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궁궐답사 - 명정문 정전인 명정전과 사도세자의 비극이 발생한 편전 문정전

Posted by 놀이터 추억보관소
2017.11.14 09:19 역사유적 방문/고궁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과 옥천교를 건너면 정전인 명정전으로 가기위한 명정문이 있습니다. 방향은 아니지만 법궁인 경복궁처럼 홍화문 명정문 명정전이 일직선상으로 있습니다.


조선 고적도보의 명정문 - 현판이 삐딱하게 걸린 상태로 당시의 상황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듯...


2013년 더위에 지친 아들 이날은 광복절이었는데 막바지 더위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쏟아지던 날씨였습니다.


2015년 크리스마스에 갔던 창경궁



명정전에서 바라본 명정문


명정문은 창경궁의 동쪽에 있는 정출입문입니다. 명정문에서 즉위식은 딱 한번으로 중종의 뒤를 이은 인종입니다. 잘알다시피 권력욕이 매우 강했던 문정왕후의 위세가 대단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인종은 이런 가운데 즉위한지 얼마되지않아 죽음을 맞이합니다. 대단한 효자로 알려진 인종이 부왕의 죽음을 너무 슬퍼해 한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몸을 돌보지 않았고 뒤를이어 보위에오르는 명종을 낳기전까지는 친자식처럼 보살피기도했던 문정왕후의 독살설도 있지만 직접적인 것보다는 이런 몸상태였지만 적극적으로 인종의 건강을 챙기지는 않았다고합니다. 

명정문은 17세기 광해군때 지어진것으로 현재 남아있는 궁궐 건물가운데 명정전과 함께 가장 오래된것입니다. 정면으로 세칸 측면 두칸에 단층지붕입니다.





동영상보기






문화재청 명정문 설명


보물  제385호

창경궁 명정문 및 행각 (昌慶宮 明政門 및 行閣)



성종 15년(1484) 창경궁을 세울 때에 지은 것이지만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 광해군 시절 다시 지었다. 회랑 중 남쪽과 북쪽 일부분은 일제시대 때 철거되었던 것을 1986년 복원한 것인데, 2칸 규모로 기둥 윗부분에 새부리 모양으로 뻗어 나온 장식을 하였다.


명정문의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데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한다.


건물 안쪽은 천장의 뼈대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이지만 일부는 천장 속을 가리는 우물천장으로 꾸몄다.


건물의 짜임이 착실하고 알차서 조선 중기의 문을 대표할 만하고 짜임새가 조선 전기 건축양식의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어 궁궐 중문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조선고적도보 - 잡풀이 가득자란 명정전 일대


어로에 박석이 깔린 명정전 모습 



2013년 창경궁에 처음갔을때... 여름방학때로 기억하는데 사진에서 보다시피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광복절이긴했지만 더운데다 요일상으로는 평일 이었기에 더욱 그랬던듯.. 창경궁은 창덕궁의 낙선재 위쪽 후원 관람하기위한 입구에서 창경궁 통명전쪽으로 바로 들어갈수 있는 출입구가 있습니다. 반대로 창경궁에서 창덕궁으로 들어갈수도 있습니다. 입장료는 별도로 내야합니다. 현재 창덕궁입장료는 3천원 창경궁 입장료는 천원입니다.


블로그 관련글 - 2016/05/19 - [역사유적 방문/고궁] - 창경원이 아닌 창경궁에 처음 가던날 - 2013년 8월



창덕궁 인정전과 마찬가지로 반듯하게 돌을 깔았지만 원래 박석은 비정형성을 가지고 있는게 깔려있었습니다. 현재는 경복궁 근정전앞 박석은 강화도 석모도에서 가져와 제대로 깔려있고 창덕궁 인정전과 창경궁 명정전은 복원당시에 반듯한 돌을 깔아놓았습니다. 동궐도는 물론이고 일제시대에 촬영된 명정전 박석도 비정형적으로 되어있는걸 볼수 있습니다. 박석을 깔아놓은 이유는 우선적으로는 눈부심을 방지할수있고 설계가 살짝 기울게 되어있기도 하지만 돌과돌 틈사이도 배수를 원활하게 하기에 정전앞에 물이 고이지 않습니다. 조상들의 지혜를 볼수있는 대목입니다.


오랫만에 다시 찾아간 창경궁.. 이날이 크리스마스로 기억하는데 아주 맑은 날씨였습니다.


2016년 작년 여름에 야간개장시에 갔던 창경궁.. 궁궐 야간관람과 통명전앞에서 국악공연을 보고왔습니다.

관련글보기 - 2016/08/06 - [역사유적 방문/고궁] - 창경궁 야간 특별관람 - 통명전 고궁 음악회




명정전의 창경궁의 정전입니다. 정전이기는 하지만 왕이 창경궁에 오래 머무르지는 않기에 격식을 갖춘 의례보다는 왕실 가족의 축하행사등이 명정전에서 치뤄진것들이 대부분입니다. 명정문과 마찬가지로 광해군때에 복구되었고 지금까지 내려오는 오래된 건축물입니다. 광해군은 당시에 실내 공간을 넓히길 원했지만 기술적으로 어려워 보첨을 덧대는 형식을 취했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대비들이 많았고 위세도 대단했기에 명정전에서 많은 의식이 치뤄졌습니다. 명정전에서 존호 올리는 의식이 치뤄졌습니다. 명정전에서 가장 큰 의식은 영조와 정순왕후의 가례입니다. 66세의 영조와 15세의 정순왕후의 가례는 요즘 같으면 지탄받았겠지만 당시에 왕비를 자리를 비울수는 없기에...


