모두 보존상태가 좋아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물론 문제를 안고있는 곳도 있었지만 지금도 개선이 되고있다고 생각합니다. 능역에 이것저것 많이 들어선 서삼릉이있고 중앙정보부 건물이 있었고 연못에 잉어가 노니는데다 정체불명의 다리까지 있었던 의릉이나 국가대표 선수촌이 있던 태릉은 지금은 이전으로 많이 되돌아갔습니다. 조선왕릉중에 제일 많이 모여있는 곳은 동구릉입니다. 아홉개의 능이 모여있고 무엇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健元陵)이 있는 곳이라 최초라는 상징성까지 지닌곳입니다. 조선왕릉중 제일 먼저 만들어진 것은 개성에 있는 이성계의 처인 신의고왕후의 제릉으로 지금은 가볼수 없는곳이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사진 몇장으..
황제릉의 석물 홍유릉의 해태와 사자 그리고 영친왕 영원의 석사자 홍유릉의 해태와 사자 그리고 영원의 석사자 요즘 뒤늦게 인스타그램 재미에 빠져 안그래도 간간히 올리던 블로그에 더욱 소홀했습니다. 글쓰는데 시간이좀 걸리는 블로그보다 간편해서 좋긴합니다. 그래도 블로그만의 매력이 있는데.. 문제는 시간... 간단하게 정리해서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동시에 올려야겠습니다. 역사와문화놀이터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historictourkorea 예전에 답사했던 사진들과 영상을 정리하면서 내용까지 맞춰볼려니 역시 어렵네요... 최근에 알게된 것중에 영친왕 영원의 해태라고 생각했던 석물이 석사자라는 점이었습니다. 조선왕실원묘라는 책자에에보면 형태상 석사자같다고 이야기했는데 신라의 왕릉에 보면 석사자가 있었고 고려시대부터 석호가 등장하기 시작했..
[서평] 김정호의 동여도를 비교해 설명된 '천문과 지리 전략가 이순신' - 이봉수 시루 우리 역사에 위대한 인물들을 꼽자면 무수하겠지만 한두명으로 압축하자고 들면 제일많이 나올분은 이순신 장군을 들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때 이순신 장군이 없었다면 지금쯤 이곳은 일본의 반도땅정도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순신에 철저하게 유린당한 일본 수군은 물론이고 보급선이 끊긴 왜군의 곤란함은 임진왜란의 전황 자체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한편에선 이순신의 커다란 영향력을 두려워한 가장 욕먹는 군주인 선조의 졸렬함이 부각되어 강력한 리더쉽과 준비태세 그리고 정신무장이 깊게 각인되었습니다. 십여년전 김명민이 주연으로 나온 사극 불멸의 이순신을 시청할때의 흥분이 아직까지 뇌리에 남아있습니다. 최근에 읽은 천문과 지리전략가 이순신은 임진왜란 당시 전투가 있던곳을 실제로 20여년간 답사하면서 조선시대 지..
[서울 서촌] 경복궁옆 통의동 창의궁 백송터 - 월성위궁 추사 김정희 집터 최근에 추사관련 글을 연달아 쓰고있습니다. 과천에 추사 박물관이 있지만 서울안에서도 만날수있는 추사 유적지는 경복궁옆 일명 서촌으로 불리는 동네에 김정희 집터가 있습니다. 추사는 아들이 없는 백부 김노영의 집에 대를잇기위해 양자로 들어가는데 추사의 집안은 증조부 김한신이 영조의 딸 화순옹주와 결혼하면서 월성위에 봉해졌습니다. 이주변은 영조가 연잉군시절에 살던곳으로 창의궁이있던 자리입니다. 이후에는 생모 숙빈최씨(사극 동이의 주인공)가 살고있었고 즉위한 뒤에도 가끔씩 들러 잠을자고 가기도 했다는데 화순옹주가 태어난 곳인 창의궁에 집을 하사 월성위궁이 있었습니다. 창의궁안은 사당등이 있었기에 이곳을 전부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김정희는 12세때 이곳에 들어와 관직생활을 하던 당시까지 이곳에 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