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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이야기/성호이익과 실학

진주유씨 집안의 부계전도 - 1900년 안산 부곡동 지도 - 성호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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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박물관에서 전시중인 부계전도와 부계팔경도는 1900년에 제작된 것으로 현재 안산 부곡동을 세거지로 삼았던 진주유씨 집안의 토지와 지명을 꼼꼼하게 기록한 지도이자 그림입니다. 현재의 청문당과 경성당과 주변을 감싸고있는 수리산자락의 옛지명과 모습을 기록해두었습니다. 진주유씨 집안의 모산 유원성(帽山 柳遠聲, 1851~1945)이 그린 작품입니다.

 

모산 유원성   사진출처 - 안산시청

 


유원성의 자는 주명(周鳴), 호는 모산(帽山), 본관은 진주이다. 1874년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897년에는 법부주사로서 고종이 원구단에서 고유제를 지낼 때 재랑(齋郞)으로 참여하였다. 1899년 평리원주사를 거쳐 같은 해 겸임법규교정소주사를 지냈다.
1901년 산릉도감낭청과 평리원검사를 지냈고, 법부 법률기초위원과 법부교정소위원으로 참여하였으며, 1906년 개천군수(价川郡守) 등을 지냈으며 1907년 통정대부에 이르렀다.

1926년 시흥 지방 인사들의 한시동인회 연성음사(蓮城吟社)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유원성이 그린 부계팔경도는 부곡동 일원의 8경을 그림으로 묘사한 병풍이고, 부계전도는 진주유씨 문중 분묘 소유지를 표시한 그림이다. 이 두 자료는 부곡동의 지형구조가 어떻게 변모되고 있는가를 비교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유원성은 당시에 고종의 홍릉 산릉도감 낭청으로 있었는데 현재의 홍유릉 자리는 원래 양주 조씨(조선시대 태종의 총애를 받았던 조말생의 집안)의 선산으로 왕릉을 천장하게되면서 본인들의 선산은 안산으로 옮겨가게 해달라고 청을 올렸습니다. 이를 알게된 유원성은 안산 부곡동 지역이 선조의 사패지로 내려진 땅이라 불가하다 고했기에 그대로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부계전도 - 이미지출처 문화재청


부계전도 설명

부계전도(釜溪全圖)는 1900년 모산 유원성(帽山 柳遠聲, 1851~1945)이 진주유씨 문중의 산소를 표기하기 위해 안산 부곡 일대(現 상록구 부곡동237)를 부감법(俯瞰法)을 사용해 그린 지도이다. 부계전도를 살펴보면 분묘가 있는 곳은 붉은 점을 찍어 표시하고, 땅은 자신의 것과 타인 소유를 글씨를 적어 표시하였다. 또한 중요 지점에 대해서는 한자로 지명을 명기하였다. 지형도 위에는 후손들에게 부곡동의 토지와 산소를 철저하게 수호하도록 염원하는 발문이 적혀 있으며, 제작한 연기와 작자가 정확히 명기되어 있다.「부계전도」는 1900년대 안산 부곡 지역의 지형·산세·지명 등이 상세하게 세필로 기록되어 있어, 당시 부곡 지방의 지형 구조가 현재 어떻게 변모되었는가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유일한 작품으로 가치가 있다.

 

현재의 부곡동 (부계전도처럼 동쪽방향을 위로 돌려놓은 지도)

 

 

경성당은 모산 유원성이 살던곳으로 조선시대 4개의 만권당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바로 근처의 청문당과 더불어 두개의 만권당이 같은 공간에 있었습니다. 부계전도에는 초가집으로 묘사되어있습니다.

청문당에 처음갔을때 경성당의 위치를 찾지못해 못갔었는데 몇년후에 지도를 확인하고 다시 방문. 너무 가까운곳에 있어 허탈하기도 했었는데 이곳의 현판은 당대 최고의 명필로 꼽히던 동농 김가진의 글씨입니다. 역시 사전정보없이 갔다가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었습니다.

김가진은 유원성과 같은 시기에 관료로서 우의를 다졌는데 많이 알려진것처럼 일제의 남작 작위를 받을만큼 대신이었지만 가산을 모두 정리해 중국으로 떠나 독립운동에 투신한 집안입니다. 일제의 작위거부가 불확실해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한 동농은 상하이에있고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아들 김의환은 북한 열사릉(한국전쟁당시 납북)에 목숨걸고 국내잠입을 여러번했던 며느리 정정화는 국립묘지에 묻혀있어 우리 현대사의 굴곡이 그대로 드러나있습니다.

서대문에 있는 독립문의 현판을 동농이 쓴것이라는 설과 이완용이 썼다는 설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필치로 봐서 동농의 작품으로 보임. 김가진에 대해서는 서울 서촌 답사기를 정리할때 상세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사패지를 받은 선조의 딸 정정 옹주와 사위 진안위 유적의 묘 - 안산 부곡동

https://noleter.com/90

 

안산 정정옹주(貞正翁主)묘에서 만난 고양이

집에서 나선 산책길.. 안산대학교 뒤에있는 성태산을 가로질러 수리산 수암봉까지 하루종일 걸리는 코스가있습니다. 높지는 않지만 지루한 능선을 여러차레 오르락내리락 하는 코스.. 점심먹고

noleter.com

 

유원성이 산릉도감 낭청으로 있던 홍유릉 - 조선왕릉 고종 명성왕후 홍릉 능침 경기도 남양주

 

현재 지도로본 18세기 안산 수암봉에서부터 부곡동 일동 성포동 주요 지점입니다. 김홍도미술관에서 강세황집이있던 현재의 엘리시움 아파트까지 직선거리로 5.77킬로미터로 도보로 2시간 이내로 예상되는 거리입니다. 강세황이 자기집처럼 수시로 드나들던 유경종의 청문당까지는 1시간 이내의 거리.

오래전 강세황 집터를 찾아보겠다고 너구리산 밑에있는 장상저수지 부근에서 헤매던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사전 정보없이 청문당에서 가깝다는 말에 대책없이 가보던곳.

 

 

오랫만에 들어가본 성호박물관으로 성호기념관에서 박물관으로 바뀐뒤에 코로나로 몇번 가보지 못했습니다. . 집앞이라 오히려 자주가지 않는 아이러니함. 

청문당과 경성당은 조선시대 있던 4개의 만권당 가운데 하나이며 안산을 근거지로 잡은이후 진주유씨 집안의 전통을 엿볼수 있는 공간입니다. 부곡동은 부근 일동 조선시대 지명으로 첨성리에 자리잡은 성호선생의 여주이씨 가문과 더불어 학문과 예술이 한창이던 당시 안산의 풍경을 추측해볼수 있는 공간입니다.

조금 아쉬운건 부계전도에 나온 청문당 주변은 이런 유적이 남아 있다는게 신기할 정도로 공장들로 뒤덮인 공간입니다. 조상땅을 잘 지키라던 모산의 전언이 생각나지만 그의 사후 우리 현대사를 생각해보면 격변의 시기였습니다 . 유원성이 부계전도를 그릴 무렵에는 아마도 수백년이상 크게 변하지 않았을 지형이었겠지만 불과 백여년전의 모습은 청문당과 경성당 그리고 주변의 수리산 등산로를 따라 가늠해볼 수 있을정도입니다.

 

성호박물관 전시장 입구

 

 

 

유원성의 부계전도와 부계팔경도 전시

 

전시중인 부계전도

 

 

부계전도에 그려진 수리산 등산로는 영상 편집이 되면 올리겠습니다.

 

성호박물관 기획전시 - 진주유씨 안산을 그리다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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