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평] 세한도 천년의믿음, 그림으로 태어나다 - 박철상 문학동네

Posted by 놀이터 추억보관소
2018.12.04 16:38 문화와예술/역사 화가와 그림

세한도 관련해서 검색하다보면 이름은 모르더라도 추사를 연구하던 은행원 이야기를 종종 볼수있습니다. 저자인 박철상씨가 그분으로 어릴때부터 한학연구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고문헌에 관심이 많았다고합니다. 유홍준의 완당평전 초간본이 나왔을때 이백여개이상의 오류를 지적하던 강호의 숨은 고수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학예일치를 이야기할때 빠질수 없는 인물이 추사 김정희입니다. 추사의 대표작인 세한도는 그 정점에 있는 작품이라고 볼수있습니다. 문인화하면 소동파의 예찬이후 수묵화를 떠올리는데 정작 김정희는 문자향 서권기를 매우 중시했고 스승 옹방강과 같이 소동파를 열렬하게 흠모했지만 채색화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습니다. 그림에서 그사람의 공부와 독서의 깊이가 보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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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명과 윤상도의 상소로 시작되어 김양순의 음해로인한 추사의 제주 유배 과정을 기술한것을 보면 억울함에 치를 떨었을듯한 장면이 나옵니다. 결국 유배의 단초가 되었던 윤상도의 상소는 임금인 순조조차 방자하다고 유배를 보낸것을 보면... 순원왕후의 섭정이 끝나는 시점에 불안해진 안동김씨 세력의 견제로 당한것인데...

추사에게는 결과적으로는 매우 아이러니하지만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시작점 김조순의 아들인 김유근과는 막역한 사이로 어릴때부터 매우 많은 교류로 떨어지기 힘들정도의 절친이었습니다. 단순하게 친했던것이 아니고 정신적으로도 많은것을 공유했던 사이였기에 추사로서는 제주 유배기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을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당시 풍에 맞아 실어증에 걸려있던 김유근은 허망하게도 추사가 유배를 떠난지 얼마되지않아 죽게됩니다. 김정희로서는 절친의 죽음도 슬프지만 자신의 처지도 기약을 할수없게되어 실의에 빠질수밖에 없었습니다.


黙笑居士自讚 - 묵소거사는 침묵할때하고 웃을때는 웃는다는 의미로 황산 김유근의호인데 묵소거사란 호를 짓고 이에대한 글을 쓰고 김정희가 해서로 쓴글씨입니다.

묵소거사자찬 내용풀이


當黙而黙, 近乎時, 當笑而笑, 近乎中. 周旋可否之間, 屈伸消長之際. 動而不悖於天理, 靜而不拂乎人情. 黙笑之義, 大矣哉. 不言而喩, 何傷乎黙. 得中而發, 何患乎笑. 勉之哉. 吾惟自況, 而知其免夫矣. 黙笑居士自讚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한다면 시중(時中: 그 때의 사정에 따라 적절하게 처신하는 일)에 가깝고, 웃어야 할 때 웃는다면 중용(中庸: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똑바름)에 가깝다.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가 온다거나, 세상에서 벼슬하거나 아니면 은거를 결심할 시기가 온다. 이러한 경우 행동할 때는 천리(天理)를 위반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는 인정(人情)을 거스르지 않는다. 침묵할 때 침묵을 지키고, 웃을 때 웃는다는 의미는 대단하다. 말을 하지 않더라도 나의 뜻을 알릴 수 있으니 침묵을 한들 무슨 상관이 있으랴! 중용의 도를 터득하여 감정을 발산하는데 웃는다 한들 무슨 걱정이 되랴! 힘쓸지어다. 나 자신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화는 면할 수 있음을 알겠다. 묵소거사가 자신을 찬한다.


출처 및 상세한 내용보기 - https://www.museum.go.kr/site/main/relic/recommend/view?relicRecommendId=16843


저자가 밝힌것중에 하나로 일반적인 추측과 다르게 추사는 연경 방문 이전부터 옹방강과의 만남을 고대했었고 옹방강을 존경하는 뜻인 보담재(옹방강의 호는 담계이고 옹방강은 자신이 존경하던 소동파를 기리며 보소실이라는 당호를 사용하는것을 따라한것)라는 호를 이미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옹방강을 만나는 꿈까지 꾸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연경에서의 만남은 쉽지 않았는데 이미 70대의 노인이던 옹방강은 아무래도 젊을때처럼 활발한 사교를 했을리는 없었을텐데 그것도 먼변방에서 건너온 젊은 청년을 특별한 이유없이 만나는건 상식적으로봐도 어려운일... 하지만 김정희는 여러차례의 시도끝에 만남을 가지고 자신의 비범함을 내보이며 결국 옹방강의 제자가되고 아들인 옹수곤과 의형제를 맺을정도가 됩니다.

추사는 바로 전세대라 할수있는 정선이나 김홍도가 개척한 진경산수화를 계승하지 못하고 학문적으로도 너무 중국에 치우친 학자가 아닌가하는 비판을 하기도하는데 세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바란건 최고의 경지에 오른것을 최고로 친것으로 굳이 현재시점에서 말하면 글로벌 스텐다드에 가깝게 간것이라고 할수있습니다. 추사가 꿈꾸던 시서화가 완벽하게 조화되어 인품과 학식이 표현된 결정판이었다고 볼수있습니다.



