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신조가 존경한다는 정한론의 요시다 쇼인

Posted by 놀이터 추억보관소
2015.06.01 00:37 세계사 놀이터/일본사

아베 신조 일본 수상의 행보가 심상치 않은 요즘

일본에서도 여론이 반대쪽이 많이 나왔는데 집단자위권을 행사할수 있는 안보법률이 개정된다면 68%가 자위대가 위험에 빠질수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럼에도 절반에 가까운 지지율을 보이는 아베는 이법안을 밀어붙일 기세..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지주였던 요시다 쇼인을 만날수 있습니다.

교육자이자 사상가이기도 했던 요시다 쇼인 1830년 조슈번 현재의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난 인물

 

그동안 일본에 대한 악감정만 있었지 실체를 볼려는 노력을 안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시작하면서 만나게된 인물로 서른살의 나이로 교수형을 당한 요시다 쇼인은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해 미국의 태프트와 밀약을 맺었던 가쓰라 총리 명성황후 시해 사건의 배후인 미우라 조선 총독이던 데라우치를 비롯해 아베의 고조부인 오시마 요시마사는 1894년 경복궁에 침입한 인물로 역시 요시다 쇼인과 동향 사람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작년초에 그것이 알고싶다에서도 안중근 의사의 죽음과 관련된 잘못된 법률적 적용을 다루면서 한번 같이 다룬적이 있었는데 아베의 가문을 거슬러 오르면 아버지 할아버지는 물론이고 외가쪽으로도 2차대전 이후 A급 전범이었지만 냉전으로 인해 풀려나 수상까지 지낸 기시 노부스케가 외조부이고 박정희 정부시절 한일협약에도 막후에서 조정하던 인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 기시는 A급 전범들의 시신을 묻고 성대하게 꾸며놓은 묘지까지 있습니다.

 

 

이런 환경속에서 자란 아베신조가 지금 같은 주장을 하는것은 당연한 노릇입니다. 다만 우리나 중국에 매우 거슬리는 것은 남을 침략하더라도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극단적 국수주의의 망령 때문인데 정한론과 대동아공영론의 원천이된 요시다 쇼인은 11살에 번주앞에서 병법을 강론할만큼 천재소리를 들었는데 이후 번을 벗어나 유랑길을 떠났고 사쿠마 쇼잔에게 서양의 학문도 섭렵하면서 당시 도쿠카와 막부의 미국의 페리제독에 의한 개항이후 끌려다니는 외교에 분개심을 가지고 존왕양이의 사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분개심은 막상 보게된 미국 해군의 위세를 보면서 막연한 분개심만 가지고는 대적할수 없다는 것을 알게되고 서양을 배우기위해 밀항까지 시도하지만 실패... 이후 조선과 중국 그리고 동남아까지 지배를 두어 미국 러시아와 대등하게 맞서야 한다는 소위 대동아공영권을 구상하고 이를 위해서 정한론을 실현해 조선을 우선적으로 차지해야한다는 주장을 하게됩니다. 당시만해도 말도 안될것 같았던 이주장은 후일 제자들이던 이토히로부미등에 의해 메이지유신으로 막부체제를 무너뜨리고 서양식의 산업화를 받아들이면서 실현하게 됩니다.

 

 

마나베 아키카스라는 막부의 주요인물 암살작전을 세우다 막부세력에 의해 참수당해 서른살에 죽음을 맞이한 요시다 쇼인이지만 죽기 2-3년전의 기간동안 쇼카손주쿠라는 교육기관을 운영했는데 교육자로서의 요시다는 천황아래 모든사람이 평등하다라는 기치아래 명문가나 빈한한 집안같은 것을 따지지않고 남녀차별도 없이 동등하게 대해주었고 이때 나온 인물들이 하급무사 집안이었던 이토 히로부미를 비롯 메이지유신 이후 정부의 고관대작 자리를 독점하다시피하는 조슈번의 인물들이 나오게 되었기에 현재 일본에서 요시다 쇼인은 아베 같은 국수주의자들에게는 신처럼 받들어지는 존재이고 공개적으로 존경까지 한다는 말을하고 있는데..

최근 일본은 전후 70년이 지나면서 안보법률 개정을 준비하고 있고 일부 어용 사학자들은 침략은 사실이지만 사과는 정치적인 일이라 별개라는 괘변을 늘어놓기도 하는중으로 우리로선 좀더 긴장하고 추이를 지켜봐야할 시점

요시다 쇼인의 제자인 이토히로부미를 비롯 어린 시절 많은 영향을 받은 조슈번의 5걸

요시다 쇼인 사후에 영국으로 견문을 넓히러 유학 보내진 이들은 메이지유신이후 총리와 추밀원 의장등을 맡는 이토 히로부미(오른쪽 상단) 외무대신과 내무대신등 정치가가 되는 이노우에 가오루(가운데) 엔도 긴스케(왼쪽 상단)는 조폐국장을 이노우에 마사루(왼쪽 하단)는 철도청 장관을 역임하고 야마오 요조(오른쪽 하단)는 법제장관을 역임하면서 메이지 유신이후 팽창하던 일본의 근대화시점에 종횡무진 활약을 하게되는 인물들..

일본에서는 메이지시대가 대단한 전성기를 누린 시대이기 때문에 국력이라는 관점에서 특히 보수 우익이라면 그시절을 동경하면서 돌아가고픈 논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싶을듯...

아베신조는 이런 타이밍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도하다.

당대의 삿초동맹을 이끌어 조그만 조슈번과 대적하던 사쓰마번을 화해시킨 사카모토 료마(유명한 일본 사극 료마전 주인공으로 일본의 유명한 대하 소설 작가인 시바 료타로의 소설로 유명해짐)와 나카오카 신타로 같은 사람도 있지만 이들은 대정봉환으로 불리는 막부의 권력이양직후 암살당하는데 이들 이후 결국 이토를 비롯한 인물들이 요직에 오름

하지만 요시다 쇼인의 대동아공영론과 더불어 딸려온 정한론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에 비한다면 자신만을 위한 치졸하고 협소한 시야를 지니고 있기에 아무리 이것들이 실현가능성에 바탕을 두었다 하더라도 실천에 옮기게 된다면 주변국에 침략이라는 죄를 짓기때문에 이런 국수주의적 이론이 가진 한계는 극명하다고 할수있습니다.

 

요시다 쇼인 신사와 박물관에 관련된글 - http://toads.blog.me/20169804034

 

2차대전 참패이후 전범들이 돌아와 수상을 역임하기도하는등 당시 동아시아의 한축을 담당하던 미국의 역할이 역사적 배경을 도외시한채 냉전 논리에 급급해 너무 쉽게 면죄부를 주었고(대한민국 정부 수립시점에도 이런 역사적인 맥락 부분이 너무 배제되어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되지 못한것이 매우 안타까움) 한국전쟁등을 지나면서 다시 경제적으로 풍족해진 일본은 최근 어려워진 경제의 틈바구니 속에서 독버섯 처럼 조금씩 조금씩 제국주의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다시 과거와 같은 침략이 있을수도 있는 상황으로 회귀하는 징후들 때문에 가장 크게 피해를 봤던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경계의 칼날을 드러낼 시기는 아니지만 주시하면서 시선을 떼어 놓을수 없는 상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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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위키백과 퍼블릭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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