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옥재 강의] 조선왕조 의궤의 가치 - 장서각 박용만 연구원 강의 요약

Posted by 놀이터 추억보관소
2016.06.23 18:01 한국사 놀이터/조선시대

경복궁 집옥재는 1891년 건립된곳으로 고종의 서재이자 외국사신들을 접견한 곳으로 청나라풍의 건물이 인상적인 곳입니다. 올해 4월27일 도서관의 형태로 개방이 되면서 각종 도서와 관련 유물들을 비치해서 개장했습니다. 오래전 이곳 마루에서 잠시쉬던 기억이 있는데 당시와는 다르게 도서관 형태로 꾸며졌습니다.


현재 이곳에서 매주 수요일마다 인문학 강의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관심있는 의궤에 관련된 강의 두개를 신청했습니다. 


6월22일 장마가 몰려온다는 소식과 소나기가 한참내리던 경복궁 집옥재로 향했습니다. 7월20일까지 있는 전반기 강의는 신청이 마감되었고 9월에 다시 다른 주제로 재개될 예정입니다.


집옥재 안내

1896년 경복궁에 큰 불이나자 고종은 창덕궁으로 옮겼다가 1888년에 다시 경복궁으로 돌아와 주로 건청궁에 기거했다. 이미 창덕궁에 지어졌던 집옥재,협길당등을 1891년 건청궁 서편으로 옮겨와 자신의 서재와 외국 사신 접견소로 사용했다. 집옥재는 양 옆벽을 벽돌로 쌓고 내부를 중2층으로 만들었으며, 팔우정은 팔각형의 2층 정자이다. 이 건물들은 중국풍의 요소들이 많이 섞여 궐내에서 이국적인 지역을 형성하며, 복도를 통해 하나의 내부로 연결된다.



강의를 해주신분은 장서각의 박용만 연구원으로 2001년부터 주욱 의궤와 관련된 연구를 진행중이신분이었습니다. 1시간에 걸쳐진 짧은 강의이고 전문 연구가들을 대상으로 한것이 아니기에 깊이있게 다룰 성격은 아니었지만 조선시대 의궤가 가진 여러가지 세부적인 모습들을 좀더 알게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강의 내용

차수

일자

주 제

강 사

비고

1

6. 15.

조선왕실 문화와 기록 정신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전반기

2

6. 22.

조선왕조 의궤의 가치

박용만(장서각)

3

6. 29.

조선왕실의 족보:선원록

원창애(장서각)

4

7. 6.

조선왕실의 제사:종묘의궤

이 욱(장서각)

5

7. 13.

국왕 초상화의 탄생:어진도사도감의궤

윤진영(장서각)

6

7. 20.

국왕의 문학과 예술:열성어제·어필

안장리(장서각)

7

9. 21.

조선왕실의 복식:궁중의대발기

이민주(장서각)

후반기

8

9. 28.

단종의 애사:월중도

정은주(장서각)

9

10. 5.

궁중의 한글 소설:낙선재고전소설

강문종(한국학중앙연구원)

10

10. 12.

왕실의 애민 의학:동의보감

김백희(장서각)

11

10. 19.

대한제국과 황실문화:대한예전

이왕무(장서각)

12

10. 26.

고종의 서재:집옥재도서목록

백영빈(장서각)


의궤는 아직까지 초기단계의 연구라고 할수있습니다.


공신록으로 비단과 옥을 사용했고 남자 한명이 들기에 묵직한 느낌의 무게라고합니다.


의궤 제작 목적과 현재 현황으로 의궤는 조선시대에 왕실이나 국가 큰행사시의 전말과 과정 소요된 물자나 인원 절차 행사후 논상들을 기록한것으로 후대의 유사 행사에 참고하도록 하기위해 제작이 되었고 현재 의궤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1584건 2950책 한국한중앙연구원 장서각에 341건 503책 국립문화재연구소 14건 15책이이 있고 국립중앙박물관(외규장각 반환의궤) 191종 297책 그외 일본 미국 카자흐스탄등 해외 도서관과 국내 7곳 도서관 및 지방자치단체에 57건이 있습니다.


의궤는 열람자의 신분이나 목적에 따라 제작을 다르게했습니다. 국왕이나 왕실에서 열람용도로 쓰이는것은 주로 푸른색으로 사용되었고 보관용이나 일반 열람용은 붉은색으로 만들어진 것이 많았습니다.


