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고궁박물관 전시 관람 - 조선왕릉,왕실의 영혼을 담다

Posted by 놀이터 추억보관소
2016.06.27 11:39 역사유적 방문/조선왕릉

지금 고궁박물관에 가면 조선왕릉 특별전을 열고 있습니다. 6월21일에는 별관에서 학술대회가 있었고 22일에는 신청했던 의궤에 관해 집옥재 강의듣고 잠깐 들렀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조선왕릉은 단순하게 보면 왕의 마지막 휴식처라 할수있겠지만 당대의 유교적 정서에 입각한 성리학적 세계관과 입지선정에 따르는 풍수사상 그리고 조각품과 건축물에서 예술과 건축의 정점을 만날수 있는 공간입니다. 더구나 해당 임금이나 왕후등 왕족들의 스토리들이 녹아들어있는 역사가 숨쉬는 곳이기도합니다. 


가족과 함께 다니던 답사중에 성곽이나 궁궐은 한번 돌아본곳은 일정한 시간적 차이를 두고가게되는데 왕릉은 산재한 곳이 많고 서울을 중심으로 여러곳으로 넓게 분포해 한두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더구나 오백여년이 넘는 시간차이를 두고 조성된 것들이라 답사후에 알게되는 정보들까지 발생해 아쉬움을 남기긴하지만 재방문을 하는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북한에있는 2기와 추존왕릉을 빼곤 이곳에있는 조선왕릉중에 아직까지 못가본 곳이 서너군데 남아있는데.. 2차답사는 목적을 가지고 좀더 체계적으로 준비해서 가보자고 이야기를 하곤합니다.



경복궁과 붙어있는 고궁박물관은 입장이 무료(아직까지는)입니다.


블로그 관련글

2016/06/20 - [역사유적 방문/조선왕릉] - 「조선왕릉, 왕실의 영혼을 담다」특별전 개최 - 6월21~ 8월28 국립고궁박물관

조선왕릉은 고려시대 왕릉의 형태를 계승했는데 좀더 간소화 시켰습니다. 중국의 황제릉과 비교하면 규모가 작고 제후들의 릉형식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중국의 황제들은 즉위하면서 바로 본인의 능건설을 시작하지만 조선의 왕릉은 붕어이후에 시작됩니다. 왕릉의 형식은 정형화 되어있지만 석물들이나 건축물들은 당대의 정치적 상황이나 왕이나 왕후의 치세 권위에따라 조금씩 다르게됩니다.




조선왕릉 왕실의 영혼을 담다 동영상





조선왕릉이 지금처럼 남한쪽에 있는 40기가 온전하게 남아있을수 있던 것은 기적에 가까운일입니다. 5백년이 넘는 시차를 두고 수많은 전쟁과 환란 그리고 도굴의 위험속에서 한기도 사라지지않고 남아있게된것을 보면 경이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보존이 가능했던것 가운데 하나는 화려한 부장품이 없었다는 것과 도굴이 어려운 회벽에 있었다고 할수있습니다. 파헤쳐진 왕릉은 임진왜란 당시 선정릉이었는데 안에서 나온 보물이 없었고 실제로 들어가는건 서책과 조그만 도자기 몇점정도였습니다. 조선 왕릉은 그후로 발굴을 목적으로 열어본적이 없습니다. 유네스코 등재 당시에도 심사관들이 한기정도 발굴을 요청했었다고 하는데 철저하게 남아있는 의궤등의 남겨진 기록을 바탕으로 충분히 설득되었다고 합니다.



국장이 치뤄지기까지 왕의 시신은 5-6개월 빈전에 모셨다가 산릉이 조성되면 그때 옮겼습니다. 중국의 황제들은 즉위즉시 릉으 꾸몄지만 조선의 국왕은 백성들의 부담을 고려해 최소화 시킨 측면이 있습니다.


1919년 고종황제 국장 모습을 사진으로 모아 발간한 사진첩(덕수궁 국장 화첩)


국장은 국조오례의에 따라 진행되었고 꼼꼼히 기록되었습니다. 기록된것은 의궤로 발간이 되어 후일 의례가 생략되지 않게 계승하고 준비에 소홀함이 없게하기위해 하나하나 그려져있습니다. 현재로선 당시 그대로 재현할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이기도합니다.



