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장릉의 경관훼손 아파트를 보면서 생각한점.
김포장릉과 관련된 뉴스들을 보면서 아연실색하는중입니다. 지금으로선 책임소재와 잘잘못은 명확하게 가리는게 매우 중요하지만 그이전에 이런 상태까지 가게된것 자체의 문제가 아쉽습니다.
그리고 고층아파트를 시공할 정도의 건설사면 그동안 많은 사례가 있었을 것이고 분명 법무팀이 있거나 외부에서라도 전문적인 자문을 구할수 있었을텐데요... 이전에 장릉 경관 훼손을 피해가며 지어진 15층 규모의 삼성쉐르빌의 사례도 있었기에 자체적으로 좀더 세밀하게 따져보지않고 공사가 강행된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1차적으로 건설회사에서 제시한 수정안으로 층고가 높은 것을 고려해 왕릉에 어울리는 디자인으로 변경하는것을 내세웠지만 어불성설입니다. 조선왕릉은 풍수적인 부분이 매우 중요한 핵심중에 하나로 조성되었기에 자연경관과 조화를 중시하고 세웠습니다. 조선왕릉이 겉보기에는 어딘가 밋밋해보이지만 건축물과 자연경관이 하나된 것으로 간주되어 조성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왕릉의 조성이 간소하고 소박하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왕릉이 조성되는 당시에 격식에 맞게 수천명의 노력과 시간이 들어간 것들입니다. 경관이 중요한건 앞에 언급한것처럼 당대에 추구한것이 풍수라는 자연과의 조화였기에 생긴 동아시아의 독특한 문화라 할 수 있습니다.
자연속에 위치한 왕릉의 구조에서 나온 석물과 건축물은 답사기로 유명한 유홍준 선생님이 자주 인용해 언급한 검이불루(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 - 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 - 에 부합되는 미학의 결정체라고 할수 있습니다. 조선왕릉 중에서 일본인들이 주도한 순종의 유릉은(황제릉 형식이라 양식상 다른부분이 있습니다) 외양은 매우 화려하지만 주변 경관과의 조화보다는 보여주기식으로 만들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기도합니다.
일단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어설픈 절충은 앞으로도 매우 안좋은 사례가될게 뻔합니다. 12월 9일에 열린 2차 심의에서 건설사들중 2곳이 심의를 거부하며 법정소송으로 가게될 전망입니다.
아직 결론이 나지않은 현재 제일 걱정스러운건 내집마련을 위해 이곳을 계약한 입주예정자분들인데 매우 안타깝고 어려운 문제입니다. 어떤 방식이든 신속하고 적절한 해결책으로 재산상의 손해를 보지않아야할 문제입니다. 결국 관건은 법원의 빠른 판단과 신속한 집행이 되겠습니다.
계양산과 장릉의 의미 - 김포장릉 역사문화관
문화재는 시간의 축적을 가지고 내려온 우리문화의 정수이기에 인위적으로 필요에따라 그때그때 만들어낼수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문화재 훼손은 후일 몇배 혹은 수십배 이상의 비용을들여야 제자리로 돌려놓거나 불가능할수도 있습니다. 결국 재원을 크게들여 해결할 문제이기도하기에 후손들에게 큰 부담을 주는일로 당장 상관이 없는 일이라 여기면 안됩니다. 국가 혹은 공동체의 자긍심을 떨어트리고 대외적인 이미지에도 후진적인 인상을 심어주는 일입니다.
물론 지금과는 결이 매우 다르지만 문화재 파괴의 아주 극단적인 사례였던 바미안 석불을 폭파시킨 탈레반이나 유서깊은 팔미라 유적을 파괴한 IS를 생각하면 문화 유적의 파괴는 스스로 발등을 찍는 행위와 같습니다.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선정이 가능했던 이유는?
김포 장릉은 인조의 아버지인 추존 원종이 모셔진 곳으로 특히 다른 왕릉에서는 부분적으로 사라진 연지가 잘살아있는 곳이기도합니다. 조선왕릉의 가치중에 하나는 도심이나 아주 가까이에 위치하지만(조선시대에 왕이 직접 제향을 지내야했기에 도성에서 백리(40킬로미터)내에 위치하게되었습니다. 여주 영릉이 예외적이지만 뱃길로 오갈수 있는곳이었고 영월 장릉은 후대에 세워진 특징이 있습니다) 생태적으로 많은 보존가치를 지니고 있는 공간이라는 점입니다. 왕릉은 조선시대에는 아무나 들어갈수 없는 신성한 공간이었고 현재는 자연경관과 숲이 보존된 환경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복합적인 성격의 역사적 공간입니다.
