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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유적 방문/조선왕릉

[연재]조선왕릉 동구릉 경릉 헌종 효현왕후 효정왕후 삼연릉 - 세계문화유산

효명세자와 신정왕후의 아들인 헌종은 불과 여덟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르게됩니다. 당연히 수렴청정이 들어가게되지만 어머니인 신정왕후가 아닌 할머니이자 안동김씨였던 순원왕후가 하게됩니다. 이른바 세도정치기의 정치..

 

조선왕릉중 유일하게 삼연릉 형식의 경릉은 상석인 오른쪽부터 헌종 효현왕후 효정왕후의 순으로 되어있습니다.

사진출처 - 문화재청

 

헌종은 아버지인 효명세자를 닮아 매우 영특했다고합니다. 글도 일찍 깨우쳤고 실록에는 외모를 묘사할 정도의 미남이기도 했습니다. 거기에다 로맨틱 가이로 두번째 왕비 선정시에 보았지만 이루어지지 못한 여인을 후궁으로 들였던 경빈 김씨와의 로맨스는 유명해 그녀를 위해 현재도 남아있는 창덕궁의 낙선재를 만들기도했습니다.

 

헌종은 예술을 사랑하고 많은 작품을 소지했는데 추사의 제자인 소치 허련을 총애했고 제주에 유배중인 추사와도 교류가 있었습니다. 아버지인 효명세자의 스승이기도 했으니 인연이 깊다고 할수있습니다. 이로인해 낙선재에 새겨진 글씨들은 청나라의 대가들의 것들로 가득찬 공간이기도합니다. 낙선재 현판은 섭지선 편액은 추사의 스승인 옹방강의 글씨입니다.

 

사대부의 한옥처럼 단청을 칠하지 않은 낙선재는 헌종이 경빈김씨를 위해 만든 공간입니다. 이후에 이곳에는 순종의 계비였던 순정효황후가 1966년까지 살았고 마지막으로는 1989년까지 영친왕비인 이방자 여사가 기거하던 곳입니다.

 

 

헌종은 아버지 효명세자처럼 매우 젊은 나이인 23세에 죽었고 당시는 정신차려도 어려울 시절이었는데 더욱더 꼬이는 조선말기로 치닫게되었습니다.

 

헌종의 정비인 효현왕후는 안동김씨 일가로 16세의 어린나이로 죽었고 이후 간택한 효정왕후는 왕실 어른들의 선택이었습니다. 당시에 헌종도 자리에 있었는데 그가 좋아했던건 나중에 후궁으로 들인 경빈김씨였습니다. 여성편력이 많았던 헌종이지만 한여인에 대한 사랑을 엿볼수 있습니다.

 

방문당시 수복방 복원 공사중인 경릉 - 2019년 6월

 

경릉 홍살문과 정자각 전경

 

경릉 안내

 

향어로

 

정자각

 

 

정자각에서 바라본 홍살문 일직선상이 아닌데 조선왕릉은 지형에 따라 조금씩 변형을 주었습니다.

 

헌종은 고종때 대한제국 선포시 황제로 추숭되면서 제구는 황제색인 노란색으로 되어있습니다. 현재는 조선왕릉 모두 황색천으로 보호중이라 육안으로는 구별할수 없습니다 - 2014년 8월

 

정자각 우측면

 

멀리 보이는 경릉 능침의 석상.. 

 

홍살문과 향어로

 

경릉 비각과 표석

 

특이한건 대한제국 당시에 세워진 황제로 추숭된표석만 존재하는데 그이유는 이전에 조선시대 표석은 사라진게 아니라 그 표석의 표면을 갈아서 대한제국 당시의 표석이 쓰여졌기 때문입니다. 다른 왕릉의 표석보다 얇은 느낌을 줍니다.

 

융희 2년으로 순종당시에 세워진걸 볼수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