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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유적 방문/조선왕릉

[연재]조선왕릉 동구릉 목릉 선조 - 지금도 비난을 많이 받고있는 임금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사극과 역사에 관심많은 분들이 암군으로 꼽는 조선시대 임금은 선조와 인조가 있습니다. 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고생도 많이 했지만 전체를 끌고가는 군주로서의 판단이나 태도가 백성들의 호응을 얻지못하고 상상할수 없는 온갖 고초를 더욱 증폭시켜 겪게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 문정왕후에 휘둘리던 명종의 뒤를 이은 선조는 방계로서 원래는 왕위 계승과는 크게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성군시절 선조는 나름대로 명민함을 인정받아 후사가 없는 명종에 이어 중종의 손자가운데 선택되었고 서예도 능통해 지금도 많이 찾아볼수 있습니다. 사림의 당쟁이 심화되는 시기이기는 했지만 아마 임진왜란이 아니었다면 성군까지는 아니더라도 평범한(?) 왕생활을 이어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조의 어필 병풍 

 

 

아래는 선조의 초상화로 알려졌지만 실제모습인지는 알수 없습니다. 선조의 모습을본 윤탁연이 가지고있던 것으로 곤룡포를 입지않아 임진왜란 중으로 보입니다. 1974년 발견당시 전문가들의 견해는 측면으로 비스듬한 자세나 그림자체의 필치가 좋지않고 기록도 전해진것이 없어 부정적이었습니다.

 

 

이황 이이 조식 류성룡 이항복 이덕형 정철 성혼 기대승등등 한명한명 대단한 성리학자들이 동시대에 살아있던 시절이고 임진왜란 당시에는 우리역사 최고의 영웅인 이순신이 등장하기도했던 시절입니다. 목릉성세라고 불리기도 했으니 난세까지 겹쳐 동시에 많은 인물들이 쏟아지던 시절이기도했습니다.

 

선조의 목릉은 의인왕후가 죽으면서 조성된 유릉(裕陵)이 있었고 선조는 현재 동구릉 헌종의 경릉자리에 있었습니다. 이후에 1630년에 이곳으로 옮기면서 동원이강릉이 되었고 목릉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1632년에 한참 어린나이로 궐에 들어와 파란만장하게 살았던 인목왕후가 자리잡으며 현재 조선왕릉중 유일하게 세개의 능침을 가진 왕릉이 되었습니다.

 

인목왕후 능침부근에서 바라본 선조와 의인왕후 능침

 

목릉에 제일먼저 안치된 의인왕후의 능침 전경

 

 

조선왕릉중 헌종 경릉의 삼연릉이나 순종의 유릉도 삼인합장릉으로 특이한 형태인데 이곳도 그렇게 볼수있습니다.

 

 

건원릉 옆에있는 목릉 진입공간 금천교

 

목릉(穆陵)

 

목릉설명

목릉은 조선 14대 선조와 첫번째부인 의인왕후 박씨 두번째 왕비 인목왕후 김씨의 능이다. 정자각 쪽에서 바라보았을때, 왼쪽 언덕에 선조의능, 가운데 언덕에 의인왕후의 능, 오른쪽 언덕에 인목왕후의 능이있다.

선조는 덕흥대원군의 아들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후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큰 성과는 없었다. 그러나 선조대에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나와 목릉성세라고 부르기도했다.

의인왕후는 1569년 선조2년에 왕비가되어 정유재란이 끝난 후 세상을 떠나목릉에 처음 모셔졌다. 인목왕후는 1602년 선조 35년에 왕비가 되었고, 1623년에 일어난 인조반정을 대비의 자격으로 허락하기도 하였다.

목릉의 정자각은 조선왕릉중 유일하게 다포형식의 건물로 보물 제1743호로 지정되었다.

*다포형식: 기둥 위쪽 이외에 기둥 사이에도 공포(처마끝에 무게를 받치기위하여 기둥머리에 짜맞추어 댄 나무 쪽)를 배열한 건축양식

 

목릉 홍살문 - 2019년 11월

 

목릉의 판위(배위)

 

목릉은 문종의 현릉을 지나 건원릉 가기직전 오른쪽길로 들어서면 나옵니다. 세개의 능침이 있기에 세공간을 이어주는 기나긴 신로를 볼수 있습니다. 선조와 의인왕후 인목왕후의 능침 석물은 임진왜란으로 장인들이 많이 줄어 정묘함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하고있는데 그가운데 선조의 능침 석물들은 거대하게 조성하던 당시의 흐름으로 3미터 높이의 문무석인을 볼수있습니다. 

 

 

 

목릉 정자각

 

 

목릉 비각

 

 

 

목릉 정자각 측면

정자각은 동원이강릉의 경우 중간에 세워지는데 목릉은 선조의 능침을 향해 세워져있습니다.

 

정자각 후면과 신교 신도 신계

 

 

 

 

선조 능의 산신석

 

정자각과 연결된 의인왕후의 능침과 신도

 

선조의 능침 전경

 

목릉에서 볼수있는 특이한것은 앞서말한 길게 연결된 신로와 세개의 능침 정자각 지붕의 다포양식이있고 인목왕후 능침앞에는 현재 남은 조선왕릉중 유일하게 가정자각터가 남아있기도합니다. 정자각은 능에 하나만 존재하는데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에는 동원이강릉의 경우는 가정자각을 세워놓았다 삼년상후에 해체를 합니다. 세개의 능침이있는 목릉을 동원삼강릉(同原三岡陵)이라 부르기도하고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이라 부르기도하는데 여기에서 이강릉의 이는 한자로 다를이를 쓰기에 의미상 문제 없습니다.

 

목릉은 세개의 능침이 있기에 가장 넓은 공간을 차지한 왕릉이기도합니다.

다음편에는 선조의 능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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