풍수적으로 최고의 명당으로 꼽히는곳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
1936년 조선고적도보 사진
동구릉 건원릉 2019년 억새 절정기 사진 멀리 구리시의 아파트와 멀리 잠실의 롯데까지 보이지만 조산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계단식 향어로와 익랑등 특이한 형식을 발견할수 있는 서오릉 익릉(숙종의 비 인경왕후의 능)
능침에서 바라본 정자각과 정면에 위치한 조산
능침 장명등에서 바라본 조산은 정자각과 일직선상이며 능침의 봉분과도 일직선상을 기준으로 조성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위치한 조선왕릉 40기가 일괄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건 여러가지 까다로운 조건에 부합했기 때문입니다. 조선왕릉은 알고보면 왕릉의 격식에 맞는 당대 최고 장인들의 석물조각이나 문화적 의의를 가지는 건축양식등 여러가지 가치를 지니고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냥 평심하게 볼때는 시각적으로 화려하다거나 압도적이라거나 특이하다고 볼수는 없는 공간입니다.
그럼에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건 40기 왕릉이 세워질 당시의 원형이 온전하게 보전된 점과(원래 없었던 것을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해서 혹은 다른 이유를 가지고 후대에 그럴듯하게 꾸며진 부분이 있으면 아무리 멋있거나 특별한 가치를 지니더라도 제외대상이 될수있습니다) 6백여년 이어온 전통적인 제향의식이 아직도 그대로 지켜지고 있는점 그리고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자리인 이곳들의 자연경관과 오랜기간 집적된 고유한 양식의 결과물인 왕릉 건축이 조화롭게 공존하고있었고 40기 모두 크게 훼손되지않은 상태로 지금까지 보전되어있는 점이 높은 점수를 얻었기 때문입니다.(실사단이 왔을때 확인을위해 한기 정도는 발굴을 요청했지만 아직도 제향을 지내는 문중의 반발과 기록의 나라인 조선의 세세하게 기록한 의궤와 여러 사료들을 보여주며 넘어간 부분이 있습니다. )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선정시 중요한 것중에 하나가 보전을 위한 공동체의 노력과 약속이 지속적으로 가능할 것인가입니다.
유네스코에서 조선왕릉을 세계문화유산에 포함시킨 상세한 이유
https://heritage.unesco.or.kr/%ec%a1%b0%ec%84%a0-%ec%99%95%eb%a6%89/
조선 왕릉
제목 : 조선 왕릉 설명 : © UNESCO 상세정보 국가 : 대한민국(Korea, Republic of) 위치 : 좌표 : N37 11 50, E128 27 10 등재연도 : 2009년 조선왕릉(朝鮮王陵)은 18개 지역에 흩어져 있고 총 40기에 달한다. 1408
heritage.unesco.or.kr
김포장릉은 파주 인조의 장릉과 계양산이 일직선상으로 바라보는 구조를 생각하고 조성되었기에 가까이에 이를 해치는 건축물이 들어서는건 중요한 특성이 깨지게되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은 국가의 이미지라는 높은 효과를 지니고 있기에 당장의 경제논리만으로 접근할수 없는 국가의 격조를 좌우하고 있는 문제이기도합니다.
조선왕릉의 수난 시대
조선왕릉은 도굴이 매우 어려운곳으로 지금의 시멘트 콘크리트인 회벽으로 두껍게 보호되고있기에 안으로 파고 들어가 발굴하는것은 포크레인을 동원하지 않는한 인력으로는 힘들고 특히 몰래하는 도굴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합니다. 2007년 서오릉에있는 순창원을 도굴하다 포기한 흔적이 발견된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렵게 파고들어간다한들 다른시대나 외국의 왕릉처럼 진귀한 보물이나 귀금속이 들어있지도 않습니다. 성리학적 이상을 전면에 내세운 국가였기에 되도록 왕이 겉으로 보이는 사치와는 거리가먼 모범을 보여야했습니다. 몇년전 나온 이재훈이 주연한 영화 도굴에서 선릉을 파고들어간다는 설정에 뭔헛소리야 하면서 본적이있기도 하지만 영화라 그럴듯한 설정과 이유를 만들었는데 어찌되었건 도굴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선정릉은 임진왜란당시 공개적으로 파헤쳐진 곳이고 태릉은 파헤쳐질려다 말았습니다.
조선왕릉의 최근 수난사를 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은 서삼릉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전국에 분포해있던 왕실의 태를 이곳에 공동묘지처럼 모아놓았고 지금의 효창공원내에있던 문효세자의 효창원도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1960년대 정재계 실력자들의 난도질로 주변에 골프장을 비롯해 종마장과 소들이 노니는 목장이 들어선 상태인데 이곳은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더구나 인종의 효릉은 이곳 축협 소유의 땅으로 가로막혀 유일하게 비공개상태로 남아 관람조차 쉽지 않습니다.
