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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놀이터/근대

[도서평] 미야모토소위, 명성황후를 찌르다 - 이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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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민씨의 죽음에 관해 지난번에 읽은 저서는 사바찐의 시선에서 재구성했던것인데

이책은 본격적인 탐구서 가운데 하나


실제로 명성황후를 시해한건 낭인들일까? 일본 군인이었을까? 를 밝히는 책

저자는 일본군 소위인 미야모토를 지목했는데..

미우라는 결과지향적인 군인이었기에 낭인들에게 맡기는 변수로인한 불안함보다 확실한 처리를 원했던것 

그렇게하기위해 군인을 최종 순간에 같이 투입시켰던것

이 추론이 사실이라면 이문제는 낭인들에게 돌아갈 우발적으로 이뤄졌다는 해석을 지워주는 부분으로

충분히 국제적으로 문제화시켜 사과와 배상을 받아야할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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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장성 출신의 미우라 고로

당시 청일전쟁에 승리하며 의기양양했던 일본이지만 삼국간섭으로 요동반도를 다시 내주고 

러시아에 조선에 대한 영향력도 밀리던 시점에 계획적으로 건너온 인물

그 중심에 있던 명성황후를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군인이라는 특유의 과단성을 남의나라 황후를 암살하는 몹쓸짓에 이용

미우라는 하지만 애국이라고 믿었고 일본 내부에서도 이런 기류가 있었습니다

심지어 재판과정에서도 애국하는 자신들을 이렇게 마구 대한다고 항의하기도 했던 인물



만약 역으로 현재 일본의 왕궁에 우리나라 군인과 일부 폭력배를 동원 침입해 

왕비를 살해한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것인지는 뻔하다

현재 일본천황은 실질적인 권력이 있는것도 아니지만 당시 명성황후는 실권자였는데

상상할 수 없는 국제분쟁에 휩싸일 것은 너무나 당연한것으로 이것을 구실삼아 전쟁까지 불사할 수 있는 사태

실제 일차세계대전도 세르비아 청년의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 암살사건을 구실로 촉발되지 않았던가..



압송되는 녹두장군 전봉준

동학전쟁 당시 일본군은 청나라와 같이 조선반도에 개입 많은 학살 자행



미우라는 당시 공사이던 이노우에 가오루와 교체될때 사전 계획을 세워두고 정작 조선에 들어와선 위장하기위해

염불만 드리며 상대방을 안심시켜놓았고 원래 거사일보다 빨리 시행한건 일본 군대의 조련을 받았던 훈련원의

우범선등을 동원했는데 명성황후가 훈련대 해산을 명했던 10월7일 다음날 아침에 급하게 시행

우범선은 이후 일본으로 도망가서 살다 고영근에게 죽음을 맞이하는데 

그의 아들이 유명한 육종학자인 우장춘임을 생각하면 역사의 아이러니 

조선인 훈련원 부대원들은 불만이 팽배하긴 했지만 대원군과 마찬가지로 미우라에게 이용당한 측면이 더 큰데

여차하면 뒤집어 씌울수 있는 장치들을 여러개 마련한 미우라


미우라 고로 노년모습



사바찐이 중후한 신사라 부르던 오카모도 류우노스케 

역시 군인 출신으로 미우라와 같이 기획하고 현장을 총지휘한 인물


흥선대원군과 교류가 있던 오카모토 류우노스케(사바찐이 신사라고 부르던 현장 지휘관)는 낭인들을 데리고 

흥선대원군 집으로 향해 실랑이를 벌이며 늦게 나온 대원군을 앞세워 경복궁으로 향해갔습니다

원래는 어두운 새벽시간을 이용하려했으나 대원군의 늑장으로 날이 훤해진 아침 시간대에 사단이 난것


지금까지 통설은 낭인들에 의해 명성황후 시해가 일어난것으로 알고있었지만 

미우라는 확실한게 마무리짓기위해 위해 일본군 장교들을 같이 투입했던것


경운궁(현재의 덕수궁) 대안문(현재의 대한문) 빠져나가는 명성황후 장례행렬



저자는 제시한 증거로서 당시 일본 영사이던 우치다가 당시 외무차관인 하라 다카시에게 보낸 서한으로..

살해당한 부녀자 중 한 명은 왕비라고 하는바, 이를 살해한 자는 우리 수비대의 어느 육군 소위로서

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나중에 진술을 흐리게됨

이편지는 보낸 당사자인 우치다가 당부한것처럼 당연히 소각했어야 하겠지만 우연히 남겨지게 되었고


을미사변이후 미우라와 낭인들은 군사재판에 회부되지만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고

이날 명성황후를 시해한것으로 알려진 미야모토는 일시 군복을 벗었지만

헌병으로 다시 차출 당시 거센 저항속에서 많은 사상자가 나오던 타이완으로 발령

그곳에서 현지 레지스탕스와 교전중 사망

저자는 당시 전사자는 야스쿠니 신사에 들어가지만 미야모토의 이름은 빠져있는점을 수상히 여기는데

역시 은폐의혹으로 볼수 있을듯.. 위험한 전선으로 보내고 신사에 들이지는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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