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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유적 방문/조선왕릉

[연재]조선왕릉 동구릉 혜릉 경종비 단의왕후(端懿王后) - 세계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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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릉 혜릉은 경종비 단의왕후(1686-1718)가 모셔진 능입니다. 단의왕후(端懿王后)는 경종이 세자시절에 세자빈의 신분으로 죽었고 경종이 등극한 이후 왕비로 올려졌습니다.

33살의 나이로 요절한 단의왕후는 심온(세종의 장인이자 태종이 아들 치세에 혹시나 방해가 될까 제거한 그분)의 12대손으로 병약했던 경종과 시어머니 장희빈때문에 고생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풍질(뇌졸중과 비슷한 질환)을 앓고있어 심신이 미약했다고합니다.

1718년(숙종 44년) 단의왕후의 혜릉은 처음에는 세자빈 신분으로 단장되었지만 1720년 경종이 즉위하면서 혜릉으로 추숭되었습니다.

 

단의왕후 심씨(端懿王后 沈氏, 1686년 7월 11일(음력 5월 21일) ~ 1718년 3월 8일(음력 2월 7일))

시호는 공효정목단의왕후(恭孝定穆端懿王后), 전호(殿號)는 영휘(永徽), 능호(陵號)는 혜릉(惠陵)

 

혜릉 (경종비 단의왕후)

혜릉은 조선 20대 경종의 첫번째 왕비 단의왕후 심씨의 능이다. 

단의왕후는 1696년(숙종 23년) 왕세자빈이 되었다. 그러나 왕비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1718년(숙종 44년)에 세자빈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 현재의 자리에 모셔졌다. 이 후 경종이 왕위에 오르자 단으왕후로 추존되고 능의 이름을 혜릉이라 하였다. 1722년(경종 2년)에 왕릉의 형식에 맞게 무석인, 난간석, 마웆석등을 새로 세웠다.

혜릉의 석물은 명릉(숙종 인현왕후 - 서오릉에 있습니다)의 제도에 따라 사실적으로 만들어져 문석인과 무석인이 사람의 크기와 같은것이 특징이다.

 

홍살문에 당도 촬영은  2019년 4월

 

판위(배위)앞에 돌이 하나 계단처럼 놓여져 있습니다.

 

 

홍살문 뒤쪽에 위치한것으로 최근에 새롭게 깔린것으로 보입니다. 처음에는 별도의 망료위가 있던곳일까 생각도 해보았는데 다른 능에서는 본기억이 없어 최근에 세워진것인지 원래있던걸 복원한건지 정확한 용도는 모르겠습니다.

 

향어로와 혜릉의 전반적인 모습

 

정자각과 2019년 복원된 수라간 정자각은 1993년에 복원되었습니다.

 

2019년 4월 방문시 복원된 수라간

 

역시 당시에 복원된 수복방

 

비각

 

경종대왕비 혜릉 비문 해설

 

조선국 단의왕후 혜릉의 비석

 

정자각 측면

 

정자각 신계와 어계

 

 

 

정자각의 제구

 

정자각에서 바라본 홍살문

 

정자각 후면의 신교

 

축문을 태우는 예감

 

산신에게 제사드리는 산신석

 

수복방의 옆면으로 뒷편의 난방을 했던 굴뚝이 보입니다

 

정자각

 

2014년 정자각과 석물들의 원경. 앞의 설명대로 숙종은 후일 자신도 들어갈 인현왕후의 명릉을 조성하면서 사람크기만한 석인들을 제작하라고 명했고 이는 백성들의 공역부담을 덜어주고자 했던 의도입니다.

세자빈묘의 형식에서 왕릉으로 추숭되면서 수릉처럼 무석인이 추가되었고 왕릉의 격식에 맞게 난간석과 망주석을 새로이 했습니다. 그래서 석물의 조성연대는 4년여로 크게 차이나지 않지만 시간차를 두고 있습니다. 혜릉 석물가운데 장명등은 현재 사라진 상태이고 주변에서 유구만 발견되었습니다. 언제 훼손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2019년 10월사진으로 여름에 태풍으로 무너져 사라진 혜릉의 홍살문으로 복원전의 모습을 볼수있습니다.

 

홍살문 초석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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