경종의 의릉은 중앙정보부가 들어서면서 훼손이 심하게 되었던 곳인데 향어로 양쪽으로 일본식 연못에 비단잉어를 키우고 체육시설도 있었지만 현재는 원래대로 많이 복원된 상태이고 맞닿아있는 한예종에서 사용중이던 부지까지 회수해 활용하게되면 좀더 복원에 가까워질수 있습니다. 원래있던 정자각은 홍유릉에 있는 영원으로 옮겨 사용중이라 다시 되돌리기 힘든 상황...
태릉은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알고있는 선수촌이 들어선 곳이었지만 유네스코와의 약속대로 철거되었습니다. 지금은 골프장 부지에 남아있는 연지가 문제인곳입니다. 서오릉에 있던 군부대는 다른곳으로 옮겼지만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태릉과 서오릉의 창릉 인근은 신도시와 아파트 건설로 또한차례 시끄러워질 여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주의 세종대왕 영릉은 박정희시절에 단장을 많이 한곳이지만 원래의 격식대로 복원된 것이 아니기에 얼마전 원형대로 복원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도로가 생기면서 양주 온릉의 재실위치를 되돌리기 어려워진것등등 있지만 모든것을 원래대로 할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가능한건 최대한 되돌려 놓는것도 의미있는 일입니다.
선정릉은 임진왜란당시 파헤쳐진곳이고 현재는 빌딩숲에 포위된 곳으로 유네스코 선정 당시에 우리나라 내부에선 많은 고민을 한곳이기도합니다. 당시 반전은 실사단이 주변 강남의 마천루와 도심지를 보곤 이런 장소에 이정도로 보존이 되었다는게 기적이라며 높은 평가를 하기도 했다고합니다.
동구릉의 외연지터와 현재의 매표소 사이에는 도로가 나있어 원래 대로 복원하려면 지하도를 뚫던가 우회로를 만들어야 하는데 천문학적인 비용 때문에 말만 오갈뿐 실현되기 힘들어 보입니다.
동구릉 외연지터
위에 열거된건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전에 생긴일이었고 우리 근현대사의 굴곡이 담겨있기도 합니다. 특히 서삼릉은 국유지였던곳을 헐값에 팔아서 생긴일로 지금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간 비용때문에 원래대로 되돌리기 많이 힘든지경이고 다른곳은 유네스코의 권고대로 차근차근 개선이 되어가는 상태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보존
여기에서 하나의 문제는 김포 장릉만 세계문화유산에서 해제시킬수는 없다는점입니다. 조선왕릉은 대한민국에 산재한 40기 전체가 원형대로 핵심적인 부분들이 보존되어있기에 높은 평가를 받았고 일괄로 같이 등재된것이기에 탈락된다면 조선왕릉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에서 탈락됩니다.
문화재청이랑 건설사가 절충해 합의한다해도 이를 심사하는건 유네스코이기에 탈락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강사이로 교량을 세워 경관을 해친 독일의 드레스덴 엘베계곡이나 재개발로 인한 영국의 리버풀 항구등 이미 세계적으로 선례도 있었기에 충분히 일어날수 있는 상황입니다.
다만 독일의 사례는 우리에게 한가지 시사하는 점이 있습니다. 당시 세워진 다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필요성이 있어 세워질 계획이었고 유네스코에서도 인지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재정난과 발발한 전쟁등 독일 내부의 여러가지 사정으로 미뤄지다 유네스코 등재이후에 건설이 시작되었습니다. 경관이 중요했던 이곳에서도 격렬한 논쟁이 있었지만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편의를 위해 다리 건설을 찬성하는 쪽이었고 결국 세계문화유산에서 탈락하는 최초의 사례가 되었습니다.(이전에 자연유산중에서 오만의 오릭스보호구역이 석유등의 개발로인해 취소된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결과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전체 주민들의 생활편의상 꼭 필요했던 부분이었기 때문
드레스덴 엘베계곡의 사례로 본 세계유산 보존 정책 - 조유진
http://www.koreascience.or.kr/article/JAKO201564750652168.pdf
김포장릉 아파트는 따지고보면 공익성도 있지만 개인적 차원이 더 크게 자리잡고있다 할수있고 결과론이지만 피해갈수 있었던 부분이기에 착찹한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예전부터 소중하게 생각하는 조선왕릉이 이런 논란에 휩싸인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김포 장릉 문제를 계기로 문화재 관리에 더욱 신경을 써야하겠습니다. 문화유산은 우리세대만 향유하고 필요에따라 없앨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일선의 관련 공무원분들은 사명감과 함께 매우 적극적인 행정이 더욱더 필요로하겠습니다. 평소에 문화재보호에대해 해당 지역사회 주민들과의 대화와 연대를 발판삼았다면 지금같은 상황에 직면하지는 않았을것같은 생각이듭니다.
그리고 생활인으로서 꼭 이야기하고 싶은것은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은 일이 벌어진 분양을 받으신 분들에게는 조금의 불이익도 돌아가지 않게 조치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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