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 사극의 많은 배경이 되었던 궁궐 - 홍화문 옥천교 -동궐도와 조선고적도보 비교

Posted by 놀이터 추억보관소
2017.11.10 02:26 역사유적 방문/고궁

창경궁은 경복궁이나 창덕궁에 비하면 건축물이 군왕으로서의 격식이나 위엄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편이지만 태종이 상왕으로 머물며 조성된 수강궁에서 성종때 창경궁으로 크게 다시 만든 이유가 많아진 대비들을 위한 공간으로 조성된 곳입니다. 그렇기에 국가적으로 격식을 크게 차려야하는 의례는 많지 않았지만 궁중 여인들의 공간으로 많은 왕들이 태어난 공간이고 왕실 내부를 위한 의례들은 많이 치뤄진 공간입니다.



창경궁은 항상 사극의 소재로 떠도는 장희빈과 인현왕후 이야기의 주무대이고 또하나의 비극인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은 공간이기도합니다. 창경궁의 최대 위기는 일제강점기에 이왕가로 격하된 조선왕족들을 위한 공간으로 식물원이 만들어지자 순종은 백성들에게 공개를 하기로 결정합니다. 이후로 이곳은 해방이후에도 그대로 남아있게되는데 40대이상이라면 많이 들어봤거나 여러번 가봤을 창경원으로 격하되어있었고 일제시대 크게 확장한 춘당지에서는 보트를타고 봄에는 벚꽃놀이로 인산인해 그리고 무덤에나 어울릴법한 잔디가 깔리고 동물원이 들어선 유원지로 변모하게됩니다. 



1970년대 창경궁(당시 창경원) 홍화문 부근 벚꽃놀이를 위해 모인 시민들로 인산인해


1970년 춘당지를 가로질러가는 케이블카와 연못에서 보트를 타고있는 당시에는 동물원과 식물원 여러 오락시설이 즐비했던 유원지



1986년 궁궐로서 다시 창경궁으로 되살아나게됩니다. 동궐도와 비교해보면 복원은 아직더 많은 손이가야 하는 부분이지만 본래의 자리를 되찾아 가는중입니다.


동궐도중에 창경궁 영역

순조때에 통명전이 소실된 상태이고 명정전지나서 함인정뒤로 현재 휑한 공간인데 당시에는 많은 건물들과 담장이 있는것을 볼수 있습니다.


창경궁 설명


창경궁 설명내용


본래 창경궁터에는 1418년에 세운 수강궁이 있었다. 수강궁은 세종때 상왕 태종을 위해 창덕궁 동편에 창건한 궁이었다. 1483년에 성종이 3명의 대비를 위해 이 터에 크게 궁궐을 다시 짓고 창경궁이라 불렀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사실상 하나의 궁궐을 이루어 이둘을 합쳐 동궐이라 하였고, 후원의 정원도 공동으로 이용했다. 창경궁은 창덕궁의 부족한 생활공간을 보충하여 왕과 왕비뿐 아니라 후궁, 공주, 궁인의 처소로도 사용했다. 경복궁처럼 일정한 원칙을 좇아 경영된 궁궐과 달리, 창경궁은 건축 형식과 제도 면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세워지고 이용된 궁궐이었다. 궁궐은 남향이 원칙이지만, 창경궁의 중심 부분은 특이하게 동향으로 배치되어있다. 동쪽에 왕실 동산인 함춘원과 낙산이 자리를 잡고 있어 그곳을 바라볼 수 있도록 지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생활공간들은 남향으로 배치되어있다. 창경궁은 자연 지형을 따르면서도 생활의 편의를 추구하여 궁궐을 조성했기 때문에 아름다움과 친근함을 두루 갖춘 궁궐이 되었다. 임진왜란(1592년)때 서울의 다른 궁궐과 함께 불에 탔다가 1616년에 재건되었다. 이때 다시 세운 명정전, 명정문, 홍화문등은 창경궁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궁궐 건물에 속한다. 창경궁의 전성기는 1830년대였다. 동궐도에는 여러 대비궁, 후궁과 공주들의 처소, 궐내각사들이 촘촘하게 들어서고 곳곳에 정원 시설이 조화를 이룬 당시 모습이 잘 묘사되어있다. 일제 강점기에 창경궁 안의 건물들을 대부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여 시민공원으로 바꾸고, 이름마저 창경원으로 격하시켰다. 또한 종묘와 연결된 땅의 맥을 끊고 그 사이에 도로를 개설하여 궁궐의 품격을 훼손했다. 1983년부터 동물원을 이전하고 본래의 궁궐 모습을 되살리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비록 아직 많은 유적들을 복원하지 못했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진 창경궁의 모습에서 왕실 생활의 체취를 느낄 수 있다.