신정왕후 부묘도감의궤


임금이 열람하는 어람용 의궤는 푸른색 바탕에 철책을 하였고 박음질 자리에 철제로 장식을 하였습니다. 달려있는 고리는 벽에 걸어두는 용도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의궤의 뒷면으로 어람용은 말끔하게 마무리되었고 분상용 의궤는 철심을 박아 휘어진 형태 그대로 있습니다.


어람용 의궤는 붉은선을 도화서 화원이 직접 그려넣었고 글자도 정자체로 반듯히 쓰였는데 우측 분상용 의궤는 판으로 미리 찍어낸 테두리선에 약간 흘림체로 써넣었습니다. 한가지 안타까운 역사는 연구원님 손 옆에 붉은색 도장은 일제강점기에 총독부에서 대여해준다는 의미의 도장으로 당시 이왕가로 격하된 상태에서 우리것을 우리가 빌려쓰는 우울한 역사의 한장면이었습니다.


어람용과 분상용은 그림에서도 디테일의 차이가 느껴진다고합니다.(실물은 아니지만 발표 자료화면은 사진보다 좀더 차이를 느낄수 있었습니다)


의궤는 만들기전 고본의궤가 있습니다. 일종의 정식발매전의 초고 성격이지만 정식으로 만들어지는 의궤와 거의 흡사합니다. 현재 남은것은 일제 강점기에 치뤄진 국장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실제 정식으로 사용된것보다 기록이 풍부한것도 있습니다. 유네스코 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될때 고본은 제외되었습니다.


장서각의 고본의궤


반차도는 국가나 왕실의 행사에서 품계나 등급의 차례를 따르는 행렬을 그린 그림입니다. 그림으로 남긴이유는 절목이 번다하여 실의하는 일이 있을까 염려되는 것으로 의례상의 번잡함 때문에 혹시라도 실수하거나 넘어가는 부분이 생길까봐...


의궤 반차도의 형태


두루마리 형태로 영조 국장 반차도입니다. 영국의 옥스포드대학에 소장된것


대여부분을 확대


필사와 인각채색의 차이점으로 필사는 직접 그린것이고 인각채색은 미리 만들어진 윤곽의 도장을 사용해 찍은후 채색하는것입니다. 필사의 경우 왼쪽의 그림으로 선이 기계적인 정리됨이 없어 더욱 미적으로 보입니다. 반면 오른쪽은 인각후 채색한것으로 말의 모양이나 사람이 모두 형체가 똑같습니다.


다만 인각채색이라도 가마와 같은 부분은 자주 사용되는것이 아니기에 전체를 그려넣음


숙종 인현왕후 가례 반차도

장희빈에 의해 쫓겨났다가 다시 들어온 숙종의 인현왕후 기구한 운명이기도 하지만 이면을 보면 숙종의 노회한 환국정치의 특징을 보여주는 부분일수도 있습니다.



의궤하면 빼놓을수 없는 사건이 병인양요라고 할수 있습니다. 당시 강화도에 있던 외규장각의 의궤들을 탈취해간 사건으로 당시 약탈 물품은 의궤를 비롯해 9백킬로그람에 가까운 은과 지도 천체도 족자등등이 있습니다.




의궤의 실제 형태 설명 동영상






의궤의 존재는 고인이된 박병선 박사의 노력으로 이루어졌고 반환은김영상 정권시절 1993년 미테랑 당시 프랑스 대통령 방한시와(미테랑이 왔었나? 왜 기억이 없나했더니 철책에서 밤새던 시절이네요...) 2011년 영구 임대형식으로 1042종 6130책중에 겨우 297책이 들어왔습니다. 앞서 조선 총독부에서 이왕가에 빌려준것과 비슷한 상황... 더구나 약탈이후 사라진것들도 11종 198책이나 되는데 들고가지못하는것들은 소각했다고합니다. 1600년대 이전의 의궤들은 대부분 임진왜란 당시에 사라졌는데 예나 지금이나 군인들이 끼게되면 문화적인 것들은 모두 파괴되거나 왜곡..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정도로 기록의 시대였던 조선시대 박용만 연구원님은 문화는 개인이나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적 정신적 과정의 산물이고 기록문화는 그중에서도 기록을 통해 이루어진 정신적 물질적 산물을 포괄하는 개념이라고 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의궤 승정원일기와 팔만대장경 그리고 개인적 기록등이라 할수있는 문집등을 내세울수 있습니다. 


의궤는 당대에 행해진 의식이나 갖가지 정보를 생생하게 알아볼수 있는 기록물이고 당시의 장황(표장재료, 서책의 복사, 제작방법)과 같은 형태 서지적 연구에 가치가 있다고 할수있습니다.


이 댓글을 비밀 댓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