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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유적 방문/조선왕릉

신들의 정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동구릉 태조 이성계 건원릉 금천교에서 정자각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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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릉은 42기중 개성에 있는 후릉과 제릉을 제외하고 모두 보존상태가 좋아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물론 문제를 안고있는 곳도 있었지만 지금도 개선이 되고있다고 생각합니다. 능역에 이것저것 많이 들어선 서삼릉이있고 중앙정보부 건물이 있었고 연못에 잉어가 노니는데다 정체불명의 다리까지 있었던 의릉이나 국가대표 선수촌이 있던 태릉은 지금은 이전으로 많이 되돌아갔습니다.

조선왕릉중에 제일 많이 모여있는 곳은 동구릉입니다. 아홉개의 능이 모여있고 무엇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健元陵)이 있는 곳이라 최초라는 상징성까지 지닌곳입니다. 조선왕릉중 제일 먼저 만들어진 것은 개성에 있는 이성계의 처인 신의고왕후의 제릉으로 지금은 가볼수 없는곳이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사진 몇장으로 존재만 알수있습니다. 이후 계비인 신덕왕후의 정릉이 있었지만 태종 이방원에의해 분해되어 지금은 청계천 방통교밑에 석물들이 몇개의 조각으로 남아있습니다. 현재 정릉동에 있는 정릉은 이후에 다시 세워진 것으로 먼훗날인 현종10년 1699년 송시열에 의해 다시 세워졌습니다.

결국 지금 볼수있는 가장 오래된 조선왕릉은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이라 할수있습니다. 원래는 신덕왕후와 같이 묻히길 원했지만 태종과 앙숙이던 신덕왕후인지라 그대로 따르지않고 현재의 동구릉 자리로 정했습니다. 조선왕릉은 각각의 스토리를 지닌곳으로 눈으로 보기에는 비슷하게 생겼지만 세세하게 들어가면 당시의 권력구도나 사회상황에 따라서 가지고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지닌 공간입니다. 아이들과 같이 답사한다면 살아있는 역사공부의 장소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1408년 5월24일 승하한후 6월28일 양주 검암산 현재의 구리인 이곳을 능지로 정했습니다. 명당중에 명당으로 꼽히는 이곳은 태종의 책사라 할수있는 하륜이 직접눈으로 보고 정한곳입니다.

 

금천교에서 바라본 홍살문과 정자각으로 금천교는 왕릉을 다니다보면 사라진 곳들도 있습니다. 궁궐처럼 왕릉도 왕의 영역이라고 볼수있기에 금천교를 만들어 경계로 삼았습니다. 

 

금천교를 지나면 홍살문을 만나게됩니다. 홍살문은 신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을 표시하는것으로 조선시대에는 왕릉에 함부로 들어갈수 없었다고하는데 홍살문을 지나 네번절을 하고 들어가야했습니다. 이는 제향하러 온 왕도 마찬가지의 예법이었습니다.

 

홍살문 하단 오랜 세월을 견딘 기둥의 받침석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정자각으로 향하는 향어로의 박석 왼쪽 조금 위로 솟은 향로는 향을 들고가는 길로 영혼이 지나는 길입니다. 오른쪽 조금 낮은길은 어로로 왕이 다니는 길입니다. 조선왕릉 방문시 향로로는 다니지않고 어로를 통해 다니세요! 검색하다보면 참도로 표기된 것들도 볼수있는데 몇년전부터 향어로로 바뀌었습니다. 왕조실록이나 의궤에는 향어로로 기록되어있고 참도는 일본 신사에서 쓰이는 용어라고 합니다. 일제강점기때부터 이 용어가 빈번하게 쓰이기 시작했다고합니다.

 

배위 혹은 판위로 부르는 공간으로 홍살문 바로 옆에 있습니다. 이곳에서 네번 절하고 들어갔습니다.

 

향어로를 걷다보면 오른쪽에 자그만한 건물이 보입니다. 수복방이라부르며 릉에 따라 소실되어 터만 남은곳도 있습니다. 능지기가 머물며 이곳을 지키는 곳입니다.

 

제향을 지내는 정자각(丁字閣)입니다.  丁자처럼 생겨 정자각이라 부릅니다. 왕릉은 사대부의 묘처럼 봉분앞에서 제사를 지내는것이 아니고 능상의 아래에 있는 정자각에서 제향을 지냅니다. 정자각의 형태를 유일하게 벗어난건 홍유릉이 있는데 일자형의 침전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명황릉을 참고해서 만들긴했지만 침전의 형태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습니다. 황릉을 참고했다는 설이 크게 다가왔었는데 고종의 홍릉 조성당시의 발언들이 나오면서 침전이 국조오례의에 따라서 만들어진 형태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건원릉의 정자각은 보물 1741호로 지정되어있습니다.

 

정자각에서 바라본 능침과 비각

 

정자각에 올라가는 계단은 보통 두가지가 있습니다. 좀더 신경써서 만든것이 신이 다니는 신계이고 옆에 계단만 있는것은 왕이 오르던 어계입니다. 건원릉은 상징성을 지니는 왕릉이나 현재의 제향시에도 가장 많은 인원이 모인다고합니다. 조선시대에도 마찬가지 였을것으로 보이는데 나무로 만든 목계가 신계옆에 있습니다. 이곳은 주로 신하들이 오르던 곳입니다. 계단을 오를때는 오른발은 먼저딛고 왼발을 올린다음 순서를 반복하며 올라갑니다.

 

정자각 서편에서 수라간이 있습니다. 실제 요리를 하던 공간은 아니고 제향에 쓰이는 음식은 제실에서 만들어지고 능의 원찰에서 만들어지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수라간은 임시보관과 차가워지지 말라고 뎁히는 정도의 공간이었습니다. 정자각 동쪽의 계단은 수라간에서 음식을 나르던 공간이었습니다. 가끔 왕릉에 가면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동입서출이나 제향음식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하는 이야기들을 아이들에게 하기도 하는데 실제 당시에 그렇게 했는지는 근거없는 것들도 많아 가려서 들어야.. 이날 이야기해주신 해설사님도 풍수관련 일하시는 분들이 들을만한 이야기도 있지만 근거없는 것들이 상당수여서 잘가려야 한다고 말씀하시기도...

 

다음에는 정자각과 비각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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