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에 처음 들어 가본날 - 2007년8월5일 집옥제

Posted by 놀이터 추억보관소
2016.05.17 10:10 역사유적 방문/고궁

경복궁은 조선의 법궁으로 정도전의 계획아래 꾸며진 명실상부한 상징과도 같은 궁궐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들어가본적도 들어갈 생각도 없던곳.. 1990년즈음 풋풋하던 시절 교보문고를 일주일에 서너번씩가고 광화문으로 들어와 불란서문화원이 있었던 지금의 춘생문 맞은편 쪽에서 버스타고 삼청동으로 알바뛰러 다니던 시절... 6개월이 넘도록 지나다녔지만 들어가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곳... 지금 생각해보니 가운데 버티고 있던 총독부 건물... 당시에는 박물관이었던걸로 기억합니다.


김영삼 문민정부 시절 가운데 버티던 일제시대 총독부로 지어진 중앙청이 허물어지면서 속은 시원했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경복궁이 온전한 모습을 가지기 위해서는 흉칙한 이건물이 없어지는게 맞는걸로 보입니다. 그래도 아쉬운 부분은 있습니다. 기술적으로는 모르겠고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겠지만 당시 그대로 가져가겠다고 제안한 일본이 아니라 우리가 그대로 이전해 두고두고 잊지않을 상징으로 놔두는것도 생각해봤습니다. 그런일 없어야겠지만 임진왜란과 한일 강제병합의 역사가 언제 되풀이 될지 모르지 않습니까?

하지만 다시 결론적으로 생각해보면 잘했다고 봅니다.경복궁을 가로막고 있는것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보존하는게 여러모로 맞겠지만 건물을 이공간에 세운 의도자체도 그렇고 현재도 지속적으로 중심역할을 하는곳이기에 철거한게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경희궁은 중간에 학교를 세워 흔적조차 없어지고 정문은 뜯어다 이토히로부미 사당에 세워두질않나 창덕궁은 비원으로 격하되어 연회장으로 쓰고 창경궁은 동물원으로 만들어놓고 잔디까지 깔아놓더니 경운궁은 덕수궁으로 격하... 아무리 생각해도 일제의 만행은 가지가지 아주 디테일하게 많습니다.




기억에 경복궁에 처음간건 2007년 8월 아들이 4살이지만 12월생으로 34개월.. 육아에 지친 아내와 주말마다 여기저기 다니던 시절.. 사진들이 화질이 많이 떨어지는건 모두 당시의 휴대폰으로 촬영했기때문.. 100만 화소정도 되는듯.. 결국 아이때문에 처음가본 경복궁 전혀 관심도 없었던 이곳을 여러번 가게 될줄은...


2007년 8월 경회루앞


경복궁 향원정 교과서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곳...


경복궁 집옥재



집옥제의 석수


집옥제 설명

집옥제 협길당 팔우정 3채의 건물은 원래 창덕궁에 있던것으로 고종 28년인 1891년에 옮겨왔습니다. 고종은 1876년 큰화재로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겼다가 1888년 다시 돌아와 주로 건청궁에 기거했는데 고종은 1881년 함녕전을 지으면서 서쪽 별당으로 협길당 북쪽 별당으로는 집옥제를 지었는데 경복궁으로 돌아오면서 현재 위치로 옮김..


3채의 건물은 각각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연결된 구조로 고종의 어진봉안과 서재겸 외국사신 접견장으로 사용 창덕궁으로 치면 규장각 주합루에 해당하는 곳으로 집옥제에도 많은 서책이 있었고 규장각 장서각 도서중에 집옥제 서적목록이라고 표기된것이 바로 이서재에 있던 책들로 약4만원에 이릅니다.


집옥제는 경복궁의 다른 전각들과 달리 특이한 모습으로 당시 신식으로 생각되던 중국풍(당시 느낌은 청나라 건물)을 받아들였고 집옥제의 현판도 송나라 명필인 미불의 글씨를 집자하여 중국풍을 따라 세로로 길게 세워쓴것도 이것에 연유했기때문


고종은 1986년 아관파천이전까지 건청궁에 기거하며 이곳에서 책을 읽고 외국사신을 맞이하며 지냈는데 고종30년에는 한해에만 영국 일본 오스트리아등의 외국 공사들을 다섯차례 맞이했던 곳


집옥제에 갔을때 궁궐에 사극에서 봤음직한 중국풍의 건물이 있었는데 당시 개방이 되어있어 들어가보았습니다. 마루바닥에서 한창 신난 아이와 즐겁게 보낸기억... 집옥제는 올해 작은 도서관으로 꾸며 개방되었다는데 다시 가봐야겠습니다..




경복궁 민속박물관 바닥에서 소리 듣는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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