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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유적 방문/조선왕릉

[연재]동구릉 문조익황제 수릉 - 효명세자와 조대비 신정왕후의 안식처

2-4 동구릉 수릉

수릉에는 효명세자로 널리 알려진 문조익황제와 고종을 후계자로 지목한 조대비 신정왕후의 합장릉입니다. 몇해전 박보검이 주연한 구르미 그린 달빛으로 조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문예에 능통하고 궁중무용등 예악에도 매우 재능을 보였지만 스물두살에 죽은 천재형 세자로 정조사후 순조대에 안동김씨 세도가문의 득세로 약해진 왕권을 다시 돌리기위해 아버지 순조대신 대리청정을 하면서 맞서던 인물로 소현세자나 정조 고종처럼 독살설이 있기도하지만 현재는 과로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조대비가 어린 고종을 세우고 대리청정시기에 추진한 경복궁 복원등은 효명세자가 대리청정기간에 왕권을 강화하기위해 나아가던 것들이기도 했습니다.

 

동구릉 재실을 지나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것이 수릉입니다. 원래는 경종의 의릉 부근에 있었지만 양주 용마산으로 옮겨졌다 아버지인 순조 인릉이 파주 장릉옆에서 헌릉옆으로 천장될때 다시 천봉론이 생기며 현재의 동구릉 자리로 옮겨왔습니다. 세자에서 아들 헌종때에 추존왕으로 고종때에 대한제국 선포시에 다시 황제로 추숭된 효명세자의 사후 인생도 살아있을때처럼 복잡한 양상입니다.

효명세자의 수릉이 들어오면서 이곳은 동칠릉에서 동구릉으로 동쪽의 아홉개릉으로 종결되었습니다. 일본 군인들과 낭인들에게 시해당한 명성왕후가 한글로 같은 이름인 현종과 현종비 명성왕후의 숭릉옆에 조성되다 말았으니 아마도 이후 고종까지 들어왔다면 열기의 능이 될수도 있었습니다. 서오릉이나 서삼릉은 다섯기와 세기가 모여있어 지어진 이름입니다. 물론 중간중간 들어서고 나가면서 이름이 변경되었습니다. 아마 현재의 융건릉이나 여주 영녕릉에 한기가 더들어섰었다면 남삼릉으로 불리었겠지요. 조선시대에는 짝수는 불길하다하여 짝수로 능이있어도 홀수로 이름을 붙여 불렀다고합니다.

 

 

동구릉 수릉 전경

 

홍살문밖에 위치한 배위(조심스럽게 복원 잘못으로 추정해봅니다)

 

수복방터(2019년 4월에 촬영한모습 - 현재는 복원이 되었습니다)

 

수복방은 능을 관리하던 능지기가 임시로 머물렀던 건축물입니다. 보통 두명이 같이 근무하면 한명은 능침위에 있었습니다. 수릉 수복방은 2016년 발굴 조사 결과 마루 방 부엌 형태의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건축물임이 확인되었습니다. 현재는 복원이 되어있습니다. 11월말에 동구릉에 갔을때 해설사님의 설명으로는 아무래도 내방객이 적은 겨울철에 복원이나 기타 필요한 공사들을 다른 계절보다 많이 한다고합니다.

 

수복방 복원공사중인 수릉(2019년 11월) 아직 단청을 칠하지 않은 모습을 볼수있습니다.

 

정자각 정면

 

정자각 문의 문양과 문고리

 

정자각 내부의 제구들.. 최근 사진은 황색천으로 제구들을 보호하는 의미로 쌓아두었는데 상단 영상을 보면 천으로 보호하기 전의 제구의 색이 황색임을 볼수있습니다. 수릉은 이곳에 안장된 효명세자가 헌종 즉위후 익종으로 추존되고 다시 고종때에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문조익황제로 추존됩니다. 그래서 제구색이 황제를 의미하는 황색으로 만들어져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제후국의 왕을 상징하는 붉은색의 제구들을 사용합니다.

정자각에서 능침을 바라보면 봉분과 석물들이 보이는 곳도 있고 없는곳도있는데 수릉은 엎드리면 보이는 곳입니다.

