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경운궁)에 처음 가던날 - 2013년 8월

Posted by 놀이터 추억보관소
2016.05.24 00:14 역사유적 방문/고궁

덕수궁 돌담길은 유행가 가사에 자주나오는 곳으로 특히 가을철이 되면 도심지에서 운치를 즐길수 있는곳이고 헤어지는 연인들로 유명하기도합니다. 아들과 덕수궁은 이날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궁궐을 살펴 보기위해 방문한건 처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008년 이곳 현대미술관에서 라틴아메리카 거장전이 전시되었을때 그림보러 들어왔었고 당시 다른곳은 가보지않고 석조전안에 잠시 들어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주로 촬영하던 캠코더는 고장이난 관계로 확인이 안되고 있습니다. 1년정도 구닥다리 디지털 8미리 캠코더를 들고 다니던 시절이고 디지타이징을 해놓지않아 현재 다시보기가 어렵습니다. 언제 날잡아서 의뢰해야할듯합니다.. 그런데 분량이 너무 많아서 수리는 커녕 단종되어서 중고 구하기도 힘든 기종이라 고민중입니다.


덕수궁의 원래 명칭은 경운궁이고 그이전에는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사저였습니다. 선조때 지어진 석어당으로 가면 궁궐의 화려한 단청형식이 아닌 사대부 집안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선조는 임진왜란이후 불타버린 경복궁과 창덕궁 모두 돌아갈곳이 없어 이곳에 임시로 거처를 삼아 행궁이 되었습니다. 이후 창덕궁을 수리해 옮겼습니다. 이후 광해군시절 영창대군을 강화도에서 사사시키고 인목대비를 폐위시켰을때 이곳에 연금이 되었고 드라마 화정의 주인공인 정명공주가 서예를 하던 장소이기도합니다. 이때 서궁으로 격하되었지만 인조반정이후 인조는 이곳에서 즉위식을 가졌고 선조의 침전을 제외한 나머지 땅과 건물을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었다고합니다.


이후 숙종이 개보수를 명하고 영조때 행사와 석어당 현판을 써주었지만 궁궐로서의 기능은 미미했는데 고종때에 접어들면서 격동의 근대사를 관통하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이곳 정동일대를 중심으로 벌어집니다. 고종은 아관파천이후 이곳 경운궁으로 옮겼고 대한제국을 선포했고 순종이 등극하게됩니다. 경운궁에서 고종의 궁호를따서 덕수궁으로 바뀌게되고 순종이 창덕궁으로 이어한이후 고종은 덕수궁 함녕전에서 승하하게됩니다. 명칭 문제는 여러가지 이견이 있습니다. 덕수궁은 원래 퇴위한 왕이 기거하는곳을 뜻하고 당시 과정이 일제에 의한 강압상황이었기에 때문이라는 부분이기에 되돌려야한다는 주장과 덕수궁 명칭 자체가 순종의 신하들이 붙인것이고 덕수궁으로 불린 시기가 실제 궁궐로서 기능한 시기보다 더 많았기에 그대로 두어야한다는 주장이 팽팽합니다.


덕수궁 주변 정동일대에는 우리나라 근대와 관련된 유적들이 많아 같이 돌아보는걸 추천합니다. 원래는 경희궁과도 육교로 이어졌있었다고 합니다. 아관파천의 무대였던 러시아공사관 이화여고 배재학당을 비롯해 정동교회 성공회성당 현재 시립미술관으로 쓰이는 대법원 건물과 조선호텔옆 환구단 경희궁 경교장까지 부지런히 움직이면 하루에 모두 볼 수 있습니다.




덕수궁 돌담길 - 이곳을 걸으면 연인들이 헤어진다는 속설이 있는곳 하지만 현실과 다르더라구요.. 알고있는 몇몇 부부는 결혼전 이곳을 일부러 걸어가면서 운명(?)을 거는 가벼운 행위를 했는데 그럭저럭 잘사고 있다는...



현재 덕수궁의 정문으로 쓰이는 대한문 원래 이름은 편안할안자를써 대안문(大安門)이었고 원래 정문은 중화문 남쪽에 있던 인화문이었지만 화재로 사라진후 이곳으로 쓰이게되었습니다.



대한문 앞에서는 수문장 교대식이 거행됩니다. 시간맞춰가면 볼수있습니다. 그나저나 날더운데 고생이 많으시네요....


왕궁 수문장 교대식 일정

  매일 3회 : 오전 11시, 오후 2시, 오후 3시 30분

  단, 월요일 및 혹서기·영하 5℃ 이하의 혹한기, 눈 오는 날, 비 오는 날은 행사가 열리지 않습니다.




화재로 소실되기 이전 정문으로 쓰이던 인화문을 넘어서면 나오던 중화문 덕수궁의 정전인 중화전의 정문으로 원래는 행각이 있었다고합니다. 뒤로 중화전이 보입니다.


덕수궁의 정전인 중화전 대한제국 선포한 이후에도 사용되었기에 황제 형식에 맞추어져있는 곳입니다. 봉황이 아닌 용이있고 황제의 상징인 노란색으로 꾸며져있습니다.  원래는 2층이었지만 화재로 소실후 단층으로 복원.



석어당 단청을 하지 않은 건물로 선조때 지어졌으며 광해군때 인목대비가 유폐되어있던곳.. 두번째로 찾아갔을때는 공사중이었고 가려져있었는데 지금 어떤 형태로 복원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현판글씨는 영조가 쓴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덕홍전 고위관료와 외교사절을 접견하던장소로 건축양식은 고전적이지만 내부는 천장에 샹들리에를 설치하는등 서양풍으로 장식되어있습니다. 1911년 건립



고종이 말년을 보내고 승하했던 함녕전 고종은 일제의 독살설이 나돌지만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상태


덕수궁의 내부는 시대상을 반영하듯 샹들리에들이 설치되어있고 장식들도 서양풍으로 들어와있습니다


고종이 커피를 즐겼다는 정관헌에서 쉬면서 엄마 아빠 사진찍으랬더니 셀카 찍으며 초딩스런 표정으로 웃는중...


이외에도 즉조당과 덕혜옹주의 유치원있던 준명당이 있습니다.

다른곳은 전혀 사진찍은것이 없는걸보니 석조전쪽은 공사중이었던것으로 보입니다.

이곳 야외에 전시되어있는 유물들


남자 아이들이 좋아할법한 신기전


이곳 정릉에 있던 원찰 흥천사 동종 보물 1460호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인 정릉은 원래 이곳인 정동에 있었고 지역이름의 유래도 생겼습니다. 이때 원찰로 세워진 흥천사에 있던 동종입니다. 후일 정릉은 태종 이방원이 태조 사망후 해체해 양주인 지금의 성북구로 옮겼고 당시 능의 병풍석과 난간석등은 수표교다리 보수공사에 사용해 만인이 밟고 지나가게 했습니다. 자신을 내친것에 대한 복수이지요. 흥천사는 화재로 사라졌지만 현재는 정릉옆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중종대에 만들어진 물시계의 일부를 볼수있습니다. 창경궁에 있던걸 옮겨온것이라 합니다.

같이 전시되어있는 유물



덕수궁 연못에서 휴식중인 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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