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장군 임진왜란 명량대첩의 배후기지 「해남 전라우수영」사적 지정

Posted by 놀이터 추억보관소
2016.10.01 12:09 역사유적 방문/이순신 유적지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당시 왜의 기만술에 걸려 선조의 명을 어겼다고 끌려갔다 원균이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하면서 복귀하면서 말도 안되는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끌게됩니다. 항상 철저하게 준비된 상태로 전쟁에 나서고 승산이 없으면 섯불리 나서지 않았던 장군 스스로도 천운이었다고 했던 명량대첩의 배후기지는 해남에 있는 전라우수영입니다.

당시 칠천량해전에서 궤멸된 조선 수군을 다시 재건하기 시작했고 13척의 배를 가지고 출전해 다시 조선의 바다를 지켜냈습니다. 세계 해전사에 유례가 없을 전쟁입니다. 

전라우수영이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공식으로 지정되면 당시 모습을 복원하게될텐데 많이 기대가 되는 부분입니다.



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전라남도 해남군에 있는 「해남 전라우수영(海南 全羅右水營)」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35호로 지정하였다.

 

  해남 전라우수영은 서해와 남해가 만나는 군사적 요충지에 자리 잡은 조선 시대 전라우도 수군의 본영이다. 앞바다는 물살이 빠른 명량해협을 이루고 있고, 그 안쪽은 양도(洋島)라는 섬이 울돌목의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방파제 역할을 해주는 동시에 외부로부터 전라우수영을 가려주고 있어 천혜의 요새를 이룬다.

 

  1440년(세종 22)에 수영을 목포에서 이곳 해남으로 옮기면서 전라도 수군을 총괄하는 전라수영으로 운영되었고, 1479년(성종 10)에 전라도 순천부(順天府) 내례포(內禮浦, 현 전남 여수)에 전라좌수영이 설치되면서 전라우수영으로 개편된 이래 1895년까지 지속되는 등 조선 시대 수군제도의 변화과정 등을 살펴볼 수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정유재란 때에는 세계적인 해전으로 평가받고 있는 명량대첩의 배후기지로 이용되었다.

 

  전라우수영성은 16세기 중반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바깥쪽은 돌로 쌓고 안쪽은 흙으로 다져 쌓은 내탁식 석성(內托式 石城)으로 평면 형태는 배 모양(舟形)에 가깝다. 위상에 걸맞게 4개의 성문과 옹성(甕城), 치성(雉城), 여장(女墻), 수구문(水口門) 등 다양한 부대시설과 십자(十字)형의 성내 도로망을 중심으로 관아건물과 창고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에 전하고 있다.

  * 옹성(甕城): 성문 앞에 설치되는 항아리 모양의 시설물로 적을 측면과 후방에서 공격할 수 있음

  * 치성(雉城): 성벽 일부를 돌출시켜 적의 접근을 조기 관찰하고 공격할 수 있는 시설물

  * 여장(女墻): 성벽 위에 설치하는 낮은 담장, 적을 효과적으로 공격하고 몸을 피할 수 있는 구조물

  * 수구문(水口門): 성 밖으로 물이 흘러나가도록 수구(水口)에 만든 문

 

  또한, 동쪽으로 7㎞ 떨어진 가장 목이 좁은 곳에는 육지로부터의 침입을 막기 위한 차단성인 원문(轅門)을 쌓은 것이 특징이다.


내용 및 이미지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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