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후원관람 연경당 - 효명세자의 개혁의지가 서려있는곳

Posted by 놀이터 추억보관소
2017.11.01 06:46 역사유적 방문/고궁

창덕궁 후원에는 효명세자와 관련된 곳이 많지만 가장 대표적인것은 이곳 연경당이라 할 수 있습니다. 효명세자는 순조의 권력을 이어받을 세자로 실제로 임금으로 등극하지는 않았지만 실권자로서 짧고 굵게 대리청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효명세자는 요새말로하면 그야말로 엄친아라 할 수 있습니다. 수려한 외모와 고귀한 신분은 왕세자이고 어린나이였지만 학식을 겸비한데다 감수성이 뛰어나 문학에도 출중했으며 여기에 덧붙여 음악과 춤에 정통해 각종 궁중의례를 직접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것때문에 의외로 국악이나 궁중복식을 연구하는 분들에게 효명세자는 굉장히 유명하다고합니다. 이시절은 바로 조선 후기로 넘어서면서 안동김씨 세력의 입김이 매우 강해지고 세도정치라고 부를만큼 왕위에 군림하는것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정조가 조금만 더 오래 살았다면 그다음에는 효명세자가 급사하지 않고 순조 다음으로 등극해서 정치를 펼쳤다면 이런 가정들을 할때가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조선 후기가 좀더 다르게 전개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어가 있습니다. 안동김씨로 대표되는 김조순은 최근 화제가 되고있는 영화 남한산성의 충신 김상헌의 직계 후손으로 영조를 추대하다 사형당한 김창집이 증조부로 이런 내력이 정조의 관심을 받은 집안입니다. 안동김씨중에서도 장동김씨라 따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안동김씨 일족중에 서울에서 터를잡은 일파를 말합니다.

안동김씨 시대를 연 김조순은 탐욕의 화신정도로 이미지를 가질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굉장히 온화하고 문장도 뛰어나며 잘난척하면서 나서지 않는 겸손한 성품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물론 보기에 따라서는 처세에 아주능한 교묘한 위선자란 평가도 있습니다) 정조도 평소에 보아온 이런 그의 품성때문에 어린 순조의 방패로 앞날을 부탁한 것일수도 있습니다. 정조는 목숨을 위협받을정도로 불안했던 집권초반부에 홍국영을 위시한 외척에 휘둘린적이 있었는데 이런 선택을 한건 묘한 정치적 계산이 있었을수도... 어찌되었건 초기의 위험한 순간을 넘기고선 김조순은 순조의 방패역할을 그런대로 했다고 할수도 있지만 그가 구축한 세도정치는 후에 역으로 작용하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이란것은 이렇게 계산대로 분립되기 힘든 것이라 김조순의 아들들은 권력을 앞세워 굉장한 횡포를 부린것으로 유명합니다. 최근에 쓰이던 '헬조선'의 오리지널 버전이랄수 있는 안동김씨 세도정치 시대로 조선이 망하는 결정적인 계기로 꼽히는 시기입니다. 안동김씨 세도정치 시절은 바로전 시대인 정조의 문예부흥 시기와 맞물려 더욱 극명한 대비를 이루고있습니다. 물론 이후 고종때 명성황후 민씨들의 횡포를 생각하면 어쩌면 어떤작자가 되었던 피할수 없었던 시대였을수도... 

효명세자는 이런 구도속에서 군왕으로서는 실질적으로 힘이 미약했던 아버지 순조를 위해 대리청정을 하면서 이들을 견제하기 시작합니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궁중의례로 왕위에 있다시피한 이들이 어쩔수 없이 머리를 조아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하고자 하는말은 이런 의례들이 행해지던 장소가 이곳 연경당입니다.


연경당으로 들어가려다 만난 문은 서쪽에 나있는 것으로 태정문입니다. 태정은 곧고 바르다는 뜻이고 태자가 주역의 궤중에 하나로 방향으로는 서쪽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연경당으로 들어가는 장락문


연경당은 1827년 순조27년에 효명세자가 대리청정을 하던 시점에 지어졌습니다. 연경당이 지어지기 전에는 진장각이 있었고 용도는 어제와 어필을 보관하는것이었습니다. 120칸짜리로 단청을 하지않은 사대부가의 건물처럼 만들어졌습니다. 창덕궁의 낙선재나 경복궁의 건청궁처럼 일반 사가처럼 편안함을 추구했던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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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연경당


조선고적도보 연경당 내부


순조를위해 효명세자가 직접 만들어 많은 진작례를 치르던 연경당으로 속내는 왕권강화를 위한것으로 해석할수 있습니다. 순원황후의 40세를 기념한 무자년의 기록은 무자진작의궤로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창경궁에서 한번 그리고 이곳 연경당에서 또한번 치뤘습니다.


연경당은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기간 4년이 지날무렵 급작스럽게 다가온 죽음이후 사용이 없다 고종때에 재정비하게됩니다. 역사의 반전가운데 하나로 고종을 후사가 없던 철종의 후계자로 지목한건 다름아닌 효명세자의 부인이었던 신정왕후입니다. 역사에 조금 관심이 있다거나 평소에 사극을 흥미롭게 보고 있었다면 개취급당하며 파락호로 돌아다니던 흥선대원군과 거래후 고종을 후계자로 삼은 조대비를 보거나 들어본적이 있을텐데 그 조대비가 바로 효명세자의 부인이었고 사십여년을 안동김씨의 위세에 숨죽이며 살던 인물이었습니다. 인생의 반전이라고 할수있는 부분입니다. 조대비는 효명세자가 하려던 것들을 다시 재개했고 역시 왕권수호가 절실하기에 안동김씨 세력을 몰아내야했던 흥선대원군은 당시에 이런 부분 합이 맞았기에 같이 진행한 인물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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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당 건축을 명한 효명세자가 만든 춘앵전으로 모친 순원숙황후의 40세를 기념한 작품입니다.  봄날 꾀꼬리의 자태를 무용화한것


국악방송 춘앵전 소개






조선고적도보 농수정


연경당 옆 선향재는 서책을 보관하던 곳으로 특이한 지붕을 가진 이유는 햇볕을 가리기 위해서 차양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선향재 천정의 햇볕 가리는 구조



책을로 그득차있었을 선향재 내부


선향재 뒤편에 있는 농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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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지만 연경당에서 촬영한 사진은 별로 없습니다. 마지막 코스라 조금 지치고 추운 겨울이지만 땅이 살짝 녹아 약간 질척해 불편했기도... 그래도 제일큰 이유는 사전정보가 너무없어서였는데... 겨울에 가는것도 좋지만 역시 후원은 봄 가을이 제대로일듯합니다. 날잡아서 가야하는데 좀처럼 시간이 나지 않습니다. 지금 간다면 촬영도 지금 올린것보다는 훨씬 이곳저곳 디테일하게 할텐데 하는 아쉬움만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처음 답사할때의 목적처럼 사전정보없이 날것 그대로 보는것에는 머리속에 전혀없던 새로운것이 들어왔기에 어느정도 맞아떨어졌고 다음부터는 아는만큼 보이는것에 대한 즐거움을 느껴야할때...

처음으로 가본 후원은 기대이상이었고 어릴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던 비원이라는 말이 입에 붙어있던게 모두 사라지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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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와룡동 2-71 | 창덕궁 연경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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