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안산이야기/강세황 김홍도 그림

(9)
단원의 일생을 저술한 붓으로 세상을 흔들다 천년의 화가 김홍도 - 이충렬 인물의 일생을 중심으로 저술을 하는 이충렬 작가의 김홍도 저작은 매우 충실하게 재현되어 김홍도의 일생을 되새겨볼수 있는 전기입니다. 안산 성포리 바닷가에서 중인 신분으로 태어난 것으로 보이는 김홍도는 당시 안산 수암동 부근에 살던 강세황에게서 회화의 기초인 화결을 배우고 그뿐만 아니라 당시 시서화 삼절로 불리며 예림의 총수인 표암 강세황 수하에서 당대 선비와 예인들이 가진 고상한 기품과 자세를 보고 자랐습니다. 김홍도가 살던 시절의 안산 지형 - 김홍도 미술관 강세황이 성포리 성고 단원에서 바로옆 첨성리 주변에 살던 성호이익가문의 여주이씨 들과 시회를 열고 조선시대 전국에 네곳이 존재한 만권의 책이있던 만권당에 살던 처남 유경종의 청문당을 드나들며 학문과 예술에 힘쏟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표암과 ..
김홍도 미술관 전시 - 소년 김홍도 노적봉에서 세상을 담다 이전에 김홍도의 어린시절 살던곳이 안산 성포리 노적봉 인근 바닷가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바닷가가 아닌 아파트로 둘러쌓인 동네지만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서호라 불리는 바닷가였습니다. 단원미술관에서 김홍도미술관으로 이름을 변경해 조금은 어색했지만 적응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입에 붙어서인지 단원미술관으로 아직도 부르게됩니다. 김홍도미술관 3관에서는 김홍도가 어린시절 이곳에서 살았던 기록들과 당시 이곳의 풍경들을 재구성해보는 전시입니다. 2022년부터 시작된 전시로 간략하게 소개합니다. 조선시대 안산지도 성포리 노적봉 인근에 살던 김홍도와 수리산 수암봉아래 살던 강세황 바로옆 부곡동에는 진주유씨들이 살았는데 청문당 경성당 두개의 만권당이 있습니다. 부곡동과 노적봉옆 첨성리에는 성호이익 선생의 성호장이 ..
김홍도 병진년 화첩 단양팔경 산수화 사인암 - 단원 절세보첩 단양 사인암(丹陽 舍人巖)은 역시 단양에 있는 8개의 절경중에 하나입니다. 사인암의 명칭 유래는 고려시대 이곳에 우탁 선생이 정4품 사인벼슬을 하며 지내던 곳이라하여 생겼습니다. 암벽에는 우탁의 글이 남아있습니다. 사인암은 단원 김홍도가 그리기위해 1년을 심사숙고했다고 하는 곳입니다. 독특한 절경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한 고민을 오랫동안 했다고 할수 있습니다. 작위적으로 멋있게 꾸민듯한 사인암 책을 쌓아놓은듯한 모습으로 조선시대에는 많은 선비들이 방문했고 많은 글귀들을 새겨놓기도 했습니다. 사인암 옆에는 청련사가 있고 사인암에 오르면 삼성각을 만날수 있습니다. 단원이 1년간의 숙고를 하고 그린 사인암 단원의 산수화는 실경에 가깝게 그린것들이 많은데 실제와는 약간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수 있습니다. 단원의 많..
김홍도 병진년 화첩 단양팔경 도담삼봉 - 단원 절세보첩 병진년화첩인 절세보첩에 실린 단양팔경중 다른 한곳은 도담삼봉입니다. 삼봉은 널리 알려진것처럼 정도전의 호이기도합니다. 조선을 건국한 혁명가이자 태종 이방원에의해 조선시대에는 거의 지워진 인물이기도합니다. 삼봉이 어린시절 살던 곳으로 알려져있고 출생지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김홍도의 연풍현감 시절의 일화는 많이 알려져있는 것으로 기우제를 지내거나 사냥을하고 고을 주민들의 중매를 서기도하거나 늦둥이 아들을 보기도합니다. 중인 출신인 단원이 종6품인 현감까지 올라간건 정조의 특별히 재기넘치는 중인들을 아끼고 중용한것도 한몫했습니다. 중인인 박제가가 규장각 사검서에 임명된 것등을 꼽을수 있습니다. 살면서 생각지도 않았을 높은 벼슬자리에 오른 김홍도는 결국 탄핵을 받고 내려왔습니다. 철저한 신분제를 내세운 어느시대..
