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후원관람 애련지 애련정 의두합 관람정 승재정 폄우사 존덕정

Posted by 놀이터 추억보관소
2017.10.24 04:20 역사유적 방문/고궁

창덕궁 후원을 처음갔을때는 답사다니는 초기라 공부나 정보없이 그냥 직관적으로 보고왔기에 촬영을 놓친부분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초등학생 아이랑 같이 간다는 부분을 고려해서 처음 답사시에는 사전 정보 공부없이 다녀왔습니다. 괜히 정보에 짓눌리는 선입견과 다른 시각을 가질수 있는 부분을 원천차단하는것은 아닌가하고 염려했고 있는 그대로 날것으로 느껴본후 살을 붙여나가길 원했습니다. 

아마도 답사를 많이 다니신 분들은 정확하게 인지하겠지만 유적이나 유물은 눈으로 한번 본것과 여러번 글로 접한것은 하늘과땅 차이가 날때가 대부분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란말은 괜히 생긴게 아니었습니다. 물론 책으로만 접해 상상력에 의한 재미있는 이야기의 구조가 나올수는 있겠지만 직접 눈으로 각인된것은 그러지 아니한것과 나중에 서책으로 접할때는 보이는 정도가 많이 달라지는건 어쩔수 없는 부분입니다.

선입견없이 접하길 기대.. 갔다온후에 책을 다시접하고 후일 다시금 답사하는것을 기본으로 정했기에 발생한것입니다. 지금에와서 당시 촬영된것들을 보니 놓치고 엇나가는 부분들이 보입니다.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접하는 처음의 생생함을 위해서라면.. 그리고 후일 다시갔을때의 아는만큼 보이는 것의 즐거움도 모두 가지고 싶은 생각이었습니다.


2014년 이후로 창덕궁은 몇번 답사를 다녔지만 후원은 여러가지 여건이 맞지않아 못보고 있습니다. 조만간 다시한번 꼭가야 하는 장소 가운데 하나로 꼽고 있기도합니다.


부용지와 주합루를 지나면 애련정과 만날수 있습니다. 겨울에 갔을때는 보통 부용지와 연경당을 같이 가는듯한데 이날은 부용지를 들르고 다음에 들르는 곳인 애련정만 둘러보고 바로옆에 있는 의두합등은 들어가지않고 눈으로만 보면서 건너뛰었습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데 하여튼 건너뛰고 연경당은 마지막에 들른뒤에 답사 종료되는 코스였습니다. 글작성은 애련정 의두합과 연경당을 하나로 묶는것이 타당하지만 블로그에 쓰는것은 답사했던 코스대로 하겠습니다.


2014년 1월 애련정과 왼쪽 방향의 건물은 연경당


조선고적도보에 나온 애련정


애련정과 옆의 괴석들...

애련정은 숙종당시 어수당의 동쪽 연못으로 기록에는 한가운데 섬에 세우고 북쪽못가에 세운 정자로 연꽃은 보통 불교의 상징과도 같지만 군자를 상징하는 의미도 있기에 이런뜻을 강조하면서 이름지어졌다고합니다.  숙종의 기록과는 다르게 정자가 세워져있는데 동궐도에도 현재의 모습과 같아 실제 축조 당시의 원형이 어떤지는 알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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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련정 옆에는 지금은 없지만 동궐도에보면 어수당이란 건물이 있었습니다. 춘당대와 가깝기에 군신간에 어울리기 용이한 공간이었고 광해군대에는 여인들과 술에취해 연회를 베풀기도.. 어수당에서는 효종과 송시열이 대담을 나누기도 했던곳으로 정조는 이부분을 상기시키기도 했습니다. 금마문 아래 불로문으로 들어서 애련지를 지나서 위치 했고 옆으로 더가면 연경당이 있습니다.


아쉽게도 가까이가서 못본 의두합

영화당을 나서 안으로 들어오면 금마문이 나오고 그안으로 들어가면 석거문이 나옵니다. 그안에 있는 건물로 처음의 이름은 석거거실이었습니다. 의두합은 정면네칸 측면세칸의 건물과 왼쪽에 사방 한칸의 건물 두개로 되어있는데 사진속에 보이는 의두합 서쪽 건물인 운경거에는 기오헌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의두합은 안동김씨 세도정치에 맞서 왕권강화와 개혁을 꿈꾸던 효명세자가 독서를 위해 만든 두개의 건물을 보통 지칭하며 조선후기 안타까운 죽음가운데 하나였던 효명세자 급사후에 한참을 방치되었다가 고종때에 다시 정비되었습니다. 이를 명한건 고종을 후사가없던 철종의 후계자로 정했던 조대비이고 여기 숨겨진 이야기는 조대비가 바로 효명세자의 부인입니다. 

