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추사박물관과 김정희가 노년에 기거한 과지초당

Posted by 놀이터 추억보관소
2018.10.08 03:09 역사유적 방문/박물관

앞서 이야기한 일본의 청조학 연구가 후지츠카 치카시는 추사를 청조학의 일인자로 인정하면서 많은 자료들을 모았습니다. 당시 일제강점기로 경성에 와있었기에 가능했던일로 이후 자료들을 일본으로 귀국하면서 가져갑니다. 당시는 태평양전쟁 막바지 시기로 대규모 공습이 있었는데 후지츠카가 있던 대동문화학원 자료들도 포화를 피하지 못하고 많이 사라지지만 다행히 추사관련 자료들은 자택에 보관했기에 보존이 되었습니다. 중간에 소전 전재형에게 의지에 감화되어 무상으로 세한도를 넘겨준적이 있습니다.

후지츠카 치카시는 공자와 경학 연구가로 북경 유리창에서 우연히 박제가에대해 알게되었고 이후 경성으로 오게되면서 박제가의 스승 박지원과 제자인 김정희에대해 알게되었는데 단순히 청나라의 영향만을 받은게아니라 조선에서의 흐름과 청과의 깊은 교류가 있었던걸 알게되었습니다. 이후에 그는 청조와 조선의 그리고 일본의 문화교류를 연구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후에 우리나라에서는 한국전쟁이 발발했기에 국내에 있었다면 그자료들이 어찌되었을지는 알수없는 일이었습니다. 이후 후지츠카 치카시의 아들인 후지츠카 아키나오는 이자료들을 일본대학에 기증할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아버지처럼 동양철학 학자였던 그는 추사의 자료들은 일본에 있다면 크게 빛을보지 못하고 도서관이나 연구실 구석에 박혀있을거란 생각을했고 죽기 얼마전에 과천시에 기증을하게됩니다. 아마 그대로 지나갔다면 일본 어딘가에 추사의 자료들은 그대로 묻혀있었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후지츠카의 자료들은 어렵게살지는 않았지만 많지않은 교수월급을 털어 수집한것들이어서 그의 추사에 대한 열정을 볼수있습니다. 더구나 아들인 후지츠카 아오나키도 점점 어려워진 가세에도 추사관련 자료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보존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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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박물관은 2017년 11월에 갔었는데 날이 추워서 옆에 있는 편의점에서 원두커피 마시고 들어갔습니다. 평일이고 조금은 이른시간이라 사람이 없었습니다. 해설사님의 설명을 듣고나니 몇몇분이 들어오시더군요.



추사박물관 로비 추사의 대표작인 세한도로 디자인되어있습니다.



추사 박물관이 들어선자리에는 추사가 말년을 보낸 과지초당이 있던곳인데 원래는 아버지 김노경이 별장형식으로 오가던곳입니다.


김정희는 천개의 붓을 사용하고 열개의 벼루에 구멍이날정도로 글을쓰고 그림도 그렸습니다. 코흘리개 나이때에 쓴것도 일인지상 만인천하 정승은 물론이고 당대 최고의 학자가 제자삼겠다며 누군지 물어볼 정도인 천재가 유배지에서 남아도는 시간에 무수한 노력까지 했으니 지금까지 추사체가 살아남은 가장 큰 이유라하겠습니다. 보통 실력있으면 도구탓을 안한다지만 김정희는 종이는 물론이고 붓이 좋지않으면 아예잡지도 않을 정도로 까다로웠다고 합니다. 추사의 붓과 벼루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서화실에서도 볼수있습니다.



완당선생전집 김정희 저 김의한편 1934년


이한철이 그린 추사 영정




아주 다양하게 호와 인장을 사용한 추사 김정희는 수십여개의 다양한 서명과 인장들을 보겠습니다.


서명과 한글서명 그리고 봉함인


성명인 그중에는 고계림인이라고 있습니다. 부친을 따라 경주에 있었고 무장사비를 발굴했었고 통설을 뒤집고 진흥왕 순수비를 밝히고 해석했으니 신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었을것으로 생각됩니다.


