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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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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동구릉 인조 계비 예송논쟁의 당사자 장렬왕후 휘릉 - 익랑 정자각 조선왕릉 동구릉 휘릉(徽陵)은 태조의 건원릉 좌측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곳의 주인공은 장렬왕후로 인조의 두번째 왕비입니다. 첫번째 왕비는 인열왕후로 소현세자의 친모입니다만 43세에 출산중 사망합니다. 중년의 인조가 총애하고 사극에서는 희대의 악녀로 많이 묘사되는 소용 조씨가 버티고 있었는데 출신이 미천한지라 왕비로 올라서지는 못하고 15세로 어린 장렬왕후가 계비로 앉습니다. 정자각 양옆에 익랑이 달려있는 휘릉 - 2019년 6월 병자호란 직후이고 나이차가 많아 딸을 내줄려는 양반들이 없어 어렵게 계비로 들였지만 당시 44세였던 인조는 장렬왕후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냥 형식상의 부부였습니다. 인조 생전에는 소용 조씨의 눈치를 보고살았고 인조사후에는 안정되는듯했지만 어린 나이에 궐에들어와 대비가 되었기에 효종 ..
[도서평]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3 - 실크로드의 오아시스 도시 소개할 도서는 최근에 읽은(창비 서평단에 당첨됨)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3편인 실크로드의 오아시스입니다. 역사답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유홍준 선생의 문화유산답사기는 바이블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한권한권 주옥같이 써내려간 우리나라의 방방곡곡에 산재한 알듯모를듯한 문화유산과 문화재에대해 특유의 입담과 열정으로 설명해주시고 있습니다. 5년전에 직접 뵌적이 있기에 더욱 친근하게 다가오는 분으로 당시에 역사학자가 되겠다던 아들에게 덕담을 해주시기도 했습니다. 아래는 유홍준 선생님을 실물로 처음뵌 2015년 문화유산 답사기 남한강편 초청 강연회 모습 개인적으로 실크로드는 80년대에 TV에서 방영했던 NHK의 다큐멘터리가 기억납니다. 청소년시절이라 보면서 졸다말다한 기억이 나지만 당시에는 아주 ..
[연재]조선왕릉 동구릉 목릉 인목왕후 능침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인목왕후는 선조의 계비로 19살의 나이에 당시 51세이던 선조와 국혼을 올립니다. 지금 시대 같았으면 말도 안되는 상황이겠지만... 당대는 당대의 시선으로... 인목왕후는 영창대군의 생모로 당시 임진왜란 당시 많은 고생을 했던 세자 광해군과 대립을 하게됩니다. 하지만 영창대군이 너무 어렸기에 선조는 광해군이 왕위를 잇도록 유언을 남겼습니다. 이후 영창대군은 강화도에서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인목왕후는 경운궁 현재 덕수궁 석어당에 유폐가됩니다. 정명공주로 이연희가 연기했던 몇년전 사극 화정의 배경이기도합니다. 짧지않은 십여년의 생활 하지만 이후 극적인 반전으로 인조반정이 일어나며 광해군은 쫓겨나고 인조는 정통성을 가지기위해 반정직후에 이곳으로 달려가 인목대비의 인가를 받는 형식을 취합니다. 인목대비로선 ..
[연재]조선왕릉 동구릉 목릉 선조 능침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선조 목릉 전경 목릉 관련글보기 - https://noleter.com/258 [연재] 조선왕릉 동구릉 목릉 선조 - 지금도 비난을 많이 받고있는 임금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사극과 역사에 관심많은 분들이 암군으로 꼽는 조선시대 임금은 선조와 인조가 있습니다. 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고생도 많이 했지만 전체를 끌고가는 군주로서의 판단이나 태도�� noleter.com 목릉 능침 - 2014년 8월 방문당시.. 지금은 비공개지역이지만 당시만해도 공개를해 아무나 올라갈수 있었습니다. 이때는 왕릉 답사 초기 시점이라 촬영에 포인트를 잡지못했지만 답사의 경험은 생생하게 남아있기도합니다. 새로운 세계를 접했을때의 신비감같은... 장명등과 혼유석 그리고 봉분 세조는 병풍석을 두르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지..