세한도 - 그림부분


세한도는 종이와 붓에 매우 예민하고 깐깐하던(집안은 왕가의 일원이었고 어릴때 양자로 들어간 백부댁은 경복궁옆에 월성위궁에 살았던데다 생부 김노경은 고관대작이었기에 큰 부족함없이 자란 추사선생) 김정희였건만 궁상맞게 고급종이가 아닌 허접한 종이에 세장을 이어붙여 사용했는데 현재의 처지를 표시한것으로 볼수있는 치밀한 추사의 계산이었다고 보고있습니다. 소재의 선택까지 매우 신중하고 치밀하게..


하단의 발문은 줄을치고 글씨를 썼는데 금석문에 많이 사용되는 방식으로 정자체이지만 간혹 칸을 벗어나는건 현재 매우 곤궁하고 눈이 침침한 어려운 상태를 묘사했다고 합니다. 자신이 이런 어려운 상황임을 보여주는 장치로 추사가 그런 상태임에도 자신에게 의리를 지켜준 이상적이 고맙다고 띄워주는 것으로 볼수있습니다.




아무리봐도 세한도의 가장 큰 특징은 황량함입니다. 이런 그림이 나오게된것은 이상적에 대한 고마움과 자신의 처지가 어려운것에서 기인했지만 이책에서 주목할만한 부분은 세한도가 한순간에 뚝떨어지듯 나온 번득임이 아니라 중국에서 교류가 있을당시에 받았음직한 것들과 유배지에서 끼고살았다던 장경의 국조화징록 도화정의지 장포산첩과의 연관성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 젊은시절 옹방강의 컬렉션들을 들여다보면서 받은 영향과의 관계등 연경 방문당시에 받았던 것들을 밝혀내고 있습니다. 



황공망 - 천지석벽도

김정희가 황공망의 천지석벽도 그림에대해 꼼꼼하게 감상하는 방법을 이야기했습니다. 황공망은 중국 원나라대 4대가로 불리는 유명한 화가로 부춘산거도를 그렸습니다. 대작인 부춘산거도는 중국 역사상 10대 걸작에 뽑을때 들어가는 그림입니다.

추사는 김유근과 함께 삼총사라 말할수있을 권돈인에게 천지석벽도 감상법에 대해 편지를 보냈는데 이는 장경의 감상법과 같습니다.



황공망 초상




황공망과 함께 원대의 4대가로 불리던 예찬의 용슬제도


추사가 황공망과 예찬에 주목한건 시에서 두보와 같은 존재였기에 황솔함의 경지에 이르는 문경으로 삼은 대가들이었습니다. 황솔함이란 거칠고 간략하고 메마른 느낌을 이야기합니다.

추사는 건필과 담묵 그리고 적묵법의 연결에 대해 고민했는데 황공망과 예찬이후 비결이 끊겼고 제대로 사용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고 힘을 들여서 여러번 붓질을 해야하기 때문이라고 연경에서 만났던 주학년에게 들었다고합니다.

중국의 원나라 시대 4대가로 불리던 화가인 황공망과 예찬에게서 단순한 본받음이 아니라 그들을 넘어서는 경지에 도달하기위해 장경의 화첩을 자세히 들여다보았을 것으로 이른바 문경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위한 방법론이었는데 김정희는 고증학을 통해 경학을 좀더 공고히하기위해 적극적으로(당시 조선에서는 청나라는 오랑캐의 나라라며 반감이 있던 시절) 수용한 방법과도 상통한다고 볼수있습니다. 당시 청나라의 학자들은 그림에 통달하지 못하면 교류하는게 한계가 있을정도로 기본적인 소양이었는데 조선에서는 아래로 내려보는 시선이 팽배했고 그림에 재주가 있던 사대부들은 이를 애써 감추는 경향까지 있었습니다.


소동파의 예찬이후 흑백의 수묵화가 군자의 전형처럼 비춰졌지만 추사는 그림에 보이지않는 의미를 그려낸 것이라면 청록이나 금니를 사용하더라도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청대 산수화의 집대성했다고 일컬어지는 왕휘 17세기에 그려진 산수화





저자는 세한도가 단순히 미술사에서만 다룰것이 아니라 19세기 당시 조선의 학문과 예술의 총화이기때문이라고 보고있습니다. 세한도 그림만 보면 선뜻 명작이라하기 어렵지만 우선 이상적과 가슴이 뭉클해지는 스토리가 들어있고 청나라 이름난 사람들의 발문이 줄줄이 들어있는데다 따지고보면 글과 그림도 추사가 표현하고자 했던것들과 한치의 오차도 없고 불필요한 수사나 군더더기도 없는 상태로 들어가 있습니다. 회화적으로도 실제로는 많은 대가들의 기법을 자기식으로 소화해낸후에 표현된것...

세한도의 가장 큰 미덕은 조선시대를 관통하던 그림에 대한 천대 혹은 낮춰보는것에 대한 추사의 반론으로 볼수도 있습니다. 시서화의 일치 나아가 학예일치의 정점이랄수 있는 한시대의 표현이라고 볼수있습니다.


김정희의 생애와 세한도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필독해야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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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출처 - 문화재청, 구글검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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