많은 김정희의 자호 많이 알려진 추사와 완당외에도 같이 쓰인 완당추사나 노완 옹방강을 보배롭게 여기는 서재인 보담재인등을 볼수있습니다.


동해제일 통유라는 자신감을 엿볼수 있는 자호인


별호인과 수장인 심정인


뜻있는 명구들을 넣은 인장으로 김정희의 생각의 단면과 되새겨보는 말을 볼수있습니다.


가향전기 - 집안을 향기롭게하는 편지

경경위사 - 경전을 날줄로 삼고 역사를 씨줄로 삼다 - 추사의 기본적인 자세를 볼수있는 명구

불계공졸 - 잘되고 못 되고를 따지지 않는다 - 진인사대천명과 비슷한 의미

솔진 - 꾸밈없이 참된

침사한조 - 깊이 생각하여 글을 짓다

음자개시 - 나의 시를 읊다

사대부당유추기 - 사대부는 가을같은 기상이 있어야 한다

아념매화 - 나는 매화를 생각한다

해당화하희아손 - 해당화 꽃 아래서 손자를 데리고 놀다



석인전석교 변육각황우 이경전대경 궁경삼십년 - 돌다리앞에 돌장승 옆엔 한쌍의 누렁소 두이랑 밭 경전을 끼고 몸소 갈아온지 서른해

유어예 - 육예를 배움

중봉 - 붓을 반듯하게

수여금석 - 금석처럼 오래 사시라

장의자손 - 시경의 문구로 자손의 번창을 기원하는 길어

부용추수비린거 - 부용꽃 편 가을 물근처의 집

통음독이소 - 술마시며 이소경을 읽다

촌심천고 - 마음은 깊이길이 변치 않으리

자손세보 - 자손대대로의 보배



추사 임한경명첩

추사가 중국 한나라때의 거울에 새겨진 글씨를 임서한 것입니다.


한대(漢代)의 예서로 지금 남아 있은 것은 모두 동한시대의 고비(古碑)이고 서한시대의 비석은 한 개도 나타나지 않았으니, 이미 송(宋)의 구양수가 살아있었을 때도 그렇다. 축군명(鄐君銘)은 동한시대의 가장 오래된 비(碑)이지만 여전히 서한시대와 비교한다면 크게 변모한 것이 아니다. 대략 정(鼎), 감(鑑), 로(爐), 등(鐙)에 남아 있는 몇 글자를 가지고 서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지만 겨우 몇 종류뿐이다. 지금 서한시대가 가지고 있는 서체의 의미를 모방하여 써서 사언(史言)의 요구에 응한다. 예당禮堂.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https://www.museum.go.kr/site/main/relic/recommend/view?relicRecommendId=16841


나빙의 월매도와 김정희 스승인 박제가 초상


청조학 연구가 후치츠카 치카시의 김완당의 입연 강연 원고와 완당과 청조문화 원고 후지츠카 치카시는 일제시대 청조학을 연구하다 북경에서 북학파를 파고들었고 박제가의 제자인 추사를 알게되었습니다. 이후 경성에서 본격적으로 청조학과 김정희의 관계를 깊이있게 연구했습니다. 당시에 인사동에서 사들인 수많은 김정희 관련 자료들은 후일 과천에 기증하게 되어 추사박물관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과지초당


과지초당은 추사의 생부 김노경(1766-1837)이 한성판윤을 지내던 1824년 과천에 마련한 별서이다.

과지초당은 경관이 빼어난 정원과 숲, 그리고 아름다운 연못을 갖추어 추사 가문의 절정을 상징하는 곳이다.

1837년(헌종3년) 김노경이 별세하자 추사는 부친의 묘역을 과지초당 인근 옥녀봉 중턱 검단에 모시고, 과지초당에서 3년상을 치루었고, 그 후 과천을 자주 찾아 과지초당에서 보내는 시일이 늘어났다.

추사 김정희 선생은 제주 및 함경도 북청 유배에서 풀려난 1852년(철종 3년) 8월이후 1856년 10월 10일 서거하기까지 말년 4년여 간을 과지초당에서 지내며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웠다.


과지초당에는 김정희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과천박물관에서는 추사의 많은 작품과 자료들을 만날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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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박물관 - www.chusamuseum.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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