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의 침공을 막고 나라를 구한 귀주대첩의 강감찬과 유적지 낙성대

Posted by 놀이터 추억보관소
2016.06.01 16:46 역사유적 방문/유적지

우리역사에 나라구한 영웅이 몇몇 있습니다. 대표적인분이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구한 이순신장군이고 조금더 거슬러 올라가면 고구려의 수나라의 침공에 살수대첩을 이끈 을지문덕과 안시성에서 당태종을 막은 양만춘, 여세를 몰아 당태종을 지금의 북경부근까지 추격해 혼쭐을 내던 연개소문 그리고 고려시대에는 거란이세운 요나라로 거란족 소손녕의 첫번째 침공에 뛰어난 외교술로 전쟁을 치르지않고 영토까지 얻은 서희와 요나라 성종의 명령으로 소배압의 세번째 침공을 막은 귀주대첩의 영웅 강감찬이 있습니다.


낙성대는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곳입니다. 낙성대란 이름의 유래는 중국사신들이 왔을때 별이 떨어진곳을 찾아갔더니 아이가 태어난곳이기에 붙여진 것입니다. 예전에 우스개소리로 서울대 떨어진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이라 하기도했는데 사실 이곳 전철역은 무수히 지나갔지만 한번도 가볼 생각은 해본적이 없는 곳이기도합니다.


강감찬은 흔히 사극에서 무인정권 시대의 무시무시하고 매서운데다 때로는 왈패처럼 보이는 장군들을 상상하겠지만 실제로는 과거에 장원급제한 문신출신입니다. 물론 거슬러 올라가면 그의 가문에는 수나라의 침공때 맞서싸운 고구려의 명장 강이식 장군의 후손으로 무인기질이 면면히 내려오는 집안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채시라가 주인공으로 나왔던 고려시대 사극 천추태후에서 이전에 설인귀등 무인역을 많이 연기한 이덕화가 강감찬 장군역을 했었는데 실제 강감찬은 문관출신에 키도 작았고 용모도 마마를 앓았기에 그리 호감형은 아니었던 것으로 고려사등에 기록되어있습니다. 하지만 국가위기시에 탁월한 대처능력을 보여준것을 보면 대단한 지략을 가진것으로 보입니다. 강감찬에 대한 설화들을 보면 사람으로 둔갑한 요괴나 맹수들을 물리치는 내용이 많이 내려오는것을 보면 대중들에게는 신비한 초능력을 보유한 것처럼 비춰진것 같습니다.

결국 당시의 권력자이자 맹장이던 강조나 용맹한 장수였던 양규처럼 전형적인 무인이라기 보다는 세치혀로 강동6주를 얻은 서희와같이 담력과 지략을 겸비한 전략가에 가깝다고 보는게 타당합니다. 다만 서희와 다른점은 피할수 없었기에 실제 전쟁을 수반해 대승을 거두었다는점입니다.


낙성대는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에서 도보로 5-10분정도 거리에 있습니다. 전형적인 동네공원처럼 생긴곳이지만 뒷편에 산책로는 물론이고 강감찬 장군의 사당이 있습니다.


낙성대 공원 입구


관악산 둘레길 제1구간에 속해있는 곳입니다 까치산 생태육교부터 시작


강감찬 장군 동상앞에서.. 어릴때 많이보던 동상으로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세워진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전국 곳곳에 이순신 강감찬 김유신 유관순등 애국자들의 동상이 전국곳곳에 동시에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 세워지던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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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 장군의 사당인 안국사로 들어가는 곳으로 경계영역을 표시하는 홍살문이 있습니다.


낙성대 공원 전체 안내도로 당시 공사중이던 강남순환고속도로는 얼마나 진척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벌써 2년이 후딱지났네요.


낙성대 안내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호 / 고려시대 /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228번지


낙성대는 고려시대의 명장 인헌공 강감찬이 태어난 장소이다. 장군이 태어날때 이곳에 별이 떨어졌다고 하여 낙성대라는 이름을 얻었다. 장군은 거란의 침략을 막아낸 것을 비롯하여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고려 백성은 장군의 이러한 공적을 찬양하여 장군이 태어난 집터에 삼층석탑을 세웠는데, 이 석탑은 서울특별시에서 1964년 파손된 부부을 보수하였으며, 1974년 6월 이곳에 기념공원을 조성하고 공원내에 사당을 건립해 영정을 모시면서 봉천동 218번지에 있던 이탑도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세종실록과 동국여지승람에는 강감찬 설화가 수록되어있다. 어느날 밤 중국의 사신이 길을 가다가 큰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별이 떨어진 집을 찾아갔더니 , 마친 그집의 부인이 아기를 낳았다. 그 아기가 곧 강감찬이며, 뒤에 송나라 사신이 와서 만나보고는 문곡성의 화신임을 확인했다고 한다.