 

 

비정형의 박석들이 깔린 수릉의 향로와 어로. 박석은 울퉁불퉁하고 반듯하지 않은 모양이지만 햇빛이 반사되지 않아 눈이 부시지 않고 아래를 조심조심 바라보면서 걸어가란 의미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가장 높게솟은 향로는 향을 들고가는 길로 종묘에서 시작해 제실에서 보관하던 향을 이곳까지 들고와 정자각까지 혼을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기에 향을든 제관과 혼들이 다니는 길로 볼수있습니다. 옆의 조금 낮은길은 어로로 말그대로 임금이 지나다니는 길입니다.

왕릉 답사시에는 향로보다는 어로나 다른길로 다니시는게 예의라 할수있습니다.

 

정자각 동쪽에 있는 신계와 어계 신계는 향로처럼 혼이 다니는 길이고 어계는 왕이 오르는 계단입니다. 계단을 오를때는 오른발먼저 그리고 왼발형태로 한계단에 두발을 모두올리고 하나씩 올라갑니다.

 

정자각 서쪽의 서계 제관이 이계단으로 내려와 예감에서 축문을 태우고 이쪽 방향에 있던 수라간에서 제사용 음식을 나를때 사용됩니다.

 

정자각 동쪽

 

방문한날의 기상에 따라 사진이 다르게 나왔네요..

 

정자각 서쪽

 

정자각 사이로 보이는 비각

 

제례후 축문을 태우는 예감 정자각 서쪽에 위치합니다.

 

정자각 동쪽에 자리하는 산신석으로 산신에게 제사지내는 곳

 

정자각 후면에는 능침으로 이어지는 신로가있습니다.

 

수릉에는 두개의 표석이 있습니다. 하나는 효명세자의 아들이 헌종으로 등극하면서 익종으로 추존될때 세워진 것이고 또하나는 고종때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황제국이 되면서 문조로 추존하면서 세워진 것입니다.

 

 

 

익종과 신정왕후 표석

 

 

 

문조익황제로 추존한 고종이 세운 표석

 

뒷면 비문에 보면 소자라고 쓰여진걸 볼수있는데 고종의 친필입니다.

 

문종의 현릉 방향에서 보는 수릉의 능침 공간

 

수릉의 석인은 조성된 연대가 다릅니다. 문석인은 효명세자가 죽었을때 의릉옆에 자리할때 세워진것이고 이후 용마산으로 천장 그리고다시 이곳으로 천장될때 옮겨진것이고 무석인은 용마산으로 천장할때 만들어졌고 이곳으로 옮겨진것입니다.

 

 

 

금관조복을 입은 문석인상으로 융건릉과 이곳에 있습니다.

 

 

 

팔작지붕에 사각형태의 장명등

 

수릉은 합장릉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한것처럼 문조로 추존된 효명세자와 조대비 신정왕후가 주인공입니다. 보통 왕이 오른쪽(무덤에 묻힌 왕의 시선중심으로 바라보는 방향에서는 왼쪽입니다.)에 자리하지만 수릉은 반대로 되어있습니다. 신정왕후가 상석인 오른쪽에 모셔지고 효명세자는 왼쪽에 자리합니다. 조선왕릉은 죽음 당시의 품계나 신분이 더 중시됨을 볼수있습니다.

비슷한 예로 서오릉의 의경세자의 경릉은 왕비가 오른쪽에 세자신분으로 죽은 의경세자는 왼쪽에있고 왕비릉은 무석인이 있지만 세자의 신분으로 죽은 능은 무석인이 없습니다. (방향은 바라보는 시선에서는 모두 반대방향입니다. 왕릉은 왕을 높이는 의미에서 조선시대에는 망자의 시선을 중심으로 기록되어있습니다)

수릉의 능침에는 혼유석이 하나만있는데 조선후기의 특징을 볼수있습니다. 조선전기의 합장릉은 세종대왕의 영릉처럼 혼유석이 왕과 왕비 각각따로 만들었으나 후기에는 줄여졌습니다. 왕릉을 만드는 것은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공사(수천명에서 만여명까지 공역에 동원되는 대규모 공사였습니다)였기에 조금씩 줄여나가는 경향이 있기도했고 조성당시의 주변환경이나 여러가지 여건 그리고 정치적 이해에따라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능침공간은 허가없이 올라가볼수 없습니다. 조선왕릉에 처음가던 시절에는 납득을 못했지만 유물보존 차원이고 조선시대에도 능침은 왕도 함부로 올라가지 못하는 공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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