왕릉의 석물은 고려시대의 형식을 많이 따랐으며 무석인과 문석인의 수를 줄여 부담을 덜었습니다. 건원릉과 태종의 헌릉에까지는 석물의 수나 신도비등 불교식의 고려시대 양식을 일부 남아있고 이후부터 조금씩 생략된 양식을 볼 수있습니다. 이후 대한제국 선포후에 황제릉 형식을 참고한 홍유릉은 전혀 다른 형태입니다.



정조와 사도세자의 융건릉에서 나온 원빈 홍씨묘 부장품


정조 건릉에서 발견된 부장품으로 정조가 처음 묻혔던 곳에서 출토


건릉 조성시의 의궤에 기록된 부장품의 묘사


효창원에 있었던 순효세자의 부장품. 효창원은 현재의 효창공원으로 현재 김구 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의 묘역인데 일제시대까지만해도 순효세장의 효창원이 있던곳으로 일제가 주둔중인 군인들의 훈련을 위해 서삼릉으로 옮겼습니다. 아마도 이때 나온것인듯...



아픈 역사의 하나로 의궤에 찍혀있는 도장중에는 조선총독부에서 기증했다는 것이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이왕가로 격하된이후 기증형식으로 생색낸것으로 원래주인에게 기증해준다는 기가막힌 한장면



문정왕후의 독살로 인해 죽었다는 설이있는 인종의 옥책. 물론 확증은 없기에 문정왕후의 권력욕에서 파생된 것이겠지만 실제로 문정왕후는 인종에게 매우 쌀쌀맞게 대했는데 매우 순하고 착했던 인종은 아버지인 중종사후 지나친 효심의 발휘로인해 몸이 쇠약해져 즉위한지 1년도안되어 붕어.. 이후 문정왕후의 친자인 명종이 즉위했고 문정왕후와 윤원형등의 외척의 전횡속에서 기를 펴지 살고못함..



조선 왕릉은 의궤라는 철저한 기록을 해두었기에 복원이 가능 - 정조 건릉 


신정왕후 수릉 산릉도감 의궤 - 신정왕후는 효명세자(문조)의 부인이자 헌종의 어머니로 흥선대원군과 함께 안동김씨 외척에 맞서 고종을 옹립하고 수렴청정을 했던 인물


철인왕후 산릉도감의궤에 묘사된 정자각의 양식 의궤는 오대산본으로 분산 보관되었던 것입니다. - 철인왕후는 철종의 비


임금이 즉위한 해에 만들어지는 관의 명칭은 재궁이고 일년에 한번씩 덧칠



명성황후 홍릉 산릉도감의궤로 보관용인 빨간색 표지에 철심을 박은 형태의 의궤입니다. 옆에 펼쳐진 의궤에 묘사된 것의 색상이 노란색입니다. 이색은 황제형식에만 사용할수있는 색으로 대한제국이 황제국을 선포한 이후 였기에 가능..




블로그 관련글

2016/06/16 - [역사유적 방문/조선왕릉] - [조선왕릉 홍유릉 능침] 마지막 황제 순종의 유릉 - 순명효황후 순정효황후 합장릉

2016/06/13 - [역사유적 방문/조선왕릉] - [조선왕릉 홍유릉 능침] 대한제국 고종황제릉 홍릉 능침 - 고종 명성황후 합장릉

2016/05/15 - [역사유적 방문/조선왕릉] - [조선 왕릉 기행 태강릉3] 문정왕후와 명종의 관계 그리고 조선왕릉전시관

2016/05/13 - [역사유적 방문/조선왕릉] - [조선 왕릉 기행 태강릉 2] 명종과 인순왕후의 강릉

2016/05/12 - [역사유적 방문/조선왕릉] - [조선 왕릉 기행 태강릉 1] 중종의 계비 문정왕후의 태릉

2016/05/09 - [역사유적 방문/조선왕릉] - [조선 왕릉 기행 선정릉 3] 선정릉 답사 마무리 및 자료

2016/05/09 - [역사유적 방문/조선왕릉] - [조선 왕릉 기행 선정릉 2] 얼떨결에 왕이된 중종 그리고 문정왕후

2016/05/08 - [역사유적 방문/조선왕릉] - [조선 왕릉 기행 선정릉 1] 임진왜란 당시 파헤쳐진 성종의 능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서울 종로구 세종로 1-57 | 국립고궁박물관
도움말 Daum 지도


이 댓글을 비밀 댓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