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실학자 성호 이익 선생묘(李瀷先生墓) - 경기도 안산시 일동

Posted by 놀이터 추억보관소
2015.05.09 18:00 안산이야기/성호이익과 실학

성호 이익 선생은 1681년 숙종7년에 아버지 이하진의 유배지에서 출생한다

평안도 운산이었는데 기구한 그의 일생이 시작된것은 이듬해 55세의 아버지는 그만 세상을 등졌고 원래 북인이었던 성호선생의 집안은 광해군대를 거쳐 인조때 기울기 시작했는데 이후 남인계열로 편입되었고 제일 유명한 학자는 반계수록을 저술한 유형원으로 외가쪽으로 6촌 당숙지간 한시대를 풍미하던 학자들을 배출한 곳 하지만 성호선생과 학문적인 영향은 많았겠지만 직접교류는 거의 없었다고 전해짐..


성호선생은 스물두살 터울의 형인 이잠에게서 공부를 배웠지만 과거길과 인연이 없었는데 이유는 성호이익이 26세될때 아버지처럼 따른 형님이 서인 중신의 잘못을 숙종에게 상소했지만 오히려 역적으로 몰려 장형을 받으며 죽었고 성호선생은 이일이 있기전 일년전에 과거에 응시했지만 답지에 적힌 이름이 잘못되었단 것을 이유로 2차시험을 볼수 없었는데...


이후로 과거길은 접어두고 학문에만 전념 조선후기 경직된 성리학적 세계관 속에서 당쟁의 폐해가 심하고 직접적인 피해를 봤던 사람으로서 실사구시의 학풍을 이어갔으며 평생 벼슬살이없이 학문에만 전념했고 이익의 수제자로는 동사강목을 저술한 안정복과 개혁적인 권철신은 들수있는데 이들은 좌우파로 분류되어 보수파와 개혁파로 갈리었고 서학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취했던 이익에비해 권철신은 적극적으로 천주교신자가 되기도했다. 그외에도 윤동규 신후담등이있고 이익 선생의 학문은 이후에는 이가환 이중환 이승훈에 이어 정약용도 학문적 성취와 사상을 매우 존경하고 높이 평가하며 영향을 받았다.


이익 선생은 이후 학문의 높음을 인정해 벼슬자리를 권고받기도 했지만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고 영조는 첨지중추부사에 제수했고 사후 자헌대부 이조판서에 추증 1763년 83세로 사망


유형원 이익 정약용으로 이어지는 조선후기 실학이라는 흐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학자로서 실학자라는 부류로 부르는것은 잘못된 것이란 견해도 있습니다. 도올 김용옥은 최한기의 기론을 설명하기위한 저술인 '독기학설'에서 이런 견해를 밝혔는데 실학이라는 흐름은 분명하게 존재했지만 실학자라고 분류하는것은 잘못이라는설.. 실학자들이 조명된건 정인보가 정약용의 여유당전서를 발간한 1930년대 일제시대였는데 이당시에 국학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면서 최남선 문일평등이 실학이라는 체계화된 개념 틀속에 이들을 넣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즉 당대에는 성리학이라던가 이런 개념으로 실학이라는 학파가 있는것은 아니었다는 뜻.

성호 이익선생 영정 - 안산 성호기념관 2010년

 

성호 선생이 학문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선친인 이하진이 청에 갔다 귀국할때 청황제가 하사한 궤사은으로 수천권의 서적을 가져왔다고 하는데 후일 안산 첨성리(瞻星里 현재 안산 일동) 성호장에서 평생동안 서책에 묻혀 살수있었던 이유이고 검소한 생활을 했는데 의학에도 조예가 있었지만 검소하게 생활하고 소식을 실천한것이 어릴때 병약했던 신체를 다스리는데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고 볼수있다.

 

2008년 성호문화제에서 콩나물 키우기 실습중 - 아들 꼬꼬마 시절

지금은 학술대회만 이곳에서 하고 문화제 행사는 안산 호수공원에서..

 

특히 콩을 장려했던 성호선생은 지금도 안산에서 성호문화제를 열때면 맷돌로 콩을 갈거나 하는 행사를 재연을 하곤하는데 이는 당시 과도한 당쟁과 그 무기로 사용된 성리학의 이념적 측면이 과도하게 부각된것에 대한 반감으로 형성된 당시의 실학의 흐름을 엿볼수 있는 실증적인 대목으로 성호선생은 지금으로선 건강식품이지만 당시 굶주리던 백성들의 식생활 개선을 위해 권장 그리고 삼두회란 것이 내려져오는데 이것은 가족을 챙기던 성호선생이 한달에 한번정도 모이면서 콩밥에 콩나물 무침 그리고 두부로 식사를 했다고 해서 내려오는데..

 

현재로서 아쉬운건 당시 많은 학문적 교류가 있었던 성호장이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았다는점.. 이익선생의 호가 성호인 이유는 당시 살던 성호장에서 유래했는데 수백년된 느티나무 향나무 그리고 손님이 오면 망둥어를 잡던 호수가 있었다고 전해지고있고 인근 계향산이면 현재 화림선원이 있고 제일컨트리클럽이 있는곳을 지칭하는데 가끔 산책가는 곳들로 지금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나마 가족의 선산이었던 곳이었지만 나머지는 이장되고 이익 선생의 묘와 건너편에 이익선생 기념관이 남은 상태.. 현재 이동네에 살고있는 사람으로서 상상이 가지 않는 풍경.. 생각해보면 지금보고 있는 별들이 성호선생이 보던 것과 같은 위치라는 것이 신기할 따름..

 

 

 성호 기념관 맞은편 이익선생묘 -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일동 555호 경기도 기념물 제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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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선생묘 동영상 2014년 11월 9일

 

 

 

2014년 11월

 

묘비 성호 이익선생과 부인이었던 고령신씨와 사천육씨

 

 

 뒷면 - 클릭하면 더욱크게 볼수있습니다

 

 왼쪽 옆면 채제공이 지은 비문

 

오른쪽 옆면 1967년 추모회에서 올렸다고 표기된 비문

 

이익묘갈(상기 사진에 나와있는 내용의 원문 및 해석)

판독문보기 - http://gsm.nricp.go.kr/_third/user/search/KBD007.jsp?ksmno=8349

판독문 해석보기 - http://gsm.nricp.go.kr/_third/user/search/KBD008.jsp?ksmno=8349

 

이익선생묘는 경기도 안산시 일동

대중교통 이용시 4호선 상록수역 2번 출구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버스 대부분이 식물원앞에서 하차 도보로 5-10분거리이고

99-1번을 타면 식물원지나 이익선생묘 바로앞에서 내릴수 있습니다 상록수역에서 10분정도 소요

(단 71,71-1,2 번은 앞에까지 오지만 30분이상 이곳저곳 돌아서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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