장군과 관련된 많은 설화들이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오고 있다. 장군의 아버지가 훌륭한 아들을 낳기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19금 이야기라...) 본부인에게로 돌아오던 길에 만난 여우여인과 관계를 맺게되어 낳게 된것이 장군이라는것이다. 그의 출생담은 흔히 시조나 위인등에서 나타나는 출생설화와 일치한다.

또한 장군이 소년원님으로 부임하였을때 그가 너무 어리다고 얕보는 관속들에게 뜰에 세워둔 수숫대를 소매속에 다집어 넣어보라고 하였다. 그들이 불가능하다고하자 그는 겨우 일년자란 수숫대도 소매에 다 집어넣지 못하면서 20년이나 자란 원님을 아전이 소매속에 집어넣으려 하느냐라고 호통을 쳐서 기를 꺽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리고 어느 고을에서 여름날 개구리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관속에서 부적을 써주고 연못에 던지게 했더니, 그곳의 개구리가 다시는 울지 않았다는 이갸기는 여러 지역에서 전승된다. 또 남산(또는 삼각산)에 사는 수백년된 호랑이가 중으로 변신하여 길을 지나는 사람을 수없이 헤친다는 민원을 듣고, 편지로 호랑이를 불러와 크게 꾸짖어 앞으로 새끼도 평생에 한번만 낳고, 몇몇 산에서만 살게 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사당 정문인 안국문 74년에 생기면서 당시에는 광화문등 새롭게 한글로된 현판들이 생겼는데 이곳은 한자로 표기되었지만 한글 읽듯 왼쪽에서부터 읽게 제작되어있습니다.


영정이 모셔진 안국사 들어가기전 낙성대 삼층석탑으로 당시 강감찬 장군의 승리를 기념해 후일 백성들이 세워준것으로 임진왜란때 훼손되기도 했었습니다. 석탑 상단을 훼손하고 안에 들어있던 보물을 가져갔다는... 이래저래 일본은 우리에게는 참으로 악연... 원래는 생가터에 있었지만 이곳을 정비하면서 이전되었습니다. 처음 방문당시에 기본정보가 없고 바로 선정릉 방문을 하기위해 인헌공 강감찬 장군의 생가터는 모르고 지나쳤습니다. 다시 가볼날을 기약하는중입니다.



종 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호

명 칭:  낙성대 삼층석탑 (落星垈 三層石塔)

수량/면적: 석탑 1基, 토지 3.7㎡

지정(등록)일:  1972.05.25

소 재 지:  서울 관악구 낙성대동 산48번지

시 대:  고려시대


고려 명장 인헌공 강감찬(984∼1031) 장군이 태어난 곳이다.


거란의 침략을 막아내는 데 큰 공을 세우고 백성들을 다스리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인 장군은 그 당시 백성들에게 흠모와 존경의 대상이었다. 백성들은 장군의 공적을 찬양하기 위해 집터에 삼층석탑을 세우고, 장군이 태어날 때 별이 떨어졌다고 하여 낙성대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그 뒤 낙성대를 보호하고 기념하기 위해 나라에서는 1973년부터 2년간에 걸쳐 안국사라는 사당을 짓고 장군의 영정을 모셨다. 집터에 있던 삼층석탑은 이곳으로 옮겼고 석탑이 있던 자리에는 비석을 세워 사적지임을 표시하였다.


현재 안국사는 공원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정보출처 - 문화재청



낙성대 방문 동영상





강감찬 장군의 사당인 안국사에 안치된 영정..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강감찬의 당시나이는 72세의 노인으로 아마 당시 평균연령을 고려하면 지금으로 치면.. 지금은 많이 다르지만 인생 칠십 고래희라 하였습니다. 예전부터 드물다는 나이에 나라를 구했으니...


1974년에 지어진 안국사의 현판



낙성대 견학을 마치고...


동네 주민들이 많이 이용할것같은 등산로


낙성대 공원 입구에있는 전통야외 소극장


이외에 강감찬장군 생가터에 근처에 있습니다

종 목: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3호

명 칭:  강감찬생가터(낙성대) (강감찬 생가 터(落星垈))

지정(등록)일: 1974.08.21

소 재 지: 서울 관악구 낙성대동 218-14번지


낙성대는 인헌공 강감찬(948∼1031) 장군이 태어난 집터로, 그가 태어나던 날 밤에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졌다고 하여 ‘낙성대’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또한 그 자리에는 장군이 태어난 곳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3층 석탑을 세웠다고 한다.


강감찬은 거란의 40만 대군을 무찌르는 등 나라를 위해 일생을 바친 고려의 명장이다. 이러한 그의 뜻을 본받아 1973년 낙성대를 깨끗이 한 후, 사당과 부속 건물을 새로 세우고, 석탑도 지금의 낙성대 경내로 옮겼다. 그리고 1974년 높이 2m의 유허비(遺墟碑)를 세워 사적임을 표시하였다.


이미지 및 정보출처 -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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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 봉천동 228 | 낙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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