안동김씨의 세도속에서 오랜 세월을 존재감없이 숨죽이며 살았던 조대비는 왕실의 최고어른이되어 후계지명권을 가지고있었고 흥선대원군을 내세워 안동 김씨 세력을 몰아내고 효명세자가 하려던 왕권 강화를 모색했습니다. 당시 경복궁 중건등 많은 일들이 조대비의 입김속에서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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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고적도보에 나온 반도지와 주변의 관람정 존덕정 승재정(사진 오른쪽부터 순서대로)


2014년 비슷한 구도에서 잡은 모습


조선고적도보에 나온 관람정


애련정을 지나 조금 올라가면 반도지가 나옵니다. 원래는 3개의 연못이 있었지만 1907년 순종대에 하나로 합쳤고 1911년 일제시대에 반도지라는 기분나쁜 뉘앙스의 이름을 가지게됩니다. 같이 동행했던 해설사는 관람지라고 불렀습니다. 관람정은 우리나라 정자에서는 보기 힘든 독특한 부채꼴 모양의 지붕을 가지고 있습니다. 관람정과 맞은편의 승재정은 순종시대인 20세기에 지어진 정자입니다.


부채꼴 모양의 지붕을 가진 관람정


관람정 맞은편에 있는 승재정으로 원래는 심추정이 있던 부근이고 1907년 순종황제 이어할때 지어진 것으로 정교한 창호를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 별개의 있던 3개의 연못을 하나로 합쳐 조선반도 모양으로 만든 반도지.. 일제의 영향력을 볼수있는 변형된 후원의 모습으로 관람정과 승재정 모두 이시기에 만들어진 정자들..


관람정 위에는 석교가 있습니다. 후원의 중심에 자리잡은 다리로 많은 수량의 물이 흘러다니는 곳입니다. 이곳을 지나 옥류천으로 가는길을 상산로라 불렀습니다.




조선고적도보에 수록된 폄우사



폄우사는 존덕정 옆에 있는데 독서를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원래는 건물과 이어져 담장이 있고 그곳에 두칸 건물이 더있었습니다. 담장은 지금 사라졌습니다. 이곳도 정조와 효명세자가 독서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한 기록이 있습니다.





조선고적도보에실린 존덕정





존덕정과 정조의 교시

존덕정 안 북쪽 벽에 만천명월 주인옹 자서 (萬川明月 主人翁 自序) 라는 제목으로 빽빽하게 쓴 현판이 걸려있는데 정조가 집권 말기인 1798년에 직접 지은 글이다 "세상의 모든 시내는 달을 품고 있지만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유일하니, 그 달은 곧 임금인 나이고 시내는 곧 너희 신하들이다. 따라서 시내가 달을 따르는 것이 우주의 이치"라는 강력한 내용이다. 평생 왕권 강화를 위해 노력했던 정조의 준엄한 꾸짖음을 듣는듯하다. 천정 중앙에는 쌍룡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그림을 그렸는데 이 역시 왕권의 지엄함을 상징하는 것이다.


즉위하자마자부터 목숨을 위협받았음에도 이를 극복하고 조선의 문예부흥시기라 일컬어지는 정조라는 군주를 생각하면 해설이 딱딱하고 근엄한데.. 유홍준 선생은 이렇게 해석 - [유홍준 칼럼] ‘만천명월 주인옹’은 말한다


정조와 관련이 많은 존덕정


인조대에 지어진 존덕정은 이후 다른 정자들이 계속 생기면서 후원의 중심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육각형이어서 육면정이라고 불렸는데 연지가 있어 돌기둥을 세우고 나머지는 지면에걸쳐 운치있게 만들어졌습니다. 거기에 지붕이 이중으로 보여져 특이한 형식이라 할수 있습니다. 존덕정은 원래 선조의 시와 인조의 어필이 현판으로 달려있고 헌종의 존덕정 편액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현재는 정조의 유명한 '만천명월주인옹'이란 글이 편액으로 걸려있습니다.

동궐도에 보면 존덕정에서 폄우사 방향으로 태청문이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습니다. 주변의 괴석과 은행나무는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존덕정 위쪽에 청심정이 있고 이외에도 주변에 천향각 척뇌당 심추정등의 정자가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상태이고 후원 높은 봉우리에는 지금도 능허정이 있습니다. 다만 능허정 밑에있던 사가정 백운사는 지금은 사라진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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