늦은 오후의 명정전



문화재청 명정전 설명


국보  제226호

창경궁 명정전 (昌慶宮 明政殿)


명정전은 창경궁의 정전으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 큰 행사를 치루던 장소로 사용하였으며,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장소로도 이용하였다. 조선 성종 15년(1484)에 지었는데,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광해군 8년(1616)에 다시 지었다.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의 1층 건물로, 경복궁의 근정전과 창덕궁의 인정전이 2층 규모로 거대하게 지어진 것에 비해 궁궐의 정전으로서는 작은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기둥 위의 장식적인 짜임은 그 짜임새가 매우 견실하며, 그 형태가 힘차고 균형이 잡혀 있어 조선 전기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내부 바닥에는 벽돌을 깔았고 왕이 앉는 의자 뒤로 해와 달, 5개의 봉우리가 그려진 일월오악도 병풍을 설치하였다. 건물 계단 앞에는 신하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24개의 품계석이 놓여 있다.


명정전 남측의 문정전과 주변 행각은 1983년부터 3년간에 걸친 복원공사로 대부분 복원하였고, 일제 때 격하되었던 창경원의 명칭을 창경궁으로 환원하였다. 창경궁의 명정전은 임진왜란 이후에 다시 지은 건물이지만, 조선 전기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계승하고 있는 건물로 건축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조선고적도보 - 명정전 상월도와 하월도


월대 중간의 답도에는 왕을 상징하는 봉황이 그려져있습니다.


명정전 증축을 명했던 광해군 하지만 건물 구조상 불가하다는 이야기에 만들었던 형식으로 우리 궁궐에서 보기힘든 양식




궁궐의 건설과 증축에 집착했던 광해군은 임진왜란으로 대부분이 소실된 궁궐을 중건하고  정원군의 사저였던 곳에 세워진 경덕궁(경희궁)과 완성단계였지만 바로 인조때에 대부분 해체된 인경궁등 새로운 궁궐까지 건설했습니다. 인경궁은 굉장히 비싼 원료를 사용한 청기와로 만들어진 건물들도 많아 많은 국고를 쏟아붓기도 했습니다. 현재 창덕궁의 선정전이 이때 만들어진 인경궁의 광정전을 뜯어다 놓은것으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청기와 전각입니다. 창경궁의 명정전을 넓게 보수하라는 광해군의 명에 기술적으로 불가함을 들어 뒤에다 붙인것이 현재 남아있는 명정전 뒷부분의 보첨입니다.


조선고적도보 - 명정전 봉황


명정전 천정의 봉황




명정전 어탑과 오봉일월도


명정전은 단층이라 천정이 낮아 그리 위엄이 있어 보이는 효과가 없습니다. 더구나 실내도 다른 정전이 네칸인데 비해 세칸으로 좁아 공간도 좁습니다. 명정전 천정의 봉황은 17세기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궁궐의 봉황을 묘사한것으로는 시기가 가장 앞서고 있습니다. 공간이 좁고 천정이 낮지만 갖출것은 모두 있는 정전으로 규모에 맞게 행사를 했을것으로 추측합니다.




영조대에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음을 맞이한 장소인 문정전

원래의 용도는 왕이 사무를 보던 편전이었지만 창경궁보다는 창덕궁에서 대부분을 보냈기에 실제 쓰임새는 국상을 당했을때 임시로 모시는 혼전으로 사용이 많이 되었습니다. 명정전 바로옆에 있으며 명정전의 보첨이 이곳까지 이어질 정도로 매우 가깝습니다. 명정전은 동향이지만 문정전은 남향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훼손된것을 1986년 복원



문정전 설명


문정전은 임금이 신하들과 회의를 열고 의견을 나누던 창경궁의 편전으로 동향인 명정전과 달리 남향 건물이다. 편전이면서도 왕실의 신주를 모신 혼전으로도 자주 쓰였다. 아버지 영조의 손에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의 비극도 문정전이 혼전으로 쓰이던 것과 관련이 있다. 문정전 일원은 일제 강점기때 훼손되었고 1986년에 건물은 다시 세웠으나, 서쪽에 있던 담장과 화계 정원은 아직 재건하지 않았다.


문정전 현판





문정전은 주로 승하한 대비와 왕후들의 신주를 모시는 장소인 혼전으로 쓰였습니다. 중종때 생모인 정현왕후 승하후부터 효명세자인 익종비 신정왕후의 혼전까지 오랜기간 쓰이기도했습니다.

문정전은 영조와 연관이 깊은곳으로 영화로도 만들어진 사도의 사도세자가 뒤주속에서 죽은 장소이며 영조보다 먼저 승하한 정성왕후의 신주가 모셔지고 종묘에는 왕이 승하해야 같이 들어가기에 영조가 승하할때까지 17년간 모셔지기도 했던 공간입니다.





동영상보기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서울 종로구 와룡동 2-1 | 창경궁 명정전
도움말 Daum 지도


이 댓글을 비밀 댓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