[연재]조선왕릉 동구릉 목릉 선조 - 지금도 비난을 많이 받고있는 임금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사극과 역사에 관심많은 분들이 암군으로 꼽는 조선시대 임금은 선조와 인조가 있습니다. 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고생도 많이 했지만 전체를 끌고가는 군주로서의 판단이나 태도가 백성들의 호응을 얻지못하고 상상할수 없는 온갖 고초를 더욱 증폭시켜 겪게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문정왕후에 휘둘리던 명종의 뒤를 이은 선조는 방계로서 원래는 왕위 계승과는 크게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성군시절 선조는 나름대로 명민함을 인정받아 후사가 없는 명종에 이어 중종의 손자가운데 선택되었고 서예도 능통해 지금도 많이 찾아볼수 있습니다. 사림의 당쟁이 심화되는 시기이기는 했지만 아마 임진왜란이 아니었다면 성군까지는 아니더라도 평범한(?) 왕생활을 이어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조의 어필 병풍 아래는 선조의 초상화..
[연재] 조선왕릉 태조 이성계 동구릉 건원릉 억새 절정기 - 2 한포스트에 넣기에 분량이 많은것 같아 두개로 나누었습니다. 처음부터 보실분은 아래 링크로.. https://noleter.com/255 [연재] 조선왕릉 태조 이성계 동구릉 건원릉 억새 절정기 - 1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결국 자식들간의 골육상쟁을 눈으로 보았고 가장 총애하는 신하 조선의 설계자였던 정도전마저 잃게됩니다. 후계구도를 제대로 설정하지못한것으로 애틋하던 신� noleter.com 건원릉 동쪽 문석인 동쪽 문석인과 무석인 동쪽 무석인 시점의 정자각 장명등과 능침 장명등에서 바라본 문석인 장명등에서 바라본 정자각. 장명등을 통해 정면을 바라보면 능의 주산을 바라볼수 있습니다. 건원릉 병풍석 불교적 상징들을 볼수있는 초기 조선왕릉의 모습. 병풍석에 새겨진건 십이지신입니다. 불교적인 것은 영..
[연재] 조선왕릉 태조 이성계 동구릉 건원릉 억새 절정기 - 1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결국 자식들간의 골육상쟁을 눈으로 보았고 가장 총애하는 신하 조선의 설계자였던 정도전마저 잃게됩니다. 후계구도를 제대로 설정하지못한것으로 애틋하던 신덕왕후의 베개밑 송사와 정도전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세자 책봉은 결국 태종 이방원의 피의 복수로 끝을 맺게되었습니다. 태조 사후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은 분해되어 방통교 다리밑에 깔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고, 태조가 살아있을때는 고향 함흥으로 올라가 부르려 오는 족족 화살끝에 사라져 함흥차사란 말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후 무학대사의 권유로 되돌아오긴했지만 마지막에는 북방의 억새를 무덤에 심어달란 유지를 받들어 태종이 심게되었습니다. 아래는 태조 이성계 어진으로 소실되지 않았기에 실제의 태조 모습이라 생각해도 무방합니다. 어진은..
[2020년5월] 비오는 풍경 성호공원 부곡동 푸른학습장 연못 5월 주말에 비가 많이 내렸습니다. 송화가루가 많이 날리던 시기이고 건조했기에 매우 반가운 단비였습니다. 인적이 드문 성호공원을 내집 정원처럼 걸어다니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습니다. 집에서 부곡동까지는 왕복 4킬로미터 가까이 되기에 산책과 도보운동에 매우 좋은 코스였습니다. 영상보기 성호공원 부곡동 푸른학습장 가는길.. 이곳은 봄에 벚꽃이 만발하는 공간으로 여의도 만큼은 아니어도 인파가 몰리는곳이었는데 올해는 코로나로... 사진을 찾아보면 20년전쯤에 찍은것도 있을텐데 지금보다는 어수선하고 인적이 거의없던곳이 탈바꿈했습니다. 푸른학습장의 연못과 다리 연못 풍경 여유로운 오리 한마리 송화가루 많이 날렸지만 비로인해 잦아듬.. 자동차는 물론이고 집안 구석구석까지 샛노랗게 물들였지만... 푸른학습장내 팔각정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