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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유적 방문/조선왕릉

[연재] 조선 왕릉 답사 시작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답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조선왕릉 답사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한두번 소풍으로 가봤음직한 조선왕릉은 화려한 건축물도 없고 세계 각지의 왕릉이 당한것처럼 도굴범의 소굴이 될만한 부장품도 나오지 않고 애초에 묻히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조선왕릉은 절제미라고 할수밖에 없는 왕릉치고는 소박한 모양새이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보존된 자연환경과 남한에 있는 40기의 왕릉이 온전한 모습(훼손이 있긴 했지만 복원이 가능한 정도)으로 지금까지 육백여년의 시간차를 두고 내려져온것 그리고 전통의 제향의식이 아직도 거행된다는 점이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절제미는 지금까지 온전하게 지켜져내려온 조상의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아주 꼼꼼하게 기록된 의궤는 원형보존이라는 유네스코의 조건에 완벽하게 물적증거를 제시한것입니다. 

왕릉은 지금처럼 즐길거리가 많고 이동이 자유로운 현재에 그리 매력적인 공간이 아닐수 있습니다. 하지만 왕릉마다 역사 스토리를 지니고있고 건축과 당대 예술이 집약된 공간이기에 육백여년의 시간차를 가진 차이들을 비교해볼수 있습니다. 지금은 왕릉에 가면 자주 초등학생 답사단을 만날수있고 주변 주민들은 도심에서 만나는 자연공간이자 산책공간으로 매우 쾌적하게 만나볼수 있습니다. 역사와 휴식을 가져갈수 있는 공간이기에 기회가 될때마다 왕릉에 가고있습니다.

 

구리 동구릉 태조 이성계 건원릉 능침의 무석인 시점으로본 정자각



들어가는글

열살무렵 개구쟁이 아들 방학때 뜬금없이 역사탐방 가야한다고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후로 그동안 전혀 안중에도 없던 궁궐과 조선왕릉에 다녀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전까지 궁궐이나 왕릉은 옆으로 스쳐지나가던 공간으로 자세히 들여다본 기억이 전혀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궁궐은 그래도 손에 꼽을정도였지만 나들이 삼아 가기도 했었는데 조선 왕릉은 전혀 가본적이 없던 공간이었습니다. 수도권에서 학창시절을 보냈기에 몇번 이야기는 있었지만 이상하게 비껴가 못가본 곳...

 

깨방정 떨던 열살 무렵의 아들
창덕궁 인정전 - 사극에 큰일이 있기전처럼 날벼락치고 폭우가 쏟아지던날 방문 - 표정이 굳은 아들



아마 대부분이 왕릉은 어릴때 학교에서 소풍으로 갔던것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찾아가는 공간은 아닐터.. 지금은 왕릉에 가면 단체로 역사공부하러 다니는 초등학생들을 자주 볼수있지만... 주변 사람들은 왕릉에 간다하면 묘지에 뭐하러 그것도 이미 망한 조선시대 왕들의 무덤까지 찾아갈 필요가 있냐며..

 



1-1. 처음 간곳은 서울 한복판에 위치한 선정릉

여름에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과 종묘 수원화성을 탐방한이후로 부쩍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게 조선왕릉으로 겨울이 지나고 처음으로 도심지에있어 편하게 갈수있는 선정릉을 갔습니다. 하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한 왕릉으로 피라밋이나 진시황릉까진 아니더라도 거대한 규모를 생각했다면 커다란 오산이었습니다. 당시만해도 왕릉의 권역이 엄청나게 축소된건지도 몰랐기에 일반적인 기준으로 당연히 작은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거대한 왕릉이라는 생각이 크게 작용했고 당시 선릉은 정자각과 이어진 신로가 복원 공사중이어서 가림막으로 가려져있었던데다 그나마 선릉은 옆에서라도 볼수있었건만 관람 목적으로는 조선왕릉의 하이라이트라 할수있는 능침은 마음대로 구경할 수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초딩아들 데리고 궁궐처럼 이것저것 볼것이 있는것도 아닌 산책로를 걷는것은 말은 안하고 있어도 따분한 느낌을 절절하게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왕릉답사는 더이상 진행되지 않았는데...

