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119호]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 (金銅延嘉七年銘如來立像)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Posted by 놀이터 추억보관소
2018.01.29 14:44 한국사 놀이터/고구려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은 일년에 몇번씩 들르는 곳입니다. 생각날때마다 가끔씩 가다보면 여러가지 영감을 얻기도하고 찬란한 문화재들을 관람하면서 눈호강을 하고 오기도합니다. 아이가 아주 어릴때부터 갔었는데 지금은 중딩이 된이후로 같이 안가려고해 아내와 같이 데이트겸 딱히 떠오르는곳이 없을때 시간을 묻히러 가는 곳중에 하나.

여러번 촬영을 하기도 했지만 기술과 지식의 부족으로 분류를 하지 못한것도 많고 놓치는 부분도 많았기에 하나하나 정리해보면서 고색창연한 선조들의 문화재를 다시 되새김질 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어제는 그동안 자주 가지 않았던 3층의 아시아 유물이 있는곳과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불상들이 모셔진 맞은편을 보고 왔습니다. 전시실 안에서도 시끌시끌해서 뭐라고 할려다 애써 인내하면서 마주친 고딩으로 보이는 몇명과 비교적 뒷부분인 신안해저유물과 중국 일본관에서 마주친 해설사님의 상세한 설명에 두번을 연거퍼 복기하면서 보다 나오기도 했습니다.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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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유물은 국보 119호로 지정된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 (金銅延嘉七年銘如來立像)


상세설명 -


고구려와 관련된 글이 새겨져 있는 불상으로, 옛 신라 지역인 경상남도 의령지방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광배(光背) 뒷면에 남아있는 글에 따르면 평양 동사(東寺)의 승려들이 천불(千佛)을 만들어 세상에 널리 퍼뜨리고자 만들었던 불상 가운데 29번째 것으로, 전체 높이는 16.2㎝이다. 


머리는 삼국시대 불상으로는 유례가 드물게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큼직한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다. 얼굴은 비교적 작은데, 살이 빠져 길쭉한 가운데 미소를 풍기고 있다.


오른손은 앞으로 들어 손바닥을 정면으로 향하고 있으며, 왼손은 허리 부분에서 손바닥이 정면을 향하게 하여 아래로 내리고 있다. 왼손의 세번째와 네 번째 손가락을 구부리고 있는 모습은 삼국시대 불상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모습이다. 유난히 두꺼운 옷에 싸인 신체는 굴곡의 표현이 없지만, 전체적인 체구와 약간 보이는 어깨의 골격 등에서 강인한 힘을 느끼게 한다. 새의 날개깃 모양의 옷자락은 좌우로 힘차게 뻗쳐 있는데, 날카롭고 힘있는 모습이 중국 북위 이래의 양식을 보여준다. 불상과 함께 붙여서 만든 광배는 앞면에 거칠게 소용돌이치는 듯한 불꽃무늬가 선으로 새겨져 있다.


광배의 일부분이 손상되었으나 도금까지도 완전히 남아 있는 희귀한 불상으로, 광배 뒷면에 남아있는 글과 강렬한 느낌을 주는 표현 방법 등으로 볼 때 6세기 후반의 대표적인 고구려 불상으로 보인다.




이 불상은 1963년 7월 경남(慶南) 의녕군(宜寧郡) 대의면(大義面) 하촌리(下村里) 산(山) 40번지에 사는 강갑순(姜甲順)씨가 발견한 것이다. 출토지가 확실하고, 더욱이 고구려(高句麗)에 속하는 명기(銘記) 있는 불상이 남한(南韓)에서 출토되었다는 점에서도 주목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광배(光背)에 일부 손상을 입었으나, 각명(刻明)한 수법이나 찬연한 금빛 및 조상명기(造像銘記)기 있는 점 등에서 고구려(高句麗) 불상의 대표가 되기에 충분하다. 상(像)은 불신(佛身)·좌대(座臺)·광배(光背)를 같이 주성(鑄成)하였는데, 좌대는 바닥이 밖으로 넓어진 원통(圓筒) 위에 특색있는 연판(蓮瓣)을 두었고, 그 위에 원추형을 거꾸로 놓은 작은 족좌(足座)가 있어서 불신(佛身)을 받치고 있다. 

머리 위에는 큼직한 육계(肉髻)가 있고, 보발(寶髮)은 나형(螺形)인데, 삼국불(三國佛)로서는 드문 유례(遺例)이다. 얼굴은 비교적 작은 편인데, 살이 빠져 길쭉한 가운데에 미소를 풍기고 있다. 두 귀는 타원(楕圓)의 판형(板形)이고, 바튼 목에는 삼도(三道)가 보이지 않는다. 오른손은 앞으로 들어 손바닥을 보이고, 왼손은 팔을 수평으로 올려 아래로 손바닥을 보이는데, 새끼손가락 둘을 꼬부리고 있어 삼국기(三國期) 불상의 통식(通式)을 따르고 있다.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는 매우 두꺼워서 지체(肢體)는 거의 표현되지 않고 앞면에서 V자형이 되풀이되어 있다. 옷자락은 지느러미형으로 좌우로 활짝 벌어졌는데, 각법(刻法)이 날카롭고 힘차서, 북위(北魏) 이래의 양식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불신에 붙여서 같이 주조(鑄造)된 광배는 주형(舟形)인데, 윗부분이 안으로 굽고 아래쪽은 차츰 좁아져서 발목에 이르고 있다. 표면에는 따로 두광(頭光)·신광(身光)을 표현하지 않고 몇 줄의 각선(刻線)으로 화염형(火焰形)을 음각하였는데, 뒷면에는 4행 47자의 명문(銘文)이 음각되어 있다. 


출처 - 문화재청








延嘉七年歲在己未 高麗國樂良

東寺 主敬弟子僧演師徒卌人共

造賢劫千佛流布 第廿十九因現義

佛 比丘法穎所供養


연가 7년인 기미년(539) 

고려국(고구려) 낙양(樂良: 평양)에 있던 동사(東寺)의 주지스님 경(敬)과 그 제자 승려 연(演)을 비롯한 사도 40인이 함께 현겁천불(賢劫千佛)을 조성하여 유포하기로 하였는데, 제29불인 인현의불(因現義佛)로 비구 법영(法穎)이 공양한다.


고구려의 경상도지역 유물은 광개토대왕의 호우를 다뤘던 KBS 역사추적이 생각납니다. 그때 시청한것에 따르면 신라는 외형만 유지할뿐 거의 고구려의 복속된 형태였고 당시 신라와 가야의 근거지였던 경상도 지역에서는 고구려 관련 유적들도 굉장히 많은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런부분 추론해보면 신라지역에서 고구려의 유물이 나왔다는것은 그렇게까지 이해못할일은 아닐듯...


금동연가 7년명 여래입상은 1967년에 도난되었다가 12시간만에 되돌아온적이 있습니다. 당시 덕수궁 박물관에서 도난당했는데 관람객들이 있던 시간이라 더욱 경악했었다고합니다. 공항과 항만을 봉쇄해 일단 해외유출을 막았고 당시 통화한 사람은 삼십대로 추정되는 남자로 문화재 관리국 국장은 처분 불가능한 물건이고 순금도 아니라면서 회유.. 결국 그날 밤 범인이 알려준 장소인 한강 철교의 모래사장에서 회수했다고 합니다. 당시 범인은 아직까지도 누군지 알려지지 않았고 관람객들 사이에서 훔친 방법이나 통화중 이야기한 세계신기록 등등 아직까지 알수없다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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