김홍도 화첩기행 - 병진년 화첩 단양 옥순봉 - 단원 절세보첩 단양팔경중 하나인 옥순봉은 김홍도가 원숙한 나이인 52세 병진년(1796년)에 그린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김홍도 하면 떠오르는게 대부분이 풍속화일 것입니다. 많이 알려진 무용이나 씨름 혹은 농사나 어촌의 풍경을 그린 것으로 주로 정조의 명에의해 그려진 것인데 왕의 총애를 받던 화원으로서 주로 사대부들이 그린 산수화나 정신적인 깊이를 표현한 것과는 다르게 전문적인 화원으로서 기능적인 공무의 수행이었습니다. 절세보첩은 구한말 김용진이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김용진은 말년에 김홍도가 어린시절 살았던 노적봉 바로옆인 안산 이동 구룡산과 인연이 있습니다. 안동김씨 세도가 집안으로 여러 관직을 거치기도 했고 구한말 컬렉터이자 문인화가이기도했던 김용진의 아호가 구룡산인이었고 이곳에 거주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리움미술..
단원 김홍도가 살았던곳 안산 성포동 노적봉 - 단원조각공원 조선 최고의 화원이자 풍속화 인물화 산수화에 모두 능했던 천재화가 단원 김홍도는 경기도 안산 출생으로 당시 성포 바닷가에 살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성포리는 현재 김홍도미술관이 있는 노적봉과 그 인근인 성포동과 일동 이동 일대입니다. 1919년 안산 지도 현재 지도 성태산에서 바라본 노적봉과 광덕산 비교적 최근인 백 년 전 지도를 보면 지금은 아파트와 상업시설로 가득 찬 중앙역 과 한대앞역 너머는 바닷가 갯벌이었던 지역. 1960년대 농경지로 개발하면서 지금과 같은 지형으로 바뀌었고 1970년대 후반부터 반월공단을 개발하면서 도시규모가 커지게 되었습니다. 성호 이익(1681-1763) 선생이 서호라 부르던 곳으로 노적봉 바로 옆 첨성에 거주하던 시대로 1745년생인 단원과 나이 차이는 많이 나지만 동시대..
김홍도 - 습득도 한산과 습득 선승들의 세계 스무살무렵에 읽었던 단하천연의 기행은 놀라움 그자체였습니다. 나무로된 부처상을 춥다고 땔감으로 쓰다가 주지스님이 기겁해서 나오니 사리를 찾는모습.. 나도 빨리 깨달음을 얻고 저런 경지속에서 살고싶다는 욕망이 일기도 했습니다. 당시에 라즈니쉬를 통해서 처음 접했던 선승들의 이야기는 다채롭고 신비롭기까지 했습니다. 당시 많이 접하던 선시중에 ... 깨달음을 얻기 전에도 물을 기르고 나무를해라깨달음을 얻은 후에도 물을 기르고 나무를해라 다른 복잡한 것들은 거의 대부분 잊어버렸는데 지금은 이게 가장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젊을때는 고귀한 깨달음을 얻으면 세상이 뒤바뀌고 인생도 뭔가 크게 바뀌리란 생각을 했었는데 중년의 나이를 넘어서면서 결국은 출세를 크게하건 못하건(우리나라 사회는 남에게 보여지는 출세라는게 그..
[화첩기행] 김홍도와 정선의 산수화 낙산사 - 의상대와 홍련암 2005년 바다 풍경이 멋진곳에 위치한 사찰인 낙산사에 화마가 덮치고 건물들이 모두 불탔고 보물인 동종까지 소실되었습니다. 낙산사는 잘아는것처럼 의상대사가 창건한 곳으로 의상대는 의상대사가 좌선을 하던곳입니다. 의상대와 홍련암 일대는 명승 27호로 지정되었는데 관동팔경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낙산사하면 서인의 영수였던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 나오는 장소로 관동팔경이 떠오릅니다. 윤선도와 쌍벽을 이루는 가사문학의 대가로 아름다운 문장을 뽐내던 그이지만 실상은 기축사화 당시에 천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무서운 정치가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던분입니다. 김홍도의 금강산화첩에 들어간 낙산사는 정조12년(1788년) 임금의 명을 받고 김응환과 함께 금강산도를 그리기위해 나선길로 현재의 낙산사는 김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