2014년 선정릉 답사 영상

 

강남 한복판의 성종의 선릉 석인들 분하게도 임진왜란 당시 파헤쳐진곳...
서너살무렵 소풍삼아 찾아갔던 경복궁 경회루 앞에서

 



1-2. 우리가족 왕릉답사에 불을 지핀 헌인릉


그렇지만 계속 역사답사는 이어졌기에 여름에 좋아한는 정조의 융건릉을 다녀온후 사극에 많이 나온 태종 이방원을 떠올리며 헌인릉에 갔습니다. 선정릉에 처음 갔을때보다는 크기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어 많이 적응했지만 규모나 화려함을 따진다면 여전히 따분한 조선 왕릉이었는데 까다롭다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게 무엇 때문일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정조때 조성된 곳으로 사도세자의 현륭원에서 고종때 장조로 추존되면서 융릉으로 높여짐 정자각과 대체로 일치하는 능침이 비껴가 있습니다. 뒤주속처럼 답답하지 말라는 정조의 효심이 들어간 공간.

 

화성행궁 화령전에 모셔진 정조의 어진 - 다만 실제로 보고 그린게 아닌 상상도 한국전쟁후에 불에타지만 않았어도 최고의 화원 김홍도 작품을 볼수있었을...

 

정조의 아들인 순조의 인릉 정자각

 

물론 나중에 알게된거지만 세종의 영릉 석물들이 많이 사용된 순조의 인릉에 들렀다가 태종의 헌릉을 보고 내려오는 순간 만난 이곳을 관리하시던 나이 지긋한 어르신으로 능침을 보고 내려오던 아들을 부르시더니 갑자기 헌릉과 인릉의 정자각 제구의 색을 물어보셨습니다.(현재는 정자각 제구들이 모두 황색천으로 가리워져있어 구분할수 없습니다) 저걸 왜물어보시나하면서 어리둥절한 사람은 나와 아내였고 아들은 놀랍게도 노란색과 빨간색이라고 구분해서 대답을 했습니다. 재차 이유가 뭐냐고 물어보셨는데 거기에는 대답을 못했습니다. 

 

 순조 인릉 정자각의 제구 노란색으로 황제를 의미 고종이 황제국으로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추숭되었습니다.

 

순조 인릉 방문 영상-2014년


이후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부터 선대로 올라가는 족보를 읊어가면서 세세하게 설명을 해주셨는데 와이 시리즈(얼마전 아들에게 이상적의 초상화를 보여주며 누군지 아냐고 물어봤더니 추사가 세한도 그림준 사람이라고 대답해 어디서 봤냐고 했더니 초딩때 와이시리즈에서 청나라에서 진귀한 책을 구해 제주에 유배중인 추사에게 가져다 주는 장면을 봤다고.. 순간 띵해진 아빠... 이런것까지! 어릴때 역사를 매우 좋아했지만 국정교과서와 우연히 접한 위인전이 전부였던 상식 기준으로는 놀라웠던 순간..)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물론이고 단순 교양서로는 어른책을 뺨치는 어린이용 역사서들을 도서관에서 두루 섭렵한 아들은 어르신과 왕들의 족보를 읊어가며 이야기를 이어나갔습니다. 이후부터 조선왕릉의 매우 세심함이 스며든 디테일의 가치에 눈뜨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거기같은 왕릉의 모습이지만 모두 스토리가 제각각이었고 당대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자연까지 오롯이 지니고 있는 공간임을 자각하던 순간이었습니다. 다음에 간곳은 신들의 정원인 동구릉..

여주 세종대왕 영릉 - 원래는 태종의 헌릉옆에 있었지만 이곳으로 천장

 

1-3 남한에서 최초의 조선왕릉 흔적은 어디인가 했더니 청계천에?