창경궁 전체 안내도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홍화문 사진


2013년 8월 창경궁 홍화문


2015년 12월 홍화문



2016년 7월 야간의 창경궁 홍화문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은 경복궁의 광화문이나 창덕궁의 돈화문에 비하면 규모는작고 남향이 아닌 동쪽으로 나있습니다. 창경궁은 원래 성격이 대비들과 왕실 가족들을 위한 공간이었고 창덕궁과 연결되어있기에 격식에 얽매일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었고 한때 방향을 바꾸려하려다 그만둔적이 있습니다. 광화문은 석축으로 커다란 세개의 홍예이고 돈화문은 다섯칸인데비해 홍화문은 세칸입니다. 경희궁의 흥화문과 비교하면 세칸 규모는 같지만 창경궁 흥화문은 중층 지붕을 만들어 조금더 격식을 갖추었다고 할수있습니다.


홍화문은 성종 15년(1484년)년에 만들어졌는데 임진왜란때 전소되었고 광해군 8년(1616년)에 지어진것이 현재까지 남아있습니다. 현존 하는 궁궐의 정문중에 가장 오래된 건물이고 창경궁의 명정전 명정문과 함께 지어진지 오래된 건물중 하나입니다.


창경궁과 연관이 깊은 사람은 영조를 꼽을수 있습니다. 이곳 홍화문에서 백성들과 대신들을 앉혀놓고 조세방법에 대해 직접 물어보기도 했으며 흉년에는 구휼미를 나눠주던 장소입니다. 백성들과 교류를 많이하던 영조의 모습을 볼수있습니다. 지금도 창경궁에서 생활하던 영조의 모습을 재현하는 행사가 매년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홍화문 앞에서는 무과시험이 치뤄지기도했고 17세기 이후에는 궁중의 흉사와 관련되어 왕이나 왕비 구리고 왕실 가족들의 장례인 국장을 치르면 빈전에서 발인한후에 신주를 궁으로 가져와 혼전에 모실때 주로 사용했습니다.


문화재설명


보물  제384호

창경궁 홍화문 (昌慶宮 弘化門)



창경궁 홍화문은 창경궁의 정문으로 조선 성종 15년(1484)에 지은 건물이다. 임진왜란(1592) 때 불에 타, 광해군 8년(1616)에 다시 지었고 지금 있는 건물은 그 뒤로도 여러 차례 수리하였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의 2층 건물로 동쪽을 향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며, 지붕은 앞쪽에서 볼 때 사다리꼴을 한 우진각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아래층은 기둥 사이마다 2짝씩 문짝을 달아 사람이 드나들게 하였으며 위층은 마루를 깔고 앞뒤 벽면에 조그만 널문들을 달아 여닫을 수 있게 만들었다. 지붕 꼭대기 양끝의 조각과 부드럽게 굽어 내린 내림마루 부분의 조각상이 건물의 위엄을 한층 더 돋구고 있다.


여러 차례의 수리와 단청으로 고유의 아름다움을 잃었지만, 창경궁·창덕궁과 같은 건물과 함께 17세기 초반 목조건축의 연구자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건물이다.




동영상보기







조선고적도보 창경궁의 옥천교


2016년 7월 옥천교



옥천교는 창경궁이 만들어질때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옥천교는 왕이 밖으로 나가기위해 움직일때면 지나던 곳으로 통행상 중요한 다리입니다. 다리 가운데 부분을 약간 높여 어도를 구분했고 난간은 연꽃잎 모양의 장식을한 기둥과 바람이 통하도록 구멍을 뚫었습니다.



옥천교 돌로 조각된 법수와 난간






야간 옥천교 홍예


홍예 사이에 새겨진 조각상.. 귀신을 쫓아낼 목적으로 밤에보면 더욱 그럴듯...


문화재 설명 


보물  제386호

창경궁 옥천교 (昌慶宮 玉川橋)


이 돌다리는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에 들어서면,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옥류천을 가로 질러 있는 것으로 산천의 정기를 옮겨다 주는 명당수가 흐르는 곳이다. 전체적인 형태는 반원아치형태의 홍예(紅霓) 2개를 이어붙여 안정감이 느껴지며, 궁궐의 다리에 맞는 격식을 갖추고 있다.


홍예가 이어지는 공간에는 억센 표정을 하고 있는 도깨비얼굴을 새겨놓아 주의를 끄는데, 공간에 맞추려는 듯 이마가 넓고 턱이 좁아 삼각형을 이루고 있다. 다리의 양옆에 두어 이 곳을 오가는 이들을 보호하려는 의도로 보여진다. 다리 위는 중간부분이 무지개처럼 약간 둥그스름하며, 다리의 너비는 널찍하게 두었는데, 이는 임금님이 거동할 때 좌우를 옹위하는 의장대 행렬까지 고려한 것이다. 다리의 좌우로는 아름다운 난간을 세우고 양끝의 기둥 위에는 돌짐승을 둥글게 깎아 두었다.


궁궐 안의 다리인 만큼 각 부분의 양식과 조각이 특별하며, 특히 다른 궐의 어느 것보다도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어 이 다리만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만들어진 시기는 창경궁을 짓던 때와 연관지어 조선 성종 14년(1483)인 것으로 여겨진다.





동영상보기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서울 종로구 와룡동 2-1 | 홍화문
도움말 Daum 지도


이 댓글을 비밀 댓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