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동궐도와 돈화문 그리고 조선시대 왕가의 정원이 있던곳 창덕궁 후원 - 1

Posted by 놀이터 추억보관소
2017.10.15 14:52 역사유적 방문/고궁

창덕궁은 조선의 법궁이던 경복궁을 대신해 태종 이방원이 건설한 곳입니다. 태조의 조선 건국에 능력이나 기여도로 따지면 후계는 당연히 자신의 몫인줄 알았건만 신정왕후의 읍소와 정도전의 지지로 막내에게 돌아간 후계구도... 왕자의난이후 골육간의 상쟁을 통해 왕이된이후 지긋지긋한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던것으로 볼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정적인 정도전의 그림자까지 지워내고 싶었을듯...


창덕궁은 성종이후 대비들을위해 크게 변모하는 창경궁과 더불어 보통 동궐로 불립니다. 그럼 서궐은 어디? 일제시대 공중분해되어 지금은 자취만 남았다고 할수있는 경희궁입니다. 임진왜란이후 선조의 뒤를이은 광해군이 세운곳으로 인조의 아버지인 정원군의 왕기가 서린 바위가 있는 사가를 헐어내고 지은곳으로 실제로 들어가 살지는 못한곳입니다. 원주인인 정원군의 아들인 인조가 나왔고 나중에 원종으로 추존되었으니 왕기가 서려도 단단히 서린곳은 맞는듯..


창덕궁과 관련이 깊은 사람들을 보면 일단 태종과 숙종을 꼽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조는 후원에 규장각을 세운것은 물론이고(나중에 불편하다해서 옮김) 순조와 아들인 효명세자(익종으로 추존)는 연경당에서 왕권강화를 위한 춤은 물론이고 독서를 위한 의두합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후원 곳곳에서 시를 쓰기도한 숙종 정조 효명세자를 꼽을수 있습니다.


동궐은 상세한 동궐도가 전해지면서 이전 시대의 면모를 가늠해볼수있고 현재와 다른부분을 가려낼수도 있습니다.


고려대학교에서 소장중인 동궐도 순조때로 대략 1826년에서 1828년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열여섯 폭의 비단에 조감도 형식으로 채색된 것으로 당시의 정교한 기록화를 볼수있습니다.



창덕궁 후원권역은 원래 현재 창경궁의 일부도 같은 곳이었고 창경궁에서 통하는 통로도 있었다고합니다. 지금의 모습은 일제시대 많이 붕괴된 형태를 재조정하면서 생긴 권역입니다. 특히 창경궁은 1980년대까지만해도 창경원으로 불리며 동물원과 식물원이 들어서고 많은 건물이 사라진데다 벗나무를 심어 사시사철 행락객들로 넘치는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조선조 3대 임금인 태종은 1405년에 제2의 왕궁으로 창덕궁을 창건했다. 그럼으로써 수도 한양의 서쪽에는 경복궁이 동쪽에는 창덕궁이 위치하여 균형잡힌 도시공간을 구성할 수 있었다. 임진왜란으로 서울의 모든 궁궐이 불탄 후 경복궁은 재건되지 않았고, 270여 년 동안 창덕궁이 조선 왕조 제1의 정궁으로 역할 하였으며, 마지막 임근인 순종 때까지 상요된 최후의 궁궐이기도 하다. 동쪽의 창경궁과 함께 하나의 궁궐로 사용되어 동궐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궁궐 예제는 남북 중심축을 따라 엄격하게 배치되는 것이 일반적이며 경복궁 역시 이 제도를 따랐다. 그러나 산자락에 자리잡은 창덕궁은 인위적인 제도를 벗어나 주변 자연 지형에 순응하고 변화를 거듭하면서 가장 한국적ㅇ니 궁궐이 되었다. 왕실 생활을 편리하면서도 친근감을 주는 공간 구성은 경희궁, 덕수궁등 다른 궁궐 구성에 영향을 주었다. 1917년에 대조전을 비롯한 내전들이 불타 없어지자 경복궁의 전각들을 헐어다 옮겨 짓는 등 많은 건물들이 변형, 훼손, 철거되었다가, 1991년부터 복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덕궁은 조선 궁궐의 원형을 비교적 충실회 지니고 있으며, 동궐의 후원은 한국 전통 조경의 특성과 아름다움을 가장 훌륭하게 구현한 예로 평가된다, 1997년 12월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일제시대 간행된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창덕궁 돈화문...  대략 1930년대

관리되지 않은 모습으로 잡초가 우거진 모습이 망국의 모습을 보여주는듯해 씁쓸...



2014년 1월 창덕궁 돈화문


돈화문은 태종대에 창덕궁이 만들어지고 7년후에 세워집니다. 창덕궁은 이궁이었기에 격식상 크지 않게 만들었는데 지금처럼 전체 5칸으로 크게 만든건 세종 사후에 중국사신을 맞기위해 증축하면서인 것으로 보입니다.


오늘 소개할 후원을 관람하려면 미리 예약을 하거나 현장에서 예매를 해야합니다. 현장예매는 주말이나 휴일에는 매진 가능성이 높다는점 생각해두어야합니다.


창덕궁 후원 예약 안내 보기 - https://www.cdg.go.kr/cms_for_cdg/show.jsp?show_no=54&check_no=18&c_relation=35&c_relation2=97


우리 가족은 창덕궁 후원에 처음 가본게 2014년 1월이었습니다. 겨울철에는 관람시간도 조금 줄이고 코스도 다르다고 합니다. 창덕궁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조선시대 궁궐중에 원형보존이 매우 잘되어있는편입니다.


동궐도에 그려진 현재의 후원영역



아들은 현장에서 미리 예매해두고 갔기에 볼수있다고 말했더니 그럼 표를 다시 만들어오냐면서 초딩다운 물음을 남김...


창덕궁 후원입구.. 예매후 정해진 시간까지 이곳에 모여 해설사 동행으로 함께 출발...




태종의 창덕궁 창건 당시에 조성되며 창덕궁과 창경궁의 공동 후원이 되었다.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정자가 불타 버리고, 1623년 인조 때부터 역대 왕들에 의하여 개수.증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이루었다. 창덕궁 후원은 자연 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골짜기마다 인공적인 정원을 삽입시켜, 최소의 인위적인 솔질을 더해서 자연을 더 크게 완성시킨 절묘한 솜씨를 자랑한다. 4개의 골짜기에 각각 부용지,애련지,관람지,옥류천 정원이 펼쳐진다. 4개의 정원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크고 개방된 곳에서 작고 은밀한 곳으로, 인공적인 곳에서 자연적인 곳으로 점진적으로 변화하며 결국은 큰자연인 뒷산 매봉으로 연결된다. 세계 대부분의 궁궐 정원은 보고 즐기기 위한 관람용인데 비해, 창덕궁 후원은 여러 능선과 골짜기를 오르내리며 온몸으로 느끼는 체험 정원이었다. 또한 여러 복합적인 기능을 수용한 장소이기도 했다.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며 사색에 잠기던 곳이었고 연회를 열고 활쏘기 놀이를 즐기던 곳이었다. 왕이 참관한 가운데 군사훈련을 행해졌고, 왕과 왕비가 백성들의 생업인 농사를 짓고 누에를 치기도 했다.



내용이 조금 길어져 다음편에는 후원으로 들어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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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와룡동 2-71 | 창덕궁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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