처음세워진 조선왕릉은 현재 개성에 있는 제릉으로 이성계의 첫째 부인 신의고황후 한씨의 능입니다. 개성에 있어 가볼수없는 현재로선 가끔 인터넷에서 사진으로만 확인할수 있는데 산림이 별로 없는 북한의 산을 볼수있습니다. 조선왕릉은 고려시대 공민왕릉을 모범으로 삼았고 불교적 양식들이 남아있는 조선왕릉 초기의 모습을 볼수있습니다. 조선왕릉은 모두 42기가 있는데 남한에 40기 북한에 2기가 있습니다. 조선시대 왕은 27명인데 왜 42기의 왕릉이 있는지 의문이 있을수 있는데 왕과 왕후 모두 같은 대우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왕과 왕후가 꼭 함께 있는것이 아니어서 사연많은 태릉처럼 왕후의 능만 있는것들도 많고 인조의 아버지였던 김포장릉처럼 생전에는 왕이 아니었지만 사후 추존된 왕도 같은 대우를 해주었기 때문에 42기의 왕릉이 있습니다.

 

청계천 방통교 석재로 사용된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 병풍석 - 불교적 소재들을 볼수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가볼수있는 왕릉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만들어진건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을 떠올리게됩니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는게 태조보다 먼저 떠난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입니다. 사극에서 숱하게 다뤘기에 조금 역사 지식이 있는 분이라면 태종과 앙숙이던 말년의 신덕왕후였기에 곱게놔둘 이방원이 아니었습니다. 원래 현재의 영국대사관자리의 정동에 있던 정릉은 태조 이성계가 사후에 같이 들어갈려고 생각했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권력때문에 발생한 골육간의 상쟁에 태조는 고향이자 본인 인생의 절정기를 보낸 북방에 묻히길 원했는데 태종은 현재의 구리 동구릉에 모시게되었고 이전에 있던 정릉은 현재의 정릉동으로 옮기고 홍수가 발생했을때 왕릉은 해체해 광통교 밑에 깔았습니다. 지금도 청계천에 가면 당시의 흔적을 볼수있습니다. 발아래 밟고 가라는 태종의 복수심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하긴 아들 세종의 치세에 방해가 될까 사돈인 세종의 장인을 억울하게 죽인 태종이니 이정도야...)

 

관련링크
추사 김정희와 이상적 이야기 - https://noleter.com/223
동구릉 건원릉 - https://noleter.com/238 https://noleter.com/239 https://noleter.com/240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조선왕릉 - 태조 이성계 건원릉 능침

건원릉 능침의 무석인 옆모습.. 앞서 이야기한것처럼 건원릉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능이란 점에서 커다란 상징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조선왕릉의 표본이 되는건 고려의 공민왕릉이라고 볼수있습니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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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 건원릉 정자각과 소전대 비각 - 구리 동구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정자각에서 바라본 능침으로 정자각에서는 제향을 지내는 공간입니다. 몇년전까지는 제구들을 황색천으로 덮어두지 않아 제구색으로 추존황제와 아닌걸 구분하기도 했었는데 지금은 모두 황색 천으로 덮어두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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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정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동구릉 태조 이성계 건원릉 금천교에서 정자각까지

조선왕릉은 42기중 개성에 있는 후릉과 제릉을 제외하고 모두 보존상태가 좋아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물론 문제를 안고있는 곳도 있었지만 지금도 개선이 되고있다고 생각합니다. 능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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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고 높은 정신세계를 펼쳐보인 추사 김정희 세한도 - 국보 180호

추사 김정희의 아주 유명한 그림인 세한도를 보면 의외로 어떻게 이런 그림이 국보씩이나? 하는 의문이 들수 있습니다. 세세히 뜯어보면 가운데 배치된 집은 엉성한건 둘째치고 원근법에도 어긋나는데 아무리 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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