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릉 휘릉(徽陵)은 태조의 건원릉 좌측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곳의 주인공은 장렬왕후로 인조의 두번째 왕비입니다. 첫번째 왕비는 인열왕후로 소현세자의 친모입니다만 43세에 출산중 사망합니다. 중년의 인조가 총애하고 사극에서는 희대의 악녀로 많이 묘사되는 소용 조씨가 버티고 있었는데 출신이 미천한지라 왕비로 올라서지는 못하고 15세로 어린 장렬왕후가 계비로 앉습니다.
정자각 양옆에 익랑이 달려있는 휘릉 - 2019년 6월
병자호란 직후이고 나이차가 많아 딸을 내줄려는 양반들이 없어 어렵게 계비로 들였지만 당시 44세였던 인조는 장렬왕후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그냥 형식상의 부부였습니다. 인조 생전에는 소용 조씨의 눈치를 보고살았고 인조사후에는 안정되는듯했지만 어린 나이에 궐에들어와 대비가 되었기에 효종 효종비인 인선왕후 손자인 현종 손자비인 명성왕후 그리고 숙종의 첫번째 왕비인 인경왕후까지 6번의 상을 치르며 그 유명한 예송논쟁의 당사자가 되었습니다.
예송논쟁의 중심에 있던 송시열 초상
예송논쟁은 아들과 며느리 상중에 상복을 얼마나 입어야하는지에 대한 논쟁이었지만 정국 주도권을 좌지우지하는 서인과 남인의 당파싸움이었습니다. 이는 왕권과 신권의 대립이기도해 효종 국상때는 현종이 양보하며 참았지만 인선왕후때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며 서인의 영수 송시열과 대립합니다.
이런 와중에 난처한 입장은 역시 장렬왕후였습니다. 현종때는 후궁도 들이지 못하게했다는 대가쎈 손주며느리 명성왕후에게 눌려지냈습니다. 숙종때 들어서는 궁녀를 들였는데 역시 그유명한 장희빈입니다. 명성왕후는 장희빈을 내쫓았고 결국 명성왕후 사후에 다시 들였습니다. 자식도 없고 젊을때 앓던 풍증 후유증으로 노년에는 거동도 불편했던 삶을 살았습니다.
장렬왕후가 궁으로 들였던 희빈장씨의 대빈묘 현재는 우여곡절끝에 서오릉에 들어갔습니다. 숙종과 인현왕후와 죽어서도 같은 공간속에 있게되었습니다. 장희빈의 대빈묘 앞에서 학춤을 추면 남자친구가 생긴다면 속설이 돌아 젊은 여자들이 많이 간다고도 합니다... 2019년 5월
장렬왕후 휘릉 금천교와 홍살문 전경 - 2019년 6월
휘릉 인조비 장렬왕후 휘릉은 조선 16대 인조의 두번째 왕비 장렬왕후 조씨(1624-1688)의 능이다. 장렬왕후는 1638년 인조16년에 왕비가 되었고, 1659년 효종이 왕위에 오르자 대비가 되었다. 효종, 현종, 숙종, 대에까지 3대에 걸쳐 왕실의 어른으로 지냈다. 현종 대에 있었던 효종과 인선왕후의 국장 기간 중, 장렬왕후가 상복을 입을 기간을 두고 서인과 남인이 치열하게 대립하기도 하였다. 휘릉의 혼유석을 받치는 돌인 고석은 건원릉의 예에따라 다섯개를 두었고, 정자각은 정전 양 옆에 익랑을 덧붙인 것이 특이하다. |
휘릉 홍살문 향어로와 정자각 전경
휘릉 판위 - 조선시대에는 이곳에서 사배를 드린후에 정자각으로 향했습니다.
건원릉 왼편에 자리한 휘릉은 조선왕릉의 정자각의 변화를 볼수있는 곳입니다. 정자각 정전옆에 익랑이 있는걸 볼수있습니다. 현재 조선왕릉중 익랑을 볼수있는건 현종의 숭릉 경종의 의릉 인경왕후의 익릉입니다. 그외에 효종의 영릉이나 명종의 강릉 숙종의 명릉에도 익랑이 있었지만 현재는 사라졌습니다. 대략 숙종을 전후한 시기의 왕릉으로 생각하면됩니다.
숙종 전후 시기에 조성된 왕릉의 정자각에 보이는 익랑
정자각 측면
좀더 웅장한 정자각을 세운건 규모를 키우기위한 것이라보다는 재궁(梓宮)을 모시기위해 임시로 짓던 영악전(靈幄殿)을 정자각 안으로 흡수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공역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효종 영릉이나 명종 강릉은 배위청 기둥을 보면 3칸인것을 볼수있습니다. 대부분인 2칸이 있는곳은 익랑이 없었거나 후대에 고쳐진 것입니다.
휘릉에 처음간 2014년 8월... 정자각 기둥이 세개씩 놓여있는걸 볼수 있습니다. 기둥 하단의 흰색칠은 원래 상단부에 종이를 두르고 해충을 방지하는 것이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칠하는 것으로 바뀌었다고합니다.
정자각 우측 측면
정자각 좌측 측면
정자각 후면
정자각 후면 신교
정자각 잡상
축문을 태우던 예감
산신에게 제사지내는 산신석
정자각 익랑
정자각에서 바라본 홍살문
홍살문과 향어로
비각
조선국 장렬왕후 휘릉 표석
휘릉에 남아있는 우물인 어정터
휘릉 수복방터
휘릉의 능침 공간
아직 올라가보지 못해 아쉬움 가득.. 올해에는 문화재청 허가를 받고 올라가볼 생각이었는데 코로나로 전부 막혀버렸네요... 멀리서 올려본건 서오릉의 숙종비인 인경왕후 익릉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것이라 그런듯...
일평생 스스로 조심조심 살다간 인조의 두번째 왕비 장